<RUSH>, 백호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이 진실에 닿는 과정이 머릿속 개념에서 시작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삶이 먼저 움직이고 이해가 그 뒤를 따라온다고 말했다. 해보지 않은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몸으로 겪은 일만 언어가 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에게 중요한 것은 미리 증명된 이론이 아니라, 지금 나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선택이었다. 믿음은 완성된 생각이 아니라 한 번 내디딘 행동이 만들어낸 확신이다. 그는 인간을 위험이 다 사라진 뒤에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불확실함을 안고도 방향을 정하는 존재로 보았다. 요컨대 제임스에게서 삶은 검토보다 실험에 가깝다. 먼저 살아보고 그 위에서 의미를 만든다.
이 시선에서 보면 백호의 ‘RUSH’가 말하는 질주가 훨씬 또렷해진다. “I can’t say what’s on my mind”, “Can’t explain what’s never tried”라는 대목은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감각이 말보다 빠르다는 뜻이다. 화자는 알 수 있는 곳이 아니라 “running to the unknown”을 택한다. 두려움과 끌림을 다 정리한 다음에 뛰는 게 아니다. 그는 “running to the hate / running to the love”라고 말하듯 서로 다른 감정을 통째로 안고 달린다. 제임스 식으로 말하면, 이것은 감정을 정리한 뒤에 사는 일이 아니라 살면서 감정을 정리하는 태도다. “Stay alive, that’s how I’ll survive”는 단순한 생존 구호가 아니라 움직일 때에만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곡은 목적을 먼저 밝히지 않는다. 달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서 경험이 의미를 앞선다는 제임스의 생각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그래서 ‘RUSH’는 정의되지 않은 상태를 겁내지 않고 통과하는 사람의 호흡에 가깝다. 화자는 멈춰서 완벽한 이유를 찾기보다, 불완전한 동기로도 계속 전진하는 쪽을 택한다. 이것이 바로 제임스가 말한 실용적 태도다. 지금 이 움직임이 나를 더 살아 있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그 선택은 이미 충분한 근거를 갖는다. “That’s how I’ll survive”는 이렇게 달리는 동안에만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기 인식이다. 의미는 대개 나중에 온다. 먼저 박동하는 몸이 있고, 그 뒤에야 해석이 붙는다. 이 노래는 그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설명 가능한 삶을 꾸미려 하기보다 지금 살아 있는 삶을 놓치지 않는 편을 든다. 그게 제임스가 말하던 살아 있는 인간의 방식이고, 이 곡이 끝까지 붙잡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