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인 〈Landing〉
어떤 날은 공항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의자에 기대어 졸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전광판을 힐끔거리면서 기다리는 얼굴들. 그런데 조금만 상상해 보면, 각자가 향하는 목적지와 떠나온 자리,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전부 다르다. 누군가는 이제 막 일상을 벗어나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일 것이다.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나의 상황이다”라고 말했을 때, 내가 떠올리는 장면이 바로 이런 얼굴들이다. 그는 ‘나’를 공중에 떠 있는 추상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언제나 어느 시간, 어느 도시, 어느 관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고, 누구를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기다리는가”라는 질문이 곧 ‘나 자신’을 묻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도착지에 도달했을 때만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디론가 이동하는 중이라는 이 상태 자체가 이미 나의 일부라는 것. 오르테가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정예인의 〈Landing〉 가사를 듣다 보면, 가사 속 화자도 딱 그런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직 활주로에 서 있든, 이미 비행 중이든,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동시에 “누구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계속 곱씹는다. 〈Landing〉 가사에는 “기나긴 활주로 위 빼곡히 쌓인 기억 / 빛을 잃지 않아”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과거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장면들이지만, 활주로 옆을 따라 나란히 놓인 등불처럼 지금의 비행을 안내해 주는 것들이다. 우리가 사랑을 기억할 때도 비슷한 것 같다. 다 끝났다고 말해 보아도, 어떤 기억들은 자꾸 현재의 나를 비추는 경로표처럼 남아 버린다. 그래서인지 “여긴 비가 와 / 그곳은 어때 I hope you’re fine / 울지 마 almost there”라는 대목을 들으면, 서로 다른 하늘 아래에 있지만 같은 긴 여행 위에 있다는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나는 이곳에서 비를 맞고 있고, 너는 다른 어딘가에 있지만, 둘 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채 각자의 활주로를 굴러가고 있는 중이라는 느낌. 거리는 멀어도, ‘상황’은 묘하게 겹쳐져 있는 순간이다.
이 노래 가사에서 특히 마음이 머무는 부분은 “You and I 무지개 너머에 / chasing for 우리만의 wonderland / 너에게로 dive”라는 고백이다. 여기서 ‘wonderland’는 현실을 다 지워 버린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둘이 함께 꾸려 가기로 한 구체적인 세계에 가깝다. 언젠가 언젠가는 도착하고 싶었던, 하지만 아직 맨몸으로 향하는 중인 어떤 자리. 오르테가의 말을 빌리면, 화자는 자기 삶의 “상황”을 한 사람을 향해 오래 비행하는 과정으로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내가 있는 도시, 일, 관계, 기분들이 전부 “어디로 착륙하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얽혀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단순한 재회 판타지가 아니라, 도착을 향해 가는 비행 그 자체를 끝까지 비추는 노래처럼 들린다. 목적지의 이름은 너지만, 그곳까지 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어떤 날씨를 통과하고, 어떤 속도로 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Landing〉이 흥미로운 점은, 이 여정을 마냥 낭만적인 직선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어지는 가사 “수없이 다시 멀어지더라도 나 / 너를 유영하면서 찾아갈게”라는 구절은, 현실에서는 비행이 항상 곧게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장이다. 기류가 바뀌고, 예상치 못한 난기류를 만날 수 있고, 다시 돌아 나와 경로를 조정해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그럼에도 “유영하면서 찾아가겠다”라고 말하는 태도 속에는, 이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내향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오르테가식으로 말하면, 여기서 사랑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삶의 구조에 가깝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추상적인 ‘나’가 아니라, 너를 향해 헤엄치기로 한 그 순간부터 “너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는 상황을 동시에 사는 존재가 된다.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든, 이 선택이 나의 얼굴과 시간을 서서히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후반부의 “약속해 다신 네 손 놓지 않을게 / 넌 이 여행의 마지막 arrive”라는 고백은, 그래서 단순한 로맨스 대사를 넘어서 들린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유동적인 시대에, 누군가를 향해 “너는 이 여행의 마지막 도착점”이라고 말하는 일은 어쩌면 조금 촌스럽고, 동시에 무섭고, 그래서 더 어렵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오늘의 너와 내일의 너, 오늘의 상황과 내일의 상황이 계속 바뀌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누군가를 향해 “그래도 나는 네 쪽으로 착륙해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순간, 삶의 방향은 희미하게나마 한 축을 얻는다. 그 축이 무조건 지켜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비행이 길어질 수도 있고, 중간에 경로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항로를 어디에 맞춰 두었느냐”는 여전히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오르테가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 위에서 어디를 바라볼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이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듣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날고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우리는 종종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만 묻다가, 정작 “무엇을 향해 가고 싶은지”를 잊고 지내곤 한다. 〈Landing〉 가사는 그 순서를 살짝 뒤집는다. 완벽한 착륙을 약속하는 대신, 흔들리는 하늘과 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안고도 계속 날아가 보겠다고 말하는 쪽에 서 있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방식과 더 가까운 사랑의 얼굴이다. 삶은 늘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활주로에, 예고된 비행경로로만 착륙하지 않는다. 종종 늦고, 돌아가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너에게 가고 싶다는 마음, 어쨌든 언젠가 한 번은 너의 이름이 적힌 활주로에 내려보고 싶다는 고집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직 도착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너 쪽으로 날고 있는 사람이라고. 〈Landing〉 가사는 그 고백을, 너무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가볍게 넘기지도 않은 채 부드럽게 붙들고 있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