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수많은 나에게 건네는 인사, “안녕”

태연 〈인사 (Panorama)〉

by 문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말이 있다. “안녕.”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안녕이 아니라, 한 시절을 보내 줄 때 하는 그 안녕.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게, 그래도 한 번은 손을 흔들어 줘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인사’ 말이다.


태연의 〈인사 (Panorama)〉를 듣고, 나는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를 함께 떠올렸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깊은 순간은 거대한 사건보다, 작고 조용한 경계”라고 말하던 사람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끝난 관계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이 돌이킬 수 없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장켈레비치는 말한다. 아주 작은 몸짓, 예를 들면 한 번의 인사로도 우리는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인사〉를 듣다 보면, 바로 그 “작은 몸짓”이 얼마나 어렵고 섬세한 일인지 체감하게 된다. 노래 속 화자는 지나간 장면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지만, 동시에 참 아름다웠던 시절. 그때의 너와 나를 떠올리며, 마음속에서 조용히 손을 들어 인사하는 장면. 나는 이 부분에서 늘 조금 멈춰 서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과거에게 이렇게 잘 인사하지 못해 온 사람이라서 그렇다. 끝난 관계나 지나간 계절 앞에서, 나는 대개 “없었던 일처럼” 지워 버리거나, 반대로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며 한참을 맴돌곤 했다. 둘 다 인사라기보다 회피에 가까운 태도였다는 걸 나중에야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노래에서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가”라는 말이 나올 때, 나는 그 문장을 상대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듣는다. “이제 그만 서 있지 말고, 그래도 앞으로 가자.” 떠나는 사람에게 소리 높여 작별을 외친다기보다, 더 이상 붙잡고 서 있지 않겠다는 자기 확인에 가깝다. 장켈레비치가 말하는 인사도 그런 것 같다. 과거를 부정하거나 지워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면서도 거기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안녕’이라는 두 글자 안에, “그때의 너도, 그때의 나도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승인과 “그래도 나는 이제 다른 시간으로 가겠다”는 결심이 동시에 들어 있는 것이다.


가장 마음이 꽂히는 부분은 마지막에 가까운 구절들이다. 돌아보면 찰나처럼 짧았고, 그래서 더 눈부셨던 수많은 순간들. 그 장면들 속의 ‘너’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도 그 인사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그려질 때, 나는 이상하게도 조금 울컥해진다. 예전에는 인사가 끝을 의미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인사는 “무효화”가 아니라 “편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시절을 지우거나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내 삶의 한 챕터로 조용히 꽂아 넣는 일. “그래, 그때의 우리는 분명히 거기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이다”라고 인정하는 일.


장켈레비치는 이런 순간을 “거의-아무것도-아님”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면 별 사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짧은 말 한마디, 손을 한 번 들어 흔드는 몸짓 같은 것들. 하지만 그는 그런 작은 장면 속에서 삶의 방향이 바뀐다고 본다. 거창한 선언이나 드라마틱한 재회보다, 차분한 작별 인사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고. 나도 조금씩 그 말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화려한 장면보다, 나를 오래 따라오는 건 늘 이런 순간이다. 끝났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욕하지 않고, 나 자신만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고마웠어, 안녕”이라고 말하는 마음.


〈인사〉는 그런 연습을 대신해 주는 노래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내 안의 여러 계절에게 인사를 해 본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어느 여름, 끝내 말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마음, 이미 멀리 떠나버린 사람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괜히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아, 생각하기도 싫다”라고 밀어내기보다는 그렇게 말해 본다. “수고했다, 그때의 나야. 고마웠다, 그때의 너야. 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도 괜찮다.”


시간은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는 건 바꿀 수 없는 전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떤 말투로 떠나보낼지는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는 선택이다. 장켈레비치는 바로 이 지점을 끝까지 붙들어 본 철학자였고, 태연의 〈인사〉는 그 질문을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건드리는 노래다.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나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내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내 안 어딘가에 자리 잡은 여러 파노라마들. 언젠가 다시 떠올려도 괜찮을 장면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인사”를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매일의 나에게, 지나간 계절에게, 이미 멀어져 버린 사람들에게. 〈인사〉를 들으며 나는 그 연습을 조금 더 잘해 보고 싶어졌다. 더 이상 붙잡지도, 완전히 지워 버리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시절의 우리, 분명히 아름다웠고, 이제는 정말 안녕.” 그리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아주 조금 다른 나로 걸어 나가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