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의 궤도에서 내린, 느린 자전거

벨(KISS OF LIFE), 〈RIDE(베일드뮤지션 X 벨 (KISS

by 문어

어제 아침, 간신히 눈을 떴는데도 몸이 납처럼 무거웠다. 알람까지 끄고 늦잠을 자려고 했지만,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보니 누군가는 “오늘 날씨 미쳤다, 나가야지”, 또 다른 누군가는 “힐링하자”라고 게시글을 올려두었다. 모두가 잘 쉬어야 한다고, 재밌게 놀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에는 또 묘한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애써 미뤄 둔 약속들을 떠올리다 보면 사람도 만나기 싫고,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도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벨의 〈RIDE〉는 바로 이 애매한 자리에 서 있는 나의 하루를 포착하는 노래다. 화자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 피곤하다”라고 중얼거리며 하루를 연다. 음악을 틀고, 날씨를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 보지만 이 익숙한 루틴이 삶을 통째로 바꿔 줄 것 같지는 않다. 친구들은 날씨가 좋으니 강가에 모이자고 손짓하지만, 화자는 “난 외로워서 그런 종류의 ‘재미’는 원치 않는다”라고 조용히 비켜선다. 겉으로 보면 별일 없는 일상, 늘 있는 초대와 사소한 거절의 장면이다. 그런데 이 미묘한 피곤함과 어색한 거리 두기 속에는, 한국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짚어낸 오늘의 정동(情動, Affect)이 겹쳐 있다. 한병철에게 지금 시대의 인간은 더 이상 외부에서만 억압당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압박하며 “더 잘 살아야 한다”라고 재촉하는 성과 주체에 가깝다. 〈RIDE〉의 가사를 그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단순한 일상이 아닌 성과와 피로 사이에서 어정거리는 한 사람의 내적 풍경을 담아낸 작은 에세이처럼 읽힌다.


이를 조금 더 분명히 보기 위해, 한병철이 진단한 두 가지 문제를 먼저 정리해 보자. 첫 번째는 “성과사회”와 “성과주체”라는 도식이다. 그는 근대의 규율사회가 ‘하면 안 되는 것’을 중심으로 사람을 통제했다면, 오늘의 사회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슬로건을 앞세워 각자가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고 본다. 물론 현실에서, 규율의 장치와 성과의 논리는 뒤섞여 작동하지만, 그가 주목하는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예전에는 외부의 권위가 명령하고 감시했다면, 이제는 “더 열심히, 더 유능하게, 더 행복하게”라는 구호가 내면 깊숙이 침투해 사람들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주체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피해자라기보다, 스스로를 끝없이 갈아 넣는 자기 착취의 주체가 된다. 겉으로는 자유와 자기실현의 언어가 넘친다. 하지만 그 자유는 “더 많이, 더 잘” 하라는 형식으로 변형된 명령에 가까운 것이다. 문제의 두 번째는 이런 구조가 만들어 내는 특유의 소진감과 고립, 그리고 그것을 덮어버리는 ‘힐링’과 ‘즐거움’의 산업이다. 한병철이 말하는 피로는 단순히 일이 많아서 생기는 육체적 피곤함이 아니다. “무엇을 해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감각,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자기 평가가 쉼 없이 작동할 때 생겨나는 정서다. 쉴 때조차 잘 쉬어야 할 것 같고, 여행과 취미, 심지어 휴식마저 콘텐츠로 기획되고 평가된다. 예를 들어,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나면 ‘이렇게 보냈어도 괜찮나, 뭔가 하나라도 남겨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상태를 보자.. “힐링”, “소확행”, “알차게 쉬기” 같은 말은 겉보기에는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그 언어도 결국 “쉼조차 의미 있고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압박을 강화할 때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여가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쉼이 아니라, 다시 일하기 위해 자신을 재충전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된다. 놀아야 한다는 의무,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 아래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 자기 내부에 갇힌 채 조용히 소진되어 간다. 이 두 가지 개념 즉, 성과주체와 성과사회가 낳는 피로, 그리고 기능화된 힐링을 염두에 두고 〈RIDE〉를 다시 들으면, 노래 속 일상 묘사가 전혀 다른 층위를 드러낸다.


먼저 성과주체의 관점에서 가사를 보면, 노래의 서두에 등장하는 피곤함은 단순한 잠 부족이 아니다. 화자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피곤하다”, “아직도 잠이 덜 깬 것 같다”라고 말하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런 상태를 이유로 하루를 통째로 멈춰 세우지는 못한다. 그는 익숙하게 음악을 틀고, 날씨 앱을 열어 하늘을 확인하고, 창문을 열며 자기만의 루틴을 수행한다. 이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아침 풍경이지만, 동시에 “컨디션이 어떻든 정해진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기 명령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이어지는 가사에서 화자는 “매일이 복잡하고 조금 지루하긴 해도, 행복이란 게 뾰족한 무엇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소소한 즐거움으로도 충분하다고 달래 보지만, 곧바로 “그런데도 뭔가 부족하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이는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주체의 딜레마와 정확히 맞닿는다. “지금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동시에 “이 정도로는 어딘가 모자란 것 같다”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 만족해야 한다는 명령과 더 올라가야 한다는 압력이 한 몸 안에서 동시에 작동할 때, 사람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또 스스로를 다그치며 서서히 지쳐 간다. 친구들이 “날씨 좋은데 강가에 모이자”라고 부르는 것은, 겉으로는 아무 의무도 없는 잔잔한 모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과사회의 문법 속에서 이런 초대는 “이럴 때는 나가서 힐링을 해야지”, “이런 날 집에만 있으면 손해지”라는 자기 계발 명령과 쉽게 결합한다. 그래서 화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외롭기 때문에, 그런 식의 ‘재미’는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재미’는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찾는 놀이가 아니라,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고 이야깃거리로 소비할 수 있는 이벤트, 일종의 “즐거워야 하는 과제”로 느껴진다. 〈RIDE〉의 화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멈칫한다. 더 재밌게 살아야 한다는 요구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몸의 감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성과주체의 분열 그 자체다.


그러나 이 곡이 흥미로운 지점은, 그 분열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주 작은 전환의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다는 데 있다. 노래의 후반부로 갈수록 화자의 바람은 점점 또렷해진다. 그는 거창한 성공이나 눈에 띄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저 너와 함께 같은 리듬을 타고 싶다”라고 말한다. “All I want is just to vibe with you now”라는 한 줄에는, 성취의 목록에 추가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목적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이어지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 줄게, 네가 원한다면 어디든 같이 가 보자”라는 제안 역시, 성과사회가 요구하는 ‘자기 관리’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화자는 상대에게 “더 나은 네가 되어라”라고 독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된다고, 어디로 향하든 괜찮다고 말한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장면은 도시에서 흔히 소비되는 여가의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이 노래 안에서는 조금 달리 읽힌다. 속도를 높여 더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한 주행이 아니라, 바람을 맞고 서로의 옆을 지키며 한동안 아무 목적 없이 ‘타고 있는 상태’를 누리는 움직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한병철의 언어로 옮기면, 〈RIDE〉는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알차게”라는 자기 명령에서 잠시 비켜서 “조금 느리고, 조금 쓸모없어 보여도 괜찮은 함께 있음”을 조용히 상상하는 노래다. 이때 노는 시간은 더 이상 다음 성취를 위한 충전 시간이 아니라, 당장 아무 쓸모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무용성 덕분에 성과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시간이 된다. 친구들의 초대에 선뜻 응하지 못하던 화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 같이 타고 싶다”라고 말하는 전환에는, 기능화된 힐링에서 벗어난 다른 종류의 쉼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정리해 보면 〈RIDE〉 속 화자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피곤하다”는 말로 하루를 열지만, 그 피곤함은 단순한 컨디션 난조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듯한 막막함에서 비롯된 감정에 가깝다. 친구들이 부르는 강가 모임은 겉으로는 힐링의 초대지만, 성과사회 안에서는 “즐거움조차 잘 수행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한병철의 첫 번째 개념인 성과주체의 도식이 〈RIDE〉의 가사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화자는 ‘행복이 별거냐’고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해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감각을 지우지 못한다. 자기 위로와 자기 압박이 한 몸 안에서 공존할 때, 사람은 스스로를 조금씩 갈아 넣으며 조용히 소진된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지금 이 순간 너와 함께 단지 같은 리듬을 타고 싶다”는 고백이 등장하면서, 두 번째 개념인 피로와 힐링의 문제가 다른 방향으로 비틀린다. 이때 화자가 바라는 것은 인생에 기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업적이 아니라, 쓸모없음 그대로를 허용하는 함께 있음의 시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는 장면은, 성과사회가 요구하는 “잘 쉬기”와는 다른 방식의 쉼을 상상하게 한다. 성취를 위해 기능화된 휴식이 아니라, 성취와 상관없이 누군가와 나란히, 느릿하게 ‘타고 있는’ 시간을 향한 작은 동경이다. 한병철이 이 노래를 들었다면, 그는 아마 〈RIDE〉를 오늘의 피로를 하소연하는 곡으로만 듣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성과사회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성과주체가 되어 버린 한 사람이, “조금 느려도 괜찮은 리듬”과 “아무 목적 없이 함께 타는 시간”을 상상하는 소규모 실험으로 흥미롭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이 노래는 우리에게 어떤 물음을 남기는가. 나는 지금 얼마나 자주 “재밌게 살아야 한다”, “알차게 쉬어야 한다”는 자기 명령에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선택하는 ‘힐링’과 ‘놀이’는 정말 나를 느슨하게 풀어 주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더 잘 버티기 위해 나를 관리하기 위한 또 다른 프로젝트에 불과할까. 요즘 내 삶에서 〈RIDE〉가 상상하듯 아무 목적 없이 누군가와 같은 바람을 맞으며 느릿하게 움직였던 순간은 언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