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 클레어 데더러
『달과 6펜스』를 처음 읽었던 것은 15살 무렵이었다. 책의 어떤 문장들은 내게, 예술이란 끝까지 가보는 집착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착각을 선물했고, 그 착각은 기묘하게도 내게 위로를 주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위대한 작품의 등 뒤에 그 작품을 가능하게 한 폭력과 방치와 권력의 그림자가 같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알게 된다.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예술가(혹은 예술)의 잔상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그리고 그 잔상을 정리하는 방식은 윤리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회피일까,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건드리는 걸까.
데더러가 세우는 문제의식은 짐짓 “작품과 창작자는 분리 가능한가”라는 오래된 토론을 되풀이하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분리/분리하지 않음’의 판결문을 쓰지 않고 ‘팬(관객)이라는 주체의 감정과 책임’을 깊게 다룬다. 프롤로그 이후 우디 앨런, 마이클 잭슨, J. K. 롤링, 피카소·헤밍웨이, 바그너, 나보코프, 도리스 레싱·조니 미첼, 카버, 마일스 데이비스 등 각 장이 한 사람(혹은 한 범주)의 “괴물성”을 호출해 사례를 쌓되, 결론을 ‘규칙’으로 닫지 않고 “나도 괴물일까?” 같은 자기 심문으로 되돌아온다. 결국 이 책은 ‘가해 예술가의 목록’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그 목록을 읽는 우리 자신의 취향·기억·죄책감의 작동’을 해부하는 비평 에세이인 것이다.
책의 미시적 추진력은 ‘정답’이 아니라 ‘조건’의 문장들에서 나온다. 데더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작품이 위대한 작품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녀의 이 문장이 강력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 위대함을 작품 내부의 속성(형식, 완성도)으로 고정하지 않고 수용자의 삶(경험, 시대, 상처)으로 이동시켜, 예술 감상의 윤리 문제를 ‘밖에서 들이닥친 도덕’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었던 역사’로 만든다. 둘, 예술의 위대함을 감상자인 우리에게 의존하는 구조는 판결을 유예하면서도 회피하지 않는다. 이것은 위대함이 상대적이라는 말로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다. 책임이 생기는 장소를 ‘나의 조건’으로 정확히 지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끝까지 감정적이되, 감정의 책임 소재를 흐리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 시선에 분명한 그늘도 있다. ‘팬의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루는 순간, 논의의 무게중심이 피해자·제도·산업 구조가 아니라 “나는 이걸 계속 좋아해도 되는가”라는 개인의 내면극으로 끌려오기 쉽다. GQ 인터뷰에서조차 데더러는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제도적 문제를 고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결국 개인의 모순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쪽에서 책은 가장 빛이 난다. 그 결과 “이 책이 말하지 않는 것”이 생긴다. 첫째, ‘불매/보이콧’ 같은 집단적 실천이 실제로 언제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경험적 조건, 둘째, 사례가 주로 서구 대중문화·예술 정전에 기대는 데서 생기는 문화권·계급의 편향, 셋째, 무엇보다 피해 경험의 언어가 ‘팬의 상실감’과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기준. 이 책이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수록, 그 정직함이 다루지 못한 영역은 더 또렷해진다.
그럼에도 옹호 가능한 가장 강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애초에 이 질문은 단순 계산으로 풀 수 없는 종류이다. 그리고 성급한 원칙은 현실의 사랑과 배신을 더 왜곡한다. 그러니 ‘해결’이 아니라 ‘견디는 법’을 훈련시키는 책이 필요하다. 실제로 『뉴요커』는 이 책이 해답을 내리기보다 사랑과 혐오의 공존을 정직하게 직시하도록 만든다는 취지로 읽고, 『TIME』 역시 쉬운 판단을 거부하는 불편함 자체가 오늘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기준에서 재반박하면, 유예가 곧 성찰의 증거는 아니다. 『가디언』은 책이 얇고 충분히 조사되지 않았다고 혹평하기도 했고, 『시티 저널』은 중요한 주제를 “돌기만 할 뿐” 윤리의 초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복잡함을 존중하는 것과, 논증을 끝내 조직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의 미덕은 모순을 ‘인정’하는 데 있고, 약점은 그 모순을 ‘판단 가능한 형태’로까지 압축하는 일에서 종종 발을 뺀다는 데 있다.
한 줄 총평: 정답을 주지 않는 대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기 어려워지는 책.
추천: 창작자의 윤리 논쟁을 ‘내가 무엇을 사랑해 왔는가’라는 자전적 질문으로 다시 쓰고 싶은 독자에게.
경고: 깔끔한 결론, 촘촘한 규범 설계, 혹은 더 넓은 자료조사에 기반한 “원칙”을 기대한다면 답답함이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