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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Oct 17. 2023

관계 적금

나는 꽤나 사교적인 사람이다. 아니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기에 일주일에 많게는 여덟 번 적게는 세 번 정도의 약속을 정해 사람을 만났다. 만나서 하는 얘기라곤 누구랑 누가 헤어졌다느니, 누구는 요즘 어떻게 사느냐느니 같은 남 얘기. 혹은, 한 번 웃고 넘어갈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 같은 얘기. 그때의 대화 주제는 대체로 햄버거 같은 얘기였다지. 영양가가 있긴 하지만 몸에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이런 만남을 지속해 오다 삼 년 전쯤부터 사람들과의 약속이 참 피곤하게 느껴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았고, 혼자 영화 보는 일이 좋았고, 혼자 노는 게 좋았다. “혼자, 혼자, 혼자” 하는 일들에 꽤나 만족스러운 삶을 지속해 왔다. 당연히 편하디 편한 혼자의 삶은 많은 관계의 끊어짐을 가져왔다. ‘그래도 내 곁에 남을 사람은 어떻게 해도 남아있을 거야’하는 이상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았던 나.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게 되었다. 그 모양새가 나의 관계와 어찌나 닮았던지. 고개를 내렸다 올렸을 뿐인데 아까 그 구름은 이미 저만치 달아나더라. 이제껏 고개만 들어 올리면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구름이었기에 지나간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꾸준히 머물러줄 구름이 없다는 것. 각자 제 갈 길 바쁘게 어디론가 흘러갈 뿐. 나를 위한 구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는 무분별한 관계보다 소중한 관계를 맺고 싶어.’

그럼에도 내 곁에 있어 준 사람들. 그들은 내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남아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내 곁에 있어 준 거였다. 그 생각이 깨달아진 후로 그 관계들이 참 소중해졌다. 한동안은 그 사람들과 함께하며 소중한 관계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갔다. 자존은 나로 인해 먼저 채워져야 하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채워질 수도 있음을 이들을 통해 느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너와 내가 함께 호흡하며 함께 멋있어져 가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누며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가 보는 것.

관계의 비밀을 알게 되니 이 관계를 더 확장하고 싶었다. 좋은 거 보면 나누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다짐의 하나로 나는 관계 적금이란 걸 들기 시작했다. 관계 적금이란 일주일에 한 번씩 커피 한 잔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다. 한 주에 딱 한 명. 생각나는 사람에게 커피를 보내며 안부를 나누는 일. 커피를 보내야 하는 건 핑곗거리가 필요하기 때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안부를 묻는 아주 사소한 일에 정성을 쏟고 싶었다. 나름 이렇게 해보니 주는 마음이 참 좋았다. 선물은 준비하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간다고 했던가. 안부를 물을 때도 괜히 더 마음을 담게 되고, 받는 이도 그 마음을 알아 본인의 안부를 정성껏 말해준다.

넣고 넣다 보면 더 큰 가치를 받게 되는 적금처럼, 안부를 묻는 사소한 일들이 쌓이다 보면 관계에 더 큰 가치를 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은행 적금은 나 혼자 받는 것이지만 관계 적금은 함께 받는 것이기에 더 의미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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