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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pr 03. 2024

삼천원 김치찌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십일 년이 지났다. 두 손으로 세기에는 이제 손가락이 부족한 지경. 어디 가서 나이 먹었다고 명함을 내밀 수준은 되지는 못하지만 야금야금 남들처럼 나이를 먹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이 제일 늙은 거 아닌가. 둘 중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지금이 제일 늙은 게 좋다. 하루하루 아까워하며 살 수 있으니까.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급식당번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 설명해 주신 급식당번의 메리트 중 하나는 석식비 면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던지라 야간자율학습(야자)을 위해서는 석식을 꼭 먹어야 했다. 집안 사정이 그리 넉넉지는 않았으니 나라도 이 가정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스무 시간 주겠다는 봉사 시간은 모르겠고 석식이 공짜라는 소리에 어느새 신청한 급식당번. 삼 년 내내 하게 될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학교 근처 식당에 대한 추억이 있지 않을까. 그 당시 우리 학교 전교생이 천오백 명이었다. 급식실은 두 곳. 한 곳은 일 학년만 먹고 한 곳은 이, 삼 학년들이 밥을 먹는다. 석식은 필수가 아니었으므로 종종 급식당번들의 일손이 남았다. 일손이 남을 때면 나는 친구들과 학교 바깥으로 도망쳤다. 급식은 이제 그만. 이라는 반항심을 가지고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밥을 먹었다. 급식당번임에도 말이다.


자주 갔던 곳은 메뉴가 어마어마하다. 김치찌개, 돌솥비빔밥, 제육 덮밥, 순두부찌개 등 모든 메뉴들이 학생들에게만 삼천 원이었다. 반찬은 또 어찌나 좋았는지. 스팸이 나온다. 그것도 계란을 입힌. 게다가 밥은 무한 리필. 공깃밥 한 공기를 다 먹으면 밥솥에서 내가 퍼서 가져가면 된다. 추가금은 받지 않으신다. 사장님은 두 분으로 할머님과 그녀의 따님이셨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자주 갔던 곳이라 식당에 들어가면 내 이름을 불러 주시곤 했다.


나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야 했다. 수업을 하지는 않았지만자습을 해야했기에.. 오후 5시까지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토요일에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아서 바깥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삼천 원을 챙긴다. 학교를 나선다. 띠링. 가게에 앉아 주문을 한다. 김치찌개 한 그릇이요. 그렇게 뚝딱 한 그릇을 해치우고 밥 한 공기를 더 퍼온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학생들 빈 속 하나는 꽉 채워줬던 곳.


졸업을 하고서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찾아간다. 학생이 아니면 오백 원을 더 받으신다. 그래봤자 삼천오백 원. 사장님께 학생이 아니면 오천 원은 받으셔도 되는 거 아니냐며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사장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럼 에녹이는 오천 원 두고 가"


저는 만 원 두고 갈게요라며 괜히 허풍 섞인 농담을 건넨다. 주머니에는 현금 오천 원밖에 없었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속 든든한 김치찌개를 먹고 나온다. 시간은 흘렀는데도 맛은 여전하다. 마치 두 분의 마음처럼.


조만간 한 번 더 가야겠다. 매번 갈 때마다 나를 알아보실까 기대하면서 한 편으로는 까먹으시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안은 채 말이다. 그렇게 식당 문 앞에 서면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된다. 어색함과 보고싶음 그 중간의 마음으로 문을 연다. 띠링. 손님을 반기는 벨소리 너머로 나 또한 인사를 건네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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