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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SN 변 호 사 님 Nov 24. 2020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100% 온라인 시험을 본다.

이 학교는 자원이 압도적이구나


처음 입학하자마자 받은 강렬한 인상이었다. 재정, 인물, 교육, 학술, 네트워크, 서비스, 심지어 음식까지 차고 넘쳤다. 워낙 자원이 방대하다 보니 그 자원을 체계화하는 시스템도 따로 있었다. 나 같은 초보자는 자원을 이용하려면 그 시스템에 접근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처음 몇 달 동안 이 학교가 왕창 쏟아붓는 자원과 시스템에 허덕였다. 어떤 것에는 적응을, 어떤 것에는 무시를 하게 될 무렵,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에 부닥쳤다. 그것은 시험.    


판데믹 이후로 학교 자원으로부터 단절되자, 오히려 생활이 심플해져서 좋았다.


심지어 이 학교에서는 시험도 자원화돼있어서, 시험을 보려고 해도 시스템 접근법부터 알아야 했다. 내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처럼 그냥 시험시간에 맞춰 시험장소에 법전 들고 나타나서 손으로 답안을 쓰면 되는 게 아니었다. (아예 답안지를 안줌...) 


모든 게 100% 온라인 시험이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도 시험은 100% 온라인으로만 치러졌다. 어떤 시험이든 EXAM 4 라는 시험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시험을 보려면 EXAM 4 부터 깔아야 한다. 


프로그램을 깔려면 자기 노트북이 있어야겠죠? 입학하기 전에 학교에서 준비물 공지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노트북은 필수" 라는 거였다. 일정 사양 이상되는 노트북이 있어야만 학교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이다. 


EXAM 4 는 각 학생이 이번 학기에 어떤 시험을 봐야하는지 꿰뚫고 있어서, 학생이 정해진 시험시간에 프로그램에 접속하면, 해당 시험문제를 열어준다. 학생은 EXAM 4 프로그램 상에서 직접 답안을 입력하고, 시험 시간이 다 되면 답안을 프로그램에 업로드 한다.    


EXAM 4 초기화면

 

그러니까 아무리 인클래스 시험이라도 손으로 쓰는 건 처음부터 안된다. 시험시간에 시험 장소에 등장했더라도 자기 노트북이 없으면 그 학생은 아예 시험을 못 본다. 


온라인 시험 보기 실전!


시험 보는 입장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EXAM 4 를 최신판으로 업데이트하고 자기 Exam ID를 적어두는 것. EXAM 4 프로그램은 매 학기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학기가 바뀔 때마다 새로 다운로드 해야 한다. Exam ID는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학번 외에 따로 주어지는 번호인데, 이것 역시 매 학기 새 번호가 주어진다.  

  

Exam ID를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시험을 못 봄...

  

빨간 동그라미 부분에 익명번호인 Exam ID 를 입력하고, 파란 동그라미 부분에 시험 볼 과목을 선택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채점하는 교수님 입장에서는 답안지에서 학생의 이름이나 학번은 볼 수 없고, 오로지 익명번호인 Exam ID만 볼 수 있다.    


다음 단계~~

 

폰트나 사이즈, 글자 색깔을 선택하고, 타이머가 필요하다면 타이머를 맞춘다. 주어진 시험 시간이 지나더라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꺼지거나 하진 않는다. 늦게라도 제출은 할 수 있다. 다만 시스템 상 늦은 시간 만큼 학생의 점수가 자동으로 깎인다.  


늦게 제출한 학생의 점수가 자동으로 깎이는 것은 교수님의 권한 밖이라서, 아무리 교수님이 학교에다가 부탁을 해도 깎인 점수를 되돌리는 건 매우매우매우 어렵다(고 한다). 


다음엔 시험 모드를 선택한다. 인클래스 (In-Class Exam) 라면 클로즈 모드인지, 오픈 모드인지, 오픈+네트워크 모드인지까지 선택하고, 테이크홈 (Takehome Exam) 이라면 그냥 Takehome 만 선택하면 된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는 여기에서. koreanlawyer-americanlawyer.tistory.com/17  


이건 인클래스 클로즈 모드.


이건 인클래스 오픈 모드

 

인클래스 오픈+네트워크 모드.


테이크홈 모드.

 

이렇게 다 시험 모드를 선택했으면 이제 시험문제를 다운 받아 그때부터 EXAM 4 상에 답안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 답안은 실시간으로 내 노트북 하드에 저장되고, 워드 카운트가 가능하다. 시험문제 별로 답안을 가르고 싶으면 Answer Divider 기능을 쓰면 된다.    


요로케.


답안지를 다 작성했으면 자기 답안지를 업로드 한다. "Exam Submittal Succesful" 팝업이 뜨는 걸 확인하면 시험은 다 끝난 것이다. 본인이 쓴 답안지를 보관하고 싶다면 방금 업로드한 답안지를 EXAM 4 에서 다운 받으면 된다.    


End Exam and Submit 버튼을 누르고,


Exam Submittal Successful 팝업이 뜨면 끝.


그럼 내가 제출한 답안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교수님이 보시는 답안지는 어떤 모습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므로, 석지영 (Jeannie Suk Gersen) 교수님이 2017년 형법 과목 (Criminal Law) 에서 채점하신 답안지를 예시로 보자. 이 분은 하버드 로스쿨에서 유일한 한국계 종신교수님이다.   


이 분이 석지영 교수님 (Suk Gersen).


아래 예시 답안지를 보면, 빨간 박스에 익명 번호인 Exam ID가 나오고, 파란 박스 안에 2017년 가을학기 (F17) 석지영 (Suk Gersen) 교수님의 형법 (Criminal Law) 시험이라는 게 뜬다. 초록색 원 부분은 이 시험 타입이 테이크 홈이라는 걸 보여준다.   


출처는 Toodope. Toodope이 뭔지는 여기에 koreanlawyer-americanlawyer.tistory.com/19

  

맨 아래 쪽에는 워드 카운트가 되어, 교수님이 지정한 글자 수 제한을 위반했는지 안했는지가 나온다. 학생 입장에서 답안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내내 워드 카운트가 된다. 


아래 답안지를 보니 이 학생은 1번 문제 답안을 다 쓰고 2번 문제로 넘어갔을 때 Answer Divider 를 썼다. Answer Divider 기능은 써도 되고 안써도 그만이다.    


그래도 시험 보다보면 Answer Divider는 꽤 유용함.


이렇게 시험 방식이 복잡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매 학기 시험 때가 되면 몇 차례에 걸쳐서 교육을 한다. 한 3-4번 정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온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별도로 2-3 차례 상세한 안내 메일도 보낸다. 왜 시스템에 대한 접근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한지 아시겠죠~ 


코로나 시대의 기말시험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이미 판데믹 이전부터 100% 온라인으로만 시험을 봐왔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판데믹 이후에도 큰 무리 없이 온라인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것 같다. 판데믹 이후로 인클래스 시험은 모두 테이크홈 시험으로 전환됐다. 


다만 기존의 테이크홈 시험처럼 8시간을 준 건 아니고, 원래 인클래스에서 보던 시험시간만큼 (예를 들어 3시간)만 주고, 학생들이 전세계에 퍼져 있어 시차가 있다는 걸 고려해 원데이 테이크홈에 시험 가능시간을 07:30부터 16:30까지가 아니라 0:00시부터 24:00까지로 설정하는 식이었다.  


이건 아마도 다른 로스쿨도 마찬가지 일텐데, EXAM 4를 쓰는 로스쿨이 100%는 아니라도 상당히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있는 몇몇 로스쿨에서도 EXAM 4를 쓴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봐온 덕에 학생들은 시험문제와 자기 답안지를 하드에 저장해둘 수 있었다. 그래서 아마 자체적인 족보 사이트에 방대한 족보가 잘 정리되어 사용되는 것일 테다. 이런 족보에 대해서는, 


를 보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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