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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Jan 06. 2019

칼 슈미트 <정치신학>

슈미트의 주권이론을 통해 권력을 탐구했다.

1. 들어가며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읽으면 고대 로마 공화정 시절 ‘독재관’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로마 공화정은 주로 원로원이 이끌며 매년 집정관 2명을 뽑아 그들을 지도자로 삼았다. 한편, 평민이 참여하는 민회나 평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민관이 귀족을 견제했다. 그런데 외적의 침입이나 내부의 혼란이 극에 달해 평상시 체제로 위기를 넘길 수 없으면 6개월 한정으로 독재관을 임명했다. 독재관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며 로마에 닥친 위기를 해소했다. 나중에 공화정이 몰락하고 제정이 될 때, 술라나 카이사르는 스스로를 종신 독재관으로 임명해 권력을 장악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들을 부패한 독재자라며 비난했다. 반면, 위기를 넘기자 임명된지 15일만에 스스로 독재관 자리를 내려놓은 킨키나투스 같은 사람은 공화정의 모범으로 칭송했다. 마키아벨리는 ‘독재관’ 제도가 부패하지 않은 집단에서는 비상사태를 극복하고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가 쓴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의 덕은 지금 관점에서 봐도 도덕적이라 하기 어렵다. 마키아벨리가 당시 이탈리아 정세를 일종의 ‘예외상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비상 시국을 정리하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대 로마의 ‘독재관’ 역할을 할 군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군주가 가져야 할 덕을 기술한 책이 <군주론>이다. 


 ‘예외상태’라고 하면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벤야민이나 아감벤을 읽을 때, 그들의 논지가 이 책을 바탕으로 전개된다는 해설을 본 기억이 났다. 벤야민은 <폭력비판을 위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등에서 ‘예외상태’와 관련된 내용을 중요하게 다루었고,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 연작에서 이 개념을 확장해 법 바깥에 위치한 ‘벌거벗은 생명’을 통찰했다. 마키아벨리, 아감벤, 벤야민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책이라 생각해 이번 기회에 읽고 내용을 정리했다. 책 뒤편 해설만 읽고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러 자료도 참고했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색달랐다. 위험한 사상가의 독창적 견해를 접하는 호기심,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따라가는 괴로움, 다른 사상가들과의 연관을 희미하게나마 알아챈 기쁨, 책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참조하는 노력이 함께했다. 아래는 <정치신학>과 칼 슈미트의 사상을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다. 




2. 칼 슈미트의 생애와 주요 저작


 칼 슈미트는 카톨릭 보수주의를 근간으로 법과 정치의 토대가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일과 정상상태가 되는 규범을 낳는 결단이라는 행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때 나치를 정당화하는 법학자의 대표로 지내서 ‘나치의 계관법학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36년, 그의 법이론에 인종적 견해가 없다는 이유로 나치로부터 버림받았다. 종전후 점령군이 그를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하는데 기소되지는 않았다. 독재를 정당하게 여기고, 친구/적의 대립을 부추기는 듯한 그의 사상은 위험해 보이지만 정치나 법의 본질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을 전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칼 슈미트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특히 그와 대척점에 서있는 좌파 학자들이 그의 사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실마리를 얻는 경우가 많다. 발터 벤야민은 그의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칼 슈미트에게 보내며 이 책이 <정치신학> 및 <독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며 감사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했다. 샹탈 무페, 조르조 아감벤, 자크 데리다 등이 슈미트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칼 슈미트는 1888년 7월 11일, 독일 중서부에 있는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 집안에서 자라며 카톨릭 신앙의 영향을 듬뿍 받았다. 독일의 여러 대학을 옮겨다니며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1921년 본 대학의 법학과 교수로 부임하는데 이때 카톨릭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자유주의와 무정부주의를 공격하는 일련의 저작을 발표해 명성을 얻는다. 


<정치적 낭만주의> 1919년 발표. 슈미트 사상의 근간이 되는 카톨릭 보수주의가 흔히 ‘정치적 낭만주의’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엄격히 구분하고 정치적 낭만주의를 비판한다. 훗날 <정치신학>에서 상세하게 논의하는 신학과 정치의 대응 관계가 나온다.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주의자가 정치를 낭만주의적으로 가상화하고 쓸데없는 수다를 계속할 뿐이며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참된 실재’를 요구하면서도, 실재에 도달하려 하지는 않는 낭만주의는 세계의 전부를 비현실적인 구성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 형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수다만 늘어놓는다는 말은 <정치신학>에서 ‘영원한 대화’를 하는 자유주의자와 의회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으로도 이어진다. 


<독재> 1921년 발표. ‘독재’의 개념을 역사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분석했다. 마키아벨리도 자주 언급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독재관’부터 중세에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행정관인 ‘특명위원’, 프랑스혁명 시기 공안위원회 등을 다룬다. 나중에 자신이 정당화하는 바이마르 헌법 48조 대통령 비상대권도 일종의 위임독재로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정치신학> 1922년 발표.


<정치적인 것의 개념> 1927년 발표. “특정하게 정치적인 구분이란 정치적 행동과 동기들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은 친구와 적의 구분이다.” 슈미트는 친구/적 관계를 규정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인 것’을 산출하는 단위가 국가임을 밝힌다. 친구/적을 분리하는 일은 규범이 통용되어 정상성을 창출하는 내부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자유주의자가 국가의 본질인 ‘정치적인 것’을 윤리나 경제에 종속시킨다며 비판한다. 또, 개인주의가 정치적인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이론, 정치이론이 없고 오로지 정책비판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보편적 정의(휴머니즘)를 기준으로 삼아, 적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면 오히려 정의에 벗어나는 대상을 비인간화하여 더욱 잔혹하게 대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점은 좌파 지식인들이 바라보는 관점과 유사하다. 실제 슈미트는 무정부주의나 맑스주의에 대해 사상의 대척점으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일련의 논쟁적인 저작을 발표해 스타 학자가 된 슈미트는 1928년 베를린에 입성해 쿠르트 폰 슐라이허 장군과 인연을 맺는다.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헌법 48조에 있는 비상대권을 발동해 프로이센 자치정부를 파면시켰다. 프로이센 정부는 소송을 제기하는데 이때 중앙정부측 대리인으로 슈미트가 법정에 선다. ‘예외상태’의 법이론가답게 비상대권에 대한 법해석을 통해 정부의 행위를 뒷받침한 셈이다. 이후 나치가 집권하자 베를린 대학 교수 겸 프로이센 추밀고문관으로 취임해 나치를 옹호하는 법학자의 대표가 된다. 슈미트의 나치 입당은 하이데거의 권유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1936년까지 나치를 지지하는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나치 법학자들이 그의 사상에는 인종적, 민족적 배경이 없다며 비판해 결국 실각한다. 


 이후 비교적 조용한 삶을 보내며 <땅과 바다>와 같은 책을 내며 저술 활동을 계속하다가 나치가 패망하자 연합군에게 구속된다. 석방 후 고향 플레텐베르크에 머물며 <대지의 노모스>, <파르티잔 이론> 등을 쓴다. 그는 끝까지 추상적 규범주의에 반대해 법질서는 땅에 뿌리내린 구체적 질서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 바이마르 공화국


 <정치신학 -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당시 독일의 상황을 살펴보자. <정치신학>은 1922년 나왔다. 그때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로 지금 봐도 선진적이며 민주적인 헌법을 갖췄으나 전후 혼란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독일 제국은 1918년 킬 군항 수병들의 반란이 촉발한 11월 혁명으로 무너졌다. 독일은 공화국을 선포하고 연합군에 항복(11월 11일)하는데 당시 서부 전선은 여전히 프랑스 영토 안에 있었다. 동부전선에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레닌이 항복했다. 독일 국내로는 외국군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항복하는 바람에 많은 독일인들이 배후중상설(유대인, 사회주의자 등이 획책해 전쟁에서 졌다는 음로론)을 믿었다. 따라서 쉽게(?) 항복한 공화국에 대한 여론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선거가 아니라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극좌파 스파르타쿠스 단의 봉기가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려는 사민당 정권과 우익 민병대 사이에 내전이 벌어져 혼란이 극에 달했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는 빵 하나를 사려면 가방 가득 지폐를 담아 가야 한다는 전설적 초 인플레이션으로 망가졌다. 설상가상으로 베르사이유 조약이 맺어져 독일 영토 일부가 프랑스와 폴란드에 할양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반발해서 1920년에 우익 군인들이 공화국을 전복하려고 카프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힘이 없던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베를린을 떠나 슈투트가르트로 도피했고, 노동자들이 폭동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인 덕에 쿠데타는 실패했다. 


 이처럼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 태생부터 인기가 없고 군부를 장악하지 못해 권력 기반이 허약했다. 온건 사회주의 계열 사민당이 주도했는데, 급진 좌파는 철저한 혁명을 원하며 이들과 대립했다. 군부, 재계, 법조계는 사민당 세력을 사회주의자로 보고 혐오했다. 정국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 칼 슈미트는 혼돈에 처한 독일에 질서를 구축하고자 <정치신학>을 발표했다.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4. 내용 요약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라며 주권을 정의하며 시작한다.주권 개념의 간략한 역사, 예외상태의 뜻을 살펴보고 바이마르 헌법 48조 대통령의 비상대권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했다. 한편, 자유주의 법치국가는 예외사례를 무시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다. 법질서가 유효한 상태, 즉 정상상태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정상상태를 만드는 동안은 이와 반대되는 예외상태다. 예외상태에서 정상상태, 규범이 통용되는 상태를 만드는 힘이 바로 주권이다. 이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법치국가의 철학을 슈미트는 비판한다. 


 2장은 법학 이론 중 규범주의와 협동체이론을 소개한다. 이들 이론이 주권 개념과 법학에서의 결단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슈미트는 모든 법적 결정은 인격적 ‘결단’을 요구하며 따라서 모든 변화에는 권위가 개입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주권은 법형식과 결단의 문제가 된다.


 3장은 본격적으로 정치신학을 이야기한다. “현대 국가론의 주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개념이다.” 라든지 “법학에서 예외상태는 신학에서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같은 내용이다. 모든 시대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정치 조직과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 절대군주 시대에 군주가 신에 비유되고 입헌군주제 아래에서 이신론이 득세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 신이 사라진 자리를 자연과학이 대신했다. 이와 맞물려 정치체제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규범주의로 변화한 양상을 짚어본다.


 4장은 슈미트와 유사한 생각을 했던 19세기 카톨릭 보수주의자들을 다룬다. 그들이 내세웠던 카톨릭적 질서의 의미, 인간은 태생적으로 악하다는 성악설, 그리고 그들의 철학에 중요했던 결단주의를 소개한다. 당시 사회의 주도권을 쥔 부르주아지를 “토의하는 계급”이라고 폄하한다. 부르주아지는 결정을 회피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고찰한다. 그들과 달리 무정부주의자나 맑스주의자들이 결단을 회피하지 않는 점을 높이산다. 그리고 카톨릭 보수주의의 입을 빌어, 신이 이미 사라진 이 시대에 가능한 정치는 독재 말곤 달리 없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주권자는 세속화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5. 재구성


 칼 슈미트의 사상을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신을 대체해 자연과학을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삼았다. 데카르트적 기계론을 따르면 법질서 또한 연역과 인과의 원리에 따라 알맞은 규범을 적절히 조직하면 이루어진다. 법을 적용할 때, 인격적 판단은 배제된다. 철저하게 규범에 맞게 적용할 뿐이다. 이것이 법철학에서 말하는 규범주의다. 한편 이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성선설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정치 체제로 자유주의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한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상이나, 의회에서의 토론을 통한 민주주의는 성선설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슈미트는 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 


 먼저 형이상학으로 작동하는 자연과학적 기계론을 비판한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물리학이나 수학과 같은 학문으로서의 자연과학이나 과학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즉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원리로 자리 잡은 데카르트적 기계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을 동일시하는 형이상학이다. 실제 세상은 단일한 하나의 원인과 결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온갖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구체적 인과관계를 따지기 매우 어렵다. 과학도 실제 현실에서가 아니라 변수를 통제한 모델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검증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 규범이 연역에 기반한 수학적 논리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쌓아온, 인민들이 뿌리내리고 관습, 종교, 윤리 등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구체적 질서가 중요하다. 슈미트는 유럽(특히 독일)에서 카톨릭이 주도해 형성된 질서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법철학 영역에서 규범주의도 같은 원리로 비판한다. 제아무리 잘 짜여진 법체계라 하더라도 이를 현실에 적용할 때는 ‘결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행정을 집행하고 누군가는 판결을 내려야한다. 법령은 누군가에 의하지 않고서 자동으로 실행되지 않는다. 또, 만약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외상태’(비상사태)라면 누가 무슨 법을 근거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규범주의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슈미트에 따르면 이때야말로 누가 주권자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예외상태’를 주권의 본질이 드러나는 때로 다루는 이유는 ‘정상상태’,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를 바라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당시 독일이 안정적 질서를 누리는 상태, 정상적으로 규범이 통용되는 상태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누가 질서를 세우느냐는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성선설에 기반해 자유주의, 민주주의, 의회주의를 추종하는 자들, 즉 부르조아지는 ‘토의하는 계급’으로 끝없이 대화만 할 뿐, 결단하지 못한다. 그때문에 (슈미트가 생각하기에 악마인)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침투한다. 이들은 정치에 녹아 있는 신학 개념을 가장 철저히 공격하는 자들로 슈미트의 사상과는 가장 극단에 선 불구대천의 적이다. 신을 대리할 군주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군주의 정통성은 세습으로 보장되었다. 질서를 바로잡고 무정부주의 및  사회주의와 벌일 ‘하르마게돈’과 같은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을 대리하는 역할로 ‘독재’가 필요하다. 




  6. 의식의 흐름


 적/친구를 철저히 구별하기, 질서에 대한 집착, 보수주의, 정치적 ‘결단’과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독재’를 정당화하기. 이렇게 나열하니까 태극기부대를 위시한 한국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너무 잘 들어맞지 않나? 그들은 구체적 정책의 세부사항이 아니라 누가 주도하는가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정하고, 혼란보다 안정된 질서에 매달리며,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결단’을 내릴 독재자를 바란다. 거기에 좌파를 결코 세상을 공유할 수 없는 악마로 보는 것까지! 칼 슈미트는 이런 보수주의 사상을 현실에 눈돌리지 않고 직시하며 철학, 정치학, 법학의 측면에서 정교하게 제시했다. 주권과 예외상태에 관한 고찰이나 국가에 대한 개념이 신학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은 여러 번 되풀이 읽어도 놀라웠다. 


 사실 예외상태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하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 모두 상대를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절대악으로 규정했다. 남한의 경우만 보자면,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적국이 우리를 적화통일하려고 노리고 있으므로 준전시 상태와 다름없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예외상태의 극치가 바로 유신헌법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이 발의했던 ‘긴급조치’는 정상상태가 아니라 비상사태에만 가능한 단어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군사 적대와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기나긴 ‘예외상태’ 아래에서 살고 있다. 벤야민이나 아감벤이 현대에 이르러서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었다고 했는데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에게 정말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 발터 벤야민과 조르조 아감벤이 이 책에서 고찰한 개념과 내용을 때론 수용하고 때론 비판적으로 변용해 자신들의 사상을 전개하는데 중요하게 참조했다. 그럴 만하다. 슈미트는 가상의 세계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가 낭만주의자나 부르주아지를 비판한 내용 중에 실재를 가상으로 다룬다는 부분이 있다. 이 말은 그들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나름의 이상화된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근거해 현실을 끼워맞추려 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제도와 실천 사이에 모순이 생겼고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이 나타났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소외된 자들은 법과 체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취약점을 카톨릭 보수주의자 칼 슈미트가 이처럼 예리하게 짚어냈다. 좌파 사상가들은 슈미트와 대결하며 그를 넘어서야만 자신의 지향을 단단하게 벼릴 수 있었다. 슈미트와 좌파 사상가들이 자유주의 체제 근저에 깔린 모순을 비슷하게 봤다면 해결책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질서에 대한 생각까지 극과 극으로 대척점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더축 철저하게 분석하고 뛰어넘어야 했다. 


 그런데 슈미트의 시대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는 또 상황이 달라졌다. 독재와 결단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인 끝에 패배했다. 나중에는 현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의 품으로 돌아섰다. 좌파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세계를 뒤엎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은 자유주의와 의회민주주의다. 그러므로 슈미트의 사상을 통해 이를 비판할 때 자칫하면 그가 내세운 으로 나아갈 위험이 크다. 억압과 착취를 위한 독재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독재로 ‘결단’을 추구하는 일은 역사에서 거대한 비극을 낳지 않았던가. 슈미트는 ‘예외상태’를 극복하고 규범이 통용되는 정상상태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반면, 좌파는 인민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정상성을 해체하고자 한다. 모든 통치가 절대적으로 악이라면 타도되어야 한다. 통치는 곧 정치적, 법적 ‘결단’이기 때문에 결정 또한 악이다. 올바름이란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삶에 내재하고 있는 것에서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이 지점에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혁명가는 반독재적 독재자일 수밖에 없다는 슈미트의 통찰이 빛을 발한다. 좌파는 이를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7. 벤야민과 아감벤


 슈미트는 예외상태가 법이 중단되고 효력을 잃지만,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 상태라고 본다. 예외상태는 정상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일시적 상태일 뿐이다. 이때 법학 개념인 ‘결정’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예외상태는 법학적 인식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감벤은 예외상태가 단순한 법적 개념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외상태가 일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아감벤은 그 징표로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인간)’을 들었다. 고대 로마에서 ‘호모 사케르’는 두 가지 특징을 가졌다. 그를 살해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그는 제물로 바쳐질 수 없었다. 법이 그를 호모 사케르로 만들었지만 법 밖에 존재하여 법의 보호를 받지 않았다. 아감벤은 현대에도 이런 호모 사케르가 있다고 주장한다. 수용소의 난민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 하청의 연쇄고리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법 바깥에 있기도 하고, 법 안에 있기도 하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나 재산 침해는 법이 엄하게 처벌하지만, 이들의 권리는 법이 보장하지 않으니 말이다. 


 현대적 형태의 호모 사케르는 슈미트가 말했던 ‘예외상태’와 같다. 법질서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외상태와 정상사태의 구별이 필요하다. 이를 주재하는 힘이 바로 주권이다. 근대 주권(=권력)은 현대적 호모 사케르를 배제하면서 포함하는 방식으로 힘을 행사한다. 권력은 사람들의 삶 자체, 생명을 지배하지만 정치적 권리는 박탈한다. 이것은 ‘벌거벗은 생명’으로 현대적 호모 사케르다. 권력은 호모 사케르를 점점 늘려간다. 문재인 정부가 제아무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해도 현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한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에서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이 필요하다. 


 푸코는 근대 이전에는 권력이 삶과 죽음 중에서 죽음에 힘을 행사했다고 보았다. 주권자는 자신이 지배하는 신민을 죽일 권리가 있었다. 주권자는 신민을 ‘죽게 만들고 살게 놓아두는’ 방식으로 지배했다. 신민을 죽게 하는 권력을 휘둘렀지만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는 반대가 되었다.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지배한다. 대표적인 예가 병원, 학교, 군대, 감옥이다. 인구조사를 통해 통계 수치로 평가하는 이유는 현대 권력이 바로 삶의 문제를 통제하는 ‘생체권력’이고 ‘생명정치’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예가 바로 나찌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수용소였다. 유대인은 말 그대로 ‘벌거벗은 생명’ 그 자체로 호모 사케르였다. 


 그러므로 현재는 예외상태가 전면화되어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벤야민도 그의 마지막 저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예외상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 라고 간파한 바 있다. 그런데 아감벤은 이런 예외상태 안에서 생체권력을 극복할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는 예외상태가 갖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무질서에 주목한다. 예외상태가 일상이 되었다는 말은 예외상태와 정상상태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슈미트에게 예외상태는 정상상태로 나가가기 위해서, 정상상태를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반정립으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예외상태만 계속된다면 정상상태를 상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예외상태는 어떤 것도 구별하기 어려운 무질서에 들어서게 된다. 권력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외상태에서도 어떻게든 기존 질서를 보존시켜 자신의 존재 기반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이 무의미해지면 권력이 내리는 결정에 정당성이 없어진다. 예외상태가 지키려는 질서가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해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셈이다. 이는 예외상태를 질서를 지키기 위한 과정으로 정당화한 슈미트의 논리를 뒤엎는 생각이다. 


 아감벤은 예외상태의 일상화가 기존 질서를 해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벤야민의 폭력 비판 이론을 제시한다. 벤야민이 내세운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하고, 경계가 없으며, 죄를 면해주고,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오는 폭력이다. 이 ‘신적 폭력’은 주권마저도 파괴할 수 있다.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에서 바로크 시대 주권 개념이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예외상태에 관한 논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주권자의 주요 임무는 바로 예외상태를 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권자는 신의 대리인으로 신과 같은 권력을 가졌지만 결코 신이 아니다. 주권자 또한 신의 피조물, 인간일 뿐이다. 주권자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난다. 주권자는 그가 가진 권력에 걸맞는 능력을 가질 수 없다. 그가 가진 권력은 신적이지만 그가 가진 능력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 불일치는 주권자가 슈미트적 ‘결정’을 내릴 수 없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신적 폭력’이 어떤 것인지, 어떤 사례가 있는지는 벤야민도 아감벤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과연 이런 폭력을 신이나 신학적 개념으로서의 구원자가 아니고서야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시간과 능력의 한계 때문에 여기서 정리를 끝내려 한다. 다만 앞으로 슈미트, 벤야민, 푸코, 아감벤의 저작은 우선 순위를 두고 읽기로 마음먹었다. 본문이 1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자를 읽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 많은 자료와 책을 들쳐보았다. 이런게 공부구나 하는 느낌이 조금 왔다. 물론 진짜 공부하는 분들이 보면 비웃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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