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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Jan 06. 2019

마키아벨리 <군주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 1조 1항과 2항이다. 헌법이 규정한대로 우리는 정치권력을 선출할 때만큼은 민주공화국에서 산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어떨까? 직장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장은 회사에서 중세 시대 귀족 영주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부모와 자녀가 있는 가족에서 가정이 민주적이라고 선뜻 말할 수 있을 법 하지는 않다.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은 어쩌면 군주제 아래에서 산다 말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오백여 년 전에 집필된 <군주론>을 지금도 읽고 연구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군주국과 군주의 자질에 대한 마키아벨리(1469~1527)의 통찰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처음 <군주론>을 읽을 때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유용하다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처세도 보였지만 다른 면모도 생각하게 되었다. 악명은 좋은 평판을 압살한다. 마키아벨리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일상에서는 유쾌하며 사교적인 사람이었고, 당대에 인기를 끈 풍자 희곡 <만드라골라>를 썼으며, 주저 <로마사론>에서 공화제가 다른 정치체제보다 우월하다 주장한 공화주의자였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마키아벨리즘을 낳은 악명이 그의 다른 면모를 덮어버렸다.  

 위 두 그림은 마키아벨리의 데드마스크로 만든 테라코타 흉상을 보고 각기 다른 화가가 그린 초상화다. 친근한 인상에 장난기와 영민함이 뒤섞여 있다. 어떻게 봐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음모가로 보이지 않는다.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는 왜 <군주론>을 써서 후세에 악명을 남기게 되었을까?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역사와 사상의 흐름을 알 필요가 있다. 위대한 인물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전의 진정한 가치도 역사의 흐름 안에서 나온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때는 15세기 말~16세기 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가 활약하던 르네상스 전성기 시절이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때이기도 하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해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때가 1517년이다. 한편, 1492년에는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 바하마에 상륙하고,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으며 1519년에는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서는 점차 국왕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어가던 중이었다. 한 마디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한 복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마키아벨리가 제2서기장으로 활약하던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는 내란과 외국의 침공이 끊이지 않았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나 제국이 없던 중세 유럽에서 이탈리아 도시들은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동쪽에서 다가오고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지중해가 더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게 되면서 이탈리아 도시들은 약해졌다. 반대로 영국, 스페인, 프랑스는 강력한 민족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분열된 이탈리아 도시들은 자기들끼리 각축을 벌였고 프랑스, 스페인 같은 거대 국가의 손쉬운 먹이감이 되었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변경에 지나지 않았던 서유럽이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 도시 중심으로 경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발전을 추동한 이유도 있다. 그런데 더 크게 성장하려면 규모도 더 커져야 했다. 이탈리아 반도는 이 흐름을 타지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변화하는 시대에 이탈리아가 살아 남아 번영을 이루려면 흩어진 도시들이 하나로 뭉쳐 단일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탈리아를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리더, 즉 새로운 군주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고찰해 유력한 인사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상한 책이 바로 <군주론>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1장부터 11장인데, “군주국의 모든 성질들을 논의하면서……그것들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고찰”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획득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부분은 12장에서 14장인데 주로 군사문제를 논의한다. 용병과 원군을 멀리하고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 하며, 군주는 전쟁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15장에서 23장인데, “군주가 어떤 방식과 체제로 신민이나 군주를 대해야 하는지”를 고찰한다. 이 부분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악명을 낳게 했다. 자비보다 잔혹을, 사랑보다 두려움을, 신뢰보다 배신을 부추긴다고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 보면 악덕을 강조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악덕을 행하는 데에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정도이지 무작정 군주가 잔혹한 폭정을 일삼도록 조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의 힘을 두려워하고 그들로부터 경멸받지 않아야 하며, 최고의 요새는 그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양 정치학  역사에서 드물게 일찍이 민중의 힘과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군주론> 곳곳에서 군주가 민중의 미움을 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중의 재산을 강탈하지 않고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부분은 24장에서 26장으로 먼저 이탈리아 군주들이 왜 자신의 나라를 잃었는지 살펴 본다. 이어서 신 군주가 자신의 덕으로 운을 제압해 이탈리아를 지키고 야만인을 몰아내기를 촉구했다. 


  <군주론>은 서양에서 거의 최초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정치를 논한 책이다. 중세 천 년 동안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는 현실이 아니라 사후 세계를 더 중요시했다. 게다가 현세의 모든 권위와 원리는 천상에 있는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관찰해 의미 있는 지식이나 원리를 얻는 과학적 탐구는 중요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기는 중세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현실에 기반한 사고가 막 꽃피기 시작하던 때다. 정치철학에서는 마키아벨리가 선두에 섰다. 그는 신학이나 철학, 또는 윤리에 바탕을 두고 정치학을 펼치지 않았다.  오로지 당면한 현실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선악으로 분류해 판단하지 않고 결과를 먼저 따졌다. 종교, 윤리, 철학에 따라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방식으로 정치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그의 사고방식은 타락과 악마성을 의미했다. 그의 악명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나에게는 사물에 대한 상상보다는 그것에 대한 실제적 진실을 좇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어떻게 사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서로 거리가 먼 것이므로, 행해져야 하는 것을 위해 행해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보존보다는 오히려 파멸을 배우게 될 것이다……군주가 스스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선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를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지금도 현실이 아니라 당위에서 비롯된 사고와 판단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일부 종교인이나 사회를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 하는 사람이 흔히 그렇다. 당위로 낙원을 만드려는 시도가 얼마나 끔찍한 역사를 만들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십자군 전쟁, 종교 전쟁, 그리고 제 2차 세계 대전의 참상이다. 당위야말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든다. 신의 영광을 위해 이교도는 죽여도 되고,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일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이쯤되면 오히려 마키아벨리가 더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점에서 나는 <군주론>이 한국 사회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한국학자 오구라 기조는 <한국의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하나의 철학(리(理))이 응결된 국가이다. 그가 말하는 ‘리(理)’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도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된, 아니 일치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절대적인 규범이다.” 즉, 한국인은 현실이 아니라 당위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는 말이다. 모든 면이 그렇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사고와 행동이 그런 경향을 따라간다는 점은 공감할 수 있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무엇인지 <군주론>을 통해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군주론>은 민중의 힘과 역할에 주목한다. 이는 현실에서 구체적인 정치를 다루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의 영광이나 철학적 당위에서 파생되는 정치에서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을 뿐, 민중의 생활이나 감정을 따지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당위로써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법질서를 엄정히 지켜야 한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는 민중들이 군주에 가지는 감정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역사와 당대 정치 현실로부터 깨달았다. 이로부터 국가(군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최선이 되는 군주와 민중의 관계를 <군주론>에서 고찰했다. 유명한 사랑 대신 공포, 자비 대신 잔혹 같은 표현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 책을 처세술로 보는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탐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처세와 심리에서 잠시 눈을 돌려 군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민중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는 의미는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군주론>을 군주에게 조언하는 형태로 위장한, 군주의 참모습을 민중에게 알리는 책이라고 보기도 한다. 나는 이정도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키아벨리가 비록 군주국에 대한 책을 쓰면서도 민중의 힘과 역할을 군주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덕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조국이 처한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 방안을 담은 책이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과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조언한다. 군중이나 사람의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해 목적에 맞게 이용해야 한다 말한다. 이런 생각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세상 모든 일은 신의 섭리다. 인간은 신 앞에서 무력하고, 현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다. 진정한 영혼의 삶은 구원 이후, 죽음 이후의 내세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힘이 비록 크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가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현실의 문제를 인간의 덕(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군주론>은 비록 얇은 책이지만 이야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나는 이번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이 책이 한 역할에 집중했다. 현실주의 정치학, 민중에 관심을 둔 점, 기독교 신학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세상을 관찰한 부분이 <군주론>이 가지는 의의라고 생각한다. 이런 해석을 떠나서 <군주론>은 책 자체로 재미있다. 특히 인간 심리에 대해 고찰하는 부분은 지금 봐도 탁월하며, 예로 든 역사적 사실도 흥미롭다. 고전이라고 두려워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어도 좋겠다. 단, 당시 이탈리아 역사를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얼마나 어지러운 시대인지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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