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종화 Jan 10. 2019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이끄는 힘, 또는 지배적인 원리는 유럽에서 나왔다. 세계 대다수는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가, 학문을 탐구하는 원칙으로 과학적 사고방식이, 정치 체제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현재 유일한 ‘제국’으로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를 바탕으로 세계를 리드한다. 실질적인 힘, 경제력, 문명을 주도하는 사상 모두가 서양의 것이다. 나타난 현상의 원인을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이 질문했을테다.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은 과거 역사를 살펴봐야 답할 수 있다. 


 오랫동안 세계 경제를 장악한 쪽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이었다. 서양이 세계를 주도한 때는 생각보다 많이 늦은 19세기 이후다. 저자에 따르면 1775년에 아시아가 세계 생산의 80%를 차지했고,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를 합쳐서 겨우 나머지 1/5을 담당했다. 그러던 것이 1900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유럽과 미국이 전 세계 제조 산업의 80%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과 인도는 한 때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가졌지만 불과 이백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고대 이래로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거점은 인도양이었다. 문명 탄생 이후, 가장 생산력이 높았던 지역은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생달,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인도, 중국이었다. 이들을 연결하는 해로는 인도양이다. 그런데 이슬람 제국이 발흥하면서 유럽은 인도양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 애썼다. 이른바 ‘대항해시대’의 개막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는 1498년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대륙 침략을 개시하고 이들이 구대륙에서 옮겨온 전염병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거의 몰살시켜 버렸다.  


 중세 이후 세계 산업생산의 중심지였던 중국은 차, 비단, 사치품, 공산품 등 대부분 산업 생산물에서 높은 품질을 자랑했다. 유럽도 이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았는데 중국은 은본위 체제로 경제를 운영하려면 막대한 은을 필요로했다. 마침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은을 조달할 수 있었다. 원주민이 몰살당해서 노동력이 부족하니까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조달해 신대륙으로 보냈다. 주인이 사라진 드넓은 신대륙의 대지에 유럽인은 대규모 농장을 세운다. 오로지 수익성 작물을 선택한다. 담배, 커피, 목화 같은 경우다. 아프리카 노예 노동과 신대륙 토지를 쥐어짜듯 착취한 덕에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때 일어난 일이 산업혁명이다. 석탄을 태워 에너지를 얻는 능력은 인류가 최초로 ‘생물학적 구제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석탄 덕분에 토지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만약 목재로 철강생산, 증기기관 작동, 난방 등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한다면 전 유럽의 땅이 산림이라 해도 부족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대륙 식민지가 없었다면 영국 전 국토를 목화 재배밭으로 만들어도 전세계로 수출할 면직물을 충당할 원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산업혁명이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에 캐기 쉬운 석탄이 많았을 뿐이라는 거다. 이는 순전히 우연이다. 산업혁명이 석탄과 식민지에 의존한 자체가 우연인 셈이다. 달리 말하면 유럽인이 중국인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다. 그저 역사의 우연이 빚어낸 현상이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인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결정적 뒤집기는 역시 아편전쟁이었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영국보다 중국 수출품이 훨씬 더 인기가 있어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너무 많이 흘러들어 갔다. 영국은 이를 역전시키기 위해 대량으로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팔았다. 중국이 여기에 반발해 일어난 전쟁이 아편전쟁이다. 즉, 중국은 군사적으로는 이미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의 상대가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중요한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중국의 이권을 대부분 잠식하고,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며, 오랜 전화에 휩싸이자 순식간에 빈국으로 전락했다. 이후의 역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유럽(서양)이 세계를 주도하게 된 이유는 유럽인이 가지는 특별한 자질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리적 특성, 기후, 자원의 분포, 세계적 규모에서 정치 및 경제 질서와 같은 우연적 요소와 주변과 맺는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얽혀 빚어낸 현상이다. 이 중에서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역사는, 흔히 오해하듯이, 사실들의 연속체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다. 역사는 수학이나 자연과학의 법칙처럼 연역적 인과관계가 아니다. 에드워드 카가 말했듯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또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구성의 대상인데, 그 구성의 장소를 형성하는 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에 의해 채워진 시간이다.” 두 사람의 말은 본질적으로 같다. 역사는 현재의 요구에 따라 과거를 구성한 결과물이다.



 서양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했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이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느 나라, 혹은 문명이 세계를 주도할까?” 무서울 정도로 성장해 어느새 G2의 일원이 된 중국일까? 아니면, 중국보다 자유로운 정치체제를 갖추어서 성장 잠재력도 높다는 인도일까? 미국과 유럽의 문명은 얼마나 오래 세계를 주도할까? 


 나는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커다란 사건이나 변화가 없다면 중국과 인도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장해도 지금 미국과 같은 지위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은 경제, 군사, 외교와 같은 정치경제 영역 뿐만 아니라 문화 면에서 명실상부하게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대다수가 미국을 우러러보며 선망한다. 고대 로마 제국 시절에 도시 로마가 한 역할을 지금 미국 뉴욕이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베이징이 아무리 발전해도 지금 뉴욕같을 수 있을까? 중국의 정신문화나 사상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적 삶의 양식을 대체할 무언가를 중국이 제시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중국은 장점이자 단점이 땅이 넓고 인구가 많다는 거다. 덕분에 외부와 맺는 관계를 필사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다 소화가 가능한데 뭐하러 골치아프게 대외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고민할까? 미국은 제국으로서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물론 국익의 관점에서지만 그 국익조차도 세계 규모에서 판단한다는 말이다. (옳고 그르고는 여기서 따질 문제는 아니다.) 중국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마키아벨리 <군주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