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이 책 제목 그대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요근래 유명인이 마약을 즐기다 적발된 사례는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다. 심지어 청소년들이 공부방을 이용해 마약 공급 사업을 벌이는 일까지 생겼다. 경찰에 적발된 마약 사범의 수와 압수된 마약량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마약에서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게 됐다. 그런데 왜 마약이 나쁘고, 왜 복용만 해도 범죄가 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약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과장된 부분도 있고, 오히려 축소된 부분도 있다. 독서 모임에서 마약 문제를 다루려고 관련된 책이 어떤게 있을까 검색해보고 무척 놀랐다. 이미 외국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한국에서도 점점 비중있는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을 다룬 책이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만 검색되었다.
나쁜 것은 나쁘니까 알 필요가 없다? 과연 그럴까? 어떤 사안을 감추거나, 터부로 몰아 쉬쉬하거나, 모른척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 마약이 어떤 작용을 하길래 위험한지, 위험한 정도는 어떤지, 마약의 종류는 무엇인지 알아야 조심하고 대비할 수 있다. 마약에 대해 아예 모른다면 마약인지 모르고 잘못 복용할 수도 있다. 게다가 많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마약이다. 대마초, 히로뽕과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지 않고, 제약회사가 만들어 의사가 처방하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책에는 마약 중독을 치료한답시고 더 독한 마약을 처방한 많은 사례가 나온다. 실제로 코카인, 헤로인, 히로뽕 같은 마약보다 향정신성 의약품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 마약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어야 마약의 위험성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고, 우연히 접하게 되더라도 피할 수 있으며, 사회 공론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마약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
국내법에서 마약류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코카인, 헤로인, 아편과 같은 마약이 첫 번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약이다. 두 번째로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며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들”을 말한다. 흔히 히로뽕이라고 불리는 매스암페타민도 여기에 속한다. 그 외에도 우유주사로 알려진 프로포폴, 클럽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엑스터시도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수면제, 마취제, 안정제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대마인데 대마를 가공한 마리화나, 하쉬쉬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뭉뚱그려 말하는 마약에는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이들이 인체에 작용하는 기전이나 위험의 정도도 다 제각각이다. 사실 많은 마약보다 술이나 담배가 (자신의) 인체에 더 큰 피해를 준다. 게다가 알코올은 어떤 마약보다도 타인에 대한 위해를 가장 많이 끼친다. 모든 시대와 장소를 통틀어서 그렇다.
사실 마약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과 늘 함께 했다. 선사 시대 부족이나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샤먼이었다. 그는 부족의 지도자이자 종교적 영성을 대표했다. 이들은 마약(주로 양귀비)에 취한 상태에서 각종 종교 행사를 주관했다. 부족 전체가 환각에 빠지기도 했다. 또, 마약류가 지닌 강한 진통효과는 고대 의료에서 반드시 필요했다. 종교와 의료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만큼 마약은 인류와 가까웠다. 이때만 해도 마약은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 질서 유지에 필수였다. 그러다 금욕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중세 기독교가 서구의 정신을 지배하면서 마약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이후 르네상스를 거쳐 연금술과 화학의 시대에 마약은 다시 인간 사회에 다가갔다.
마약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역사적 사건은 영국이 중국에 행한 아편 밀무역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이 얼마나 피폐하게 되었는지 아편 전쟁 이후의 중국 역사를 보고 알 수 있다. 서구에서도 19세기에 화학의 발달로 천연 마약에 비해 훨씬 강력한 효과를 가진 합성마약이 등장했다. 아편을 정제한 모르핀은 아편 중독을 치료하는 약물로 인기를 끌었다. 이무렵 남미에서 코카잎 성분을 추출한 코카인 역시 아편 중독 치료제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모르핀, 코카인 모두 시간이 지나서 심각한 중독 문제를 일으켰다. 모르핀의 상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헤로인도 이미 만들어졌는데 모르핀 중독 치료제로 사용되었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 사가 개발했는데 당시에는 헤로인을 아스피린보다 더 주력상품으로 밀고 자랑스러워 했단다. 이런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강한 진통효과를 가진 새 약물은 기존의 약물이 가진 중독성과 해악을 극복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큰 위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 예가 한 둘이 아니다. 요즘 가장 문제가 되는 약물인 ‘펜타닐’도 처음엔 기적의 신약이었다.
마약이 위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중독이다. 중독이 되면 점점 더 많은 양을 투여하게 되고 이는 인체에 커다란 해를 끼친다. 두 번째는 마약을 구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와 불법 마약을 재배, 가공, 유통하는 범죄조직이 끼치는 해악이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바와 달리, 마약을 복용한 상태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범죄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 마약을 복용한 사람의 자기 신체가 해를 입는다. 단지 마약에 중독되어 경제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마약을 사기 위한 돈을 갖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가 문제다. 그래서 마약에 대해 전향적인 정책을 펴는 국가는 약한 마약(soft drug : 대마초처럼 중독성과 인체에 미치는 해악이 상대적으로 약하다.)을 합법은 아니지만 불법도 아닌 반합법 상태로 관리하거나 마약 중독자들이 감옥이나 기관에서 나갈 때 적정한 마약을 주기도 한다.
마약에 얽힌 범죄나 범죄 조직은 각 나라의 사회 구조나 정책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중독에 대해서 의견을 내볼까 한다.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서 행동과학을 연구했다. 그는 쥐에게 모르핀 희석액과 물을 따로 주면 모르핀만 미친듯이 마시다가 결국 죽는다는 연구 논문을 봤다. 그런데 그는 마약 중독자 치료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곳의 중독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만약 쥐들이 비좁은 우리에서 물과 모르핀 두 가지만 제공되는 제한된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쥐에게 천국같은 환경에서 생활해도 모르핀에 중독될까? 그는 이 의문을 바탕으로 쥐 공원을 만들었다. 넓은 우리에서 쥐가 놀 수 있는 장난감과 시설을 갖추고 여러 마리의 쥐들이 함께 지내게 했다. 그 결과 쥐들은 간혹 모르핀 희석액을 마시긴 하지만 심각한 중독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예가 있다.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들은 전쟁 상황에서는 모르핀에 중독된 경우가 많지만 전쟁이 끝나고 가정과 사회에 돌아오면 대부분 중독에서 벗어났다.
마약은 아니지만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 경우에는 게임이었다. 내 가족은 제법 부유한 편이었다. 그러다 IMF 경제 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이 몰락했다. 나는 그 전에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한 순간에 창문도 없는 월 10여 만 원 짜리 1평 고시원에 살게 됐다. 당시 한의대 본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고시원에서 지내게 되자 순식간에 공부에 흥미를 읽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었다. 가장 값싸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피시방에서 살게 됐다. 게임을 하다가 시험을 안 들어가기 시작하고 결국 유급하게 됐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까지 친구와 당시 연인, 그리고 부모님의 헌신적인 지지가 꾸준히 필요했다.
마약의 경우도 비슷한 예가 또 있다. 마약 중에 코카인은 꽤나 센 Hard drug이다. 대신 가격이 비싸서 일명 부르주아 마약이라고 한다. 보통 가루를 내어 코로 흡입하는데 고급 신용카드로 나누어 고액권 지폐를 말아 마신다. 그만큼 부유층의 마약이라는 소리다. 고학력 화이트칼라들이 많이 사용한다는데 그들은 좋은 직장과 가족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코카인 중독은 다른 마약에 비해 큰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드물다. 마약에 중독되지 않는게 최선이지만 혹시 실수나 우연으로 접해 중독이 되더라도 사회적 연결망이 튼튼하다면 인생을 망칠 정도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각박하고 개인들이 고립된 상태라면 상황은 다르지 않을까?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상태는 마약 중독을 이겨낼 힘을 줄 수 있을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금주법을 시행했을 때 오히려 온갖 불법 술이 난무했다. 술과 마약은 인류 문명과 함께 걸어온 물질들로 완전한 근절은 불가능하다. 결국 사회적 합의에 따른 정책으로 조절할 수밖에 없다. 마약에 대해서 무조건 강력한 처벌, 근절로 접근할 시점이 지났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펜타닐과 같은 의료용 진통제가 전통적인 마약보다 사회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중독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술과 약물, 게임, 스마트폰, 돈, 성공, 명예……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중독시킨다. 문제는 중독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중독 되더라도 사회와 인적 네트워크가 건재해서 우리를 지지한다면 좀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사회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픈 사람은 혼자 고통을 이겨내야 하니까 진통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회 생활에서 충만함을 얻을 수 없으니까 약물이 주는 쾌락을 거부하기 어렵다. 마약을 강력하게 규제만 한다고 이런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 어디든 중독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독을 금지하기 이전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사회를 고치는게 먼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