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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oN Nov 30. 2018

더치 디자인

국가의 경쟁력으로 떠오른 문화예술

피트 몬드리안(Pieter Mondrian)은 1872년에서 1944년 까지 살았던 네덜란드의 근데 미술 화가이면서 구성주의 회화의 거장이다. 네덜란드라고 하면 반 고흐, 렘브란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가장 중시하면서 상품을 사게 된 지금의 시장은 몬드리안이 현대 소비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2차 대전 중이었던 1940년 몬드리안은 미국으로 망명해서 귀화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을 가진 직사각형 면과 그와 섞인 흰색과 검은색 면, 그리고 검정색 선들을 이용하여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로랑이 몬드리안 작품을 모티브로 <몬드리안룩>을 선보인 것도 디자인계에서는 역사로 남겨진 사건이다.  


정치 수도인 헤이그, 더치 디자인을 입다.

현대는 디자인 시대이다. 디자인으로 선도하는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며 성장해나가고 있고 혁신과 맞물린 디자인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네덜란드 디자인은 특색이 강하면서도 친근하고 실용적이라 평가받는다. 디자인의 시작은 몬드리안의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더 스테일(De Stijl: 네덜란드어로 “양식”이라는 뜻)은 신조형주의로 불리는 1917년 시작한 네덜란드의 문화 예술 사조이다. 더 스테일를 주창한 예술가들은 인간의 영적 조화와 질서가 담긴 신 유토피아적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골몰했다. 원색과 무채색, 그리고 곧은 직선과 정사각형 등의 기하학을 공간의 미학은 그 시대적 니즈를 따라 화가는 물론,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영감을 일으켰다.

이렇게 더치 디자인을 창시라고도 할 수 있는 <더 스테일>은 100 주년을 맞았다. 네덜란드의 정치 수도인 헤이그에는 네덜란드 디자인을 마주할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더 스테일>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현대 미술에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헤이그와 인접해 있는 레이던이 <더 스테일>문화 예술 운동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치 수도인 헤이그는 더치 디자인 100 주년을 기념하여 2017년 한 해 동안 더치 디자인을 알리는 도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헤이그 시청 박물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더 스테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네덜란드의 산업디자인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징은 미니멀리스트, 실험적, 혁신적, 자유로우면서도 유머 감각을 갖춘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마음껏 표현해 전형을 갖춘 디자인 양식이다. 

1980년대 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더치 디자인은 높은 수준의 디자인 교육이 배경이 되었다. 아인트호번의 디자인 아카데미(Design Academy in Eindhoven)는 세계적인 디자인 아카데미로 선정되었고 암스테르담에 있는 헤럿트 레이트벨드 아카데미 역시 디자인계에서는 높이 평가받는 학교이다.

또한 이러한 디자이너들이 더치 디자인을 세계의 우수 반열에 오르게 되기까지 또 하나의 힘은 바로 국가의 지원이다. 1988년 설립된 우수 디자이너들을 배출하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정부 재정 지원 프로그램인 BKVB를 통해 디자이너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스스로 자신의 디자인을 더욱 참신하고 경쟁력있게 개발하여 스스로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디자인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세계 디자인 도시로 손색이 없는 아인트호번에서 해마다 디자인 위크를 개최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디자인 도시 아인트호번_더치 디자인 위크

아인트호번은 네덜란드의 남쪽에 있는 도시로 한국에서는 박지성이 머물렀던 필립스 축구팀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는 도시다. 이 도시의 태동은 필립스라는 회사로 부터 시작되었다. 필립는 전구를 처음으로 대량 생산하는 회사로 시작하여 카세트 테이프와 컴팩트 디스크를 개발하여 성공을 거둔 회사이며 현재에는 의료기기 개발과 가전으로 세계 시장에 잘 알려져 있는 기업이다. 세상에 없는 것들을 개발하는 혁신을 바탕으로 한 필립스의 거점인 아인트호번이 지금의 디자인 도시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혁신은 또 다른 혁신의 토양이 되었다. 그러면서 아인트호번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디자인 학교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축적할 수 있었다.

아인트호번에는 필립스 공장이 처음 세워졌던 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제작 초기 상품들의 다자인들을 볼 수 있도록 전시해두고 있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2002년 부터 시작된 더치 디자인 위크는 지금은 세계인들에게 각광받는 행사로 변모했다. 도시 곳곳에서 네덜란드인들의 디자인은 물론 전 세계의 신인들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명실상부 <세계 디자인의 태동지>로의 역할을 하는 행사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9일 동안 진행되는 이 행사는 100개 이상의 이벤트가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는데 전시회, 강연, 우수상 수상과 더불어 네트워킹은 물론 토론과 축제을 아울러 볼 수 있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하우징부터, 전자, 전기,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디자인이 적용되어야 하는 다양한 산업의 디자이너들의 실험과 혁신의 정신은 행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더치 디자인 위크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큰 선물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사람들의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들 덕택이었다. 이들은 허례나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에도 매우 적극적이고 대화는 직설적이다.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지만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허례가 없기에 거침이 없다. 이들의 성격과 생활방식은 그들이 살아가는 배경이 되는 의식주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리고 삶의 방식의 문화는 예술로 승화되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국력이 되었다.


디자인의 시작은 이들의 미적 관점이 특별해서라기 보다 살아오는 가치를 디자인에 입힌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2018년 지금의 세계는 문화가 경쟁력이며 디자인이 경쟁력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라는 이름을 가진 네덜란드, 이곳에 오면 하루 종일 차를 타도 끝없는 지평선이다. 산 하나 없는 이곳, 인구도 2천 만을 넘지 않는 이곳이 세계 10위 권의 강소국이 된 이유는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를 부정하지 않고 고스란히 대를 이어오며 갈고 닦은 이유일 것이다.

“단순한 것이 최고의 디자인이다.”는 말은 네덜란드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더치 디자인>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강력한 국가의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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