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Jul 05. 2023

빵 부스러기와 중력

빵 부스러기 

내가 만든 식빵을 오븐에 다시 구워서 딱딱해진 빵에 우리 부부는 크림치즈를 발라먹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상하게도 식탁 앞에서 빵을 안 먹고 싱크대로 가서 빵을 먹었다. 그걸 본 내가 의아하다는 듯 한 마디 했다. 


''여보, 왜 빵을 식탁에 앉아서 안 먹고 싱크대 앞에 서서 먹지?'' 

''이래야 부스러기가 바닥에 안 떨어지지.''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문득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빵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봐, 그렇게 먹으니까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지잖아. 나처럼 먹으란 말이야.'' 

''아, 틀린 말은 아닌데... 뭐랄까... 어차피 우리가 사는 지구엔 중력이란 것이 작용하고, 빵이 바삭하면 베어무는 과정에서 부스러기가 생길 테고, 그 부스러기는 중력에 의해 위가 아닌 아래로 떨어질 텐데... 그걸 우리가 막을 수 있나?'' 

''나처럼 부스러기가 떨어질 장소를 바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나중에 청소할 때도 수월하고.'' 

''어차피 어제 청소기를 안 돌렸으니 청소기는 돌릴 테고 내가 조심해서 빵 부스러기가 안 떨어지게 먹으면 이 부분만 빼고 청소기를 돌릴 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하면 좋잖아.'' 

''어차피 청소를 할 거고 내가 앉았던 자리 밑에도 청소를 할 거고 내가 온 집안에 부스러기가 날릴 정도로 격렬하게 저작활동을 한 건 아니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이는데?'' 


이 말을 들은 남편은 ''저 입을 어쩜 좋지?''라는 표정에 욕을 잔뜩 섞어서 나를 쳐다본다. 우린 늘 이런 식이다. 난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고, 그전까지 몸이나 마음이라도 편하게 있자는 주의이고, 남편은 그래도 조심하면 낫다는 식이다. 


빵 부스러기는 결국 식탁과 식탁 밑으로 떨어졌고, 남편은 예상대로 청소기를 돌렸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니까... 고작해야 빵 부스러기가 잠깐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뿐이고, 30분 이내에 남편은 청소기를 돌렸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면 그만이다. 


#중력 #빵부스러기 #내가만든식빵 #식빵인가과자인가 #달라도너무달라 #번역작가의남편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죄인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