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astra per aspera

고난을 건너 별을 향해 가는 딸의 스물둘

by 랑이네 글밥집

스물두 번째 생일을 맞은 딸.

지난 공모전 대상 수상 상금이 입금됐다며 김기사가 가장 좋아하는 회를 사 왔다.

그리고는 낳고 키워줘서 고맙다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문득 홍재현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축구만 하면 친구들의 원망을 듣는다
내가 구멍이란다
씨이……
술만 마시면 아빠는 나를 꼭 껴안으신다
내가 숨구멍이란다
씨익……
— 홍재현, 〈내가 구멍이라고〉 중에서


​하루가 멀다고 심장이 내려앉는 사건 사고를 몰고 오던 부모가 내게 '구멍'이었다면, 효림은 언제나 내게 '숨구멍'이었다.

​빚더미에 앉은 친정을 도우려 결혼을 택했고, 인생은 늘 넘어야 할 산이자 해치워야 할 숙제뿐이었던 내게 효림의 탄생은 세상을 달리 보게 했다.

아이 덕분에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하고 재미나기 시작했다. 유모차를 끌고, 혹은 아이 손을 잡고 버스와 지하철, 기차를 타고 사방팔방을 다니던 날들. 그때의 나는 효림보다 더 신이 나 있었다.


작고 약했던 그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고, 고마움을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부모로서는 그저 기적 같고 고마울 뿐이다.


생일은 아이가 축하받는 날이지만

부모에게는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고 말하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말보다 먼저 마음을 건네는 식탁


국에 고기가 들어가면 잘 먹지 않는 딸의 식성은 꼭 김기사 제 아빠를 닮았다.

그래서 백합을 넣어 시원하게 미역국을 끓였다.

싱싱한 굴을 사다 노릇하게 전을 부치고,

무를 넣어 향긋한 굴밥도 지었다.



집밥은 늘 말보다 먼저 마음을 건넨다.



Id optimum putamus,
quod erit rectissimum:
speremus quae volumus,
sed quod accesserit feramus.

가장 올바른 길, 그것이 우리의 최선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희망합시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쳐올 것들을 견뎌냅시다.

Ad astra per aspera.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이 문장들은 재수를 거쳐 대학에 합격한 딸에게

2024년 1월 12일 생일 카드에 적어주었던 축하의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흘렀다.



스물둘, 물음표를 지나는 시간


생일을 맞아 집에 온 딸은 거실에서 강아지 호두를 품에 안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나는 한동일의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문장》을 다시 읽는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평온한 밤이다.


어젯밤, 딸은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금 참여 중인 인턴십 프로젝트가 앞으로 5개월 뒤에 끝나는데,

휴학을 하고 끝까지 마칠지

아니면 한 달만 더 하고 3학년 1학기 등록을 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였다.


현장의 실무를 제대로 배우고 있고

연장 근무 제안까지 받은 좋은 기회지만,

아이의 말은 자꾸 스스로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내 실력은 충분한지,

1인분의 몫을 해 내고 있는지,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어울리는 사람인지.


모든 것이 물음표라 쉽게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금 여기에서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고.



다시, 별을 향해


딸은 월요일에 상무님과 다시 이야기해 보고

교수님께도 조언을 구해보겠다고 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2년 전 그 문장을 다시 읽는다.


Ad astra per aspera.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고민이 많은 계절을

정직하게 살아내고 있는 효림에게

오늘의 따뜻한 집밥이

아주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숨구멍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나의 딸, 효림아.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