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건넨 100만 원과 김기사의 단호한 거절
요즘 최강록 셰프에게 푹 빠진 딸 효림을 위해서는 맑은 감자탕을,
얼큰한 걸 좋아하는 김기사를 위해서는 빨간 감자탕을 끓였다.
냄비 두 개를 나란히 올려두고
하나는 맑게, 하나는 얼큰하게.
맑은 감자탕은
최강록 셰프가 ‘주관식당’에서
가수 장기하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레시피 그대로 했다.
괜히 마음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국물도 덩달아 맑아지길 바라게 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싱크대 호스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김기사가 오는 시간은 밤 아홉 시 이후.
그때까지 질질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철물점에 다녀와 부품을 사고
유튜브를 켜서 내가 직접 갈았다.
어찌 기다려.
내가 하고 말지.
같은 재료로 서로 다른 국을 끓이고,
같은 집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해내는 저녁.
감자탕도 끓이고, 싱크대도 고치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낸 하루였다.
하루의 끝에
효림이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다 보니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봉투 안에는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은 우연히 생긴 돈이 아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두 학기 연속 전액 장학금,
특별장학금,
공모전 상금까지.
지금은 인턴십을 하며
차곡차곡 모아 온 돈들이었다.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버텨내고,
스스로 벌어서 만든 기록.
그래서 더 무거웠고,
그래서 더 고마웠다.
취업도 아직 안 한 대학생이
부모에게 이런 돈을 내밀다니.
“고맙다. 넌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우리는 웃으며 봉투를 돌려주며 말했다.
“이건 네가 써. 주식이라도 사.”
효림이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쓰고 싶은 데 써.”
옆에 있던 김기사도
사고 싶은 거 사라고 거들었다.
잠시 갈 길을 잃은 내 손이
30만 원을 세어 김기사에게 갔다.
김기사 얼굴이 금세 밝아진다.
남은 70만 원.
나는 사고 싶은 게 없어서
이 돈을 주식에 넣어 불렸다가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겠다고 했다.
효림이는 멋지다며 좋아했고,
김기사는 단호했다.
“밥은 어쩌려고. 안 돼.”
징글징글한 밥 감옥.
전생에 굶어 죽은 귀신이 붙었냐는 말에도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나도 한마디 했다.
그럼 당신도 같이 가든지. 산티아고.
밥을 짓고,
집을 고치고,
가족을 먹이며 살면서도
여전히 다른 길을 꿈꾸는 마음.
밥 감옥에 앉아
오늘도 나는
조용히 순례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