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빚을 갚아주신, 나의 시어머니께
2년 전 오늘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조용히 울린다.
그날 아침, 나는 쫄쫄이 바지를 입고 홈트를 시작했다.
막 2세트에 들어가 숨이 차오르려던 순간,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효림 어미야, 맥도널드 알지?
거기로 지금 와라.”
“네? 지금요?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가려다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어.
은행 갔다 오는 길인데, 효림이 등록금 줄 테니까 와서 받아가.”
아직 합격 발표도 나기 전이었다.
“어머니, 합격하면 주세요. 지금은 아직 몰라요.”
“합격한 거 아녀?”
“아니에요. 발표는 1월 말이나 돼야 나요.”
“그려? 난 붙은 줄 알았지.”
잠깐의 침묵 뒤, 어머니는 말했다.
“아무튼 빨리 와. 효림이 주려고 모은 거니까.”
그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쫄쫄이 위에 외투를 걸치고,
강아지 호두를 데리고 사거리로 향했다.
멀리서 어머니가 보였다.
땅딸막한 키, 휜 다리,
보라색 모자를 푹 눌러쓴 작은 체구.
그 추운 날 길가에 서 계신 모습이 마음에 걸려
“추우신데 안으로 들어가 계시지…” 했더니
어머니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셨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내 외투 주머니에 재빨리 밀어 넣으셨다.
말 그대로, 007 작전 같았다.
“춥다. 얼른 가.”
“어머니, 합격하면 주시라니까요.”
“아녀, 아녀. 얼른 가.”
신호등을 건너는데
눈물이 자꾸 차올라 앞이 흐려졌다.
호두만 아무것도 모른 채
신이 나서 앞서 걸어갔다.
만약 그날 어머니가
밍크코트를 입고 명품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셨다면
이 마음이 이렇게까지 무거웠을까.
보라색 점퍼,
시장 바닥에서 샀을 법한 기모 몸빼 바지,
평생 병원 청소를 하며
휘어지고 닳아버린 손과 다리.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매일 술로 집안을 전쟁터로 만들던 남편을 견디며
자식 둘을 키워낸 사람.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삶의 도리는 누구보다 깊이 체득한 사람.
그리고 그 삶은
나에게도 한 번,
아주 크게 건너왔다.
김기사와 연애하던 대학 시절,
나는 친정의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사정을 아신 어머니는
결혼을 서둘러 빚을 갚아주셨다.
남의 집 일하고, 병원 청소를 하며
십 원 한 장 아껴 모은 돈이었다.
그 빚은 이후 3년에 걸쳐 모두 갚았지만,
그때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순간은
지금도 마음에 깊게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는 당신 몸보다 소중한 돈을
손녀의 등록금으로 내미신 거다.
어머니는 요즘 등록금이 얼마인지도 모르신다.
수능이 무엇인지,
(미대) 실기고사가 왜 힘든지도 모른다.
그저 한 가지만 아신다.
‘내 손녀가 대학에 간다’는 것.
굽은 등과 휜 다리를 내어주며
그 사실 하나를 위해
봉투를 채우셨을 뿐이다.
색 바랜 옷,
점점 작아지는 몸,
투박한 말투.
모르는 것은 많았지만
자식을 향한 마음만큼은
언제나 정확하셨던 사람.
고맙습니다, 어머니.
사거리에서 조용히 건네주신 그 봉투 안에는
돈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애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묵직한 진심을
저는 평생 잊지 않고
귀하게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