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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Sep 09. 2020

세 살 취향 여섯 살까지 왔다

절간 같이 고요한 내 블로그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는 휴대폰 알림이 떴다. 드문 일이라 누가 어떤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을지 궁금했다. 알림을 눌러 열어보니 예상과는 달리 아주 짧은 댓글이 적혀 있었다. '너무 예뻐오'. 다섯 글자였다. 너무 예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급하셨나 보다.. 무슨 글을 보고 나온 반응일지 알아보려고 다시 얼른 본문을 열어보니, 아이 세 살 때 봉숭아 물들였던 걸 보고 쓴 글이 나왔다.


짧은 글이라 여기 옮겨 본다.


낮시간 서윤이를 봐주시는 선생님께서 서윤이 양쪽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이쁘게 봉숭아 물을 들여주셨다.

아빠, 엄마가 다 못해 주는 부분을 선생님께서 채워주셔서 고맙다.

"서윤아. 손 요렇게 해 봐." 했더니 잘 따라 하길래 사진 한 컷 찍었다.

사진 보면서 아이 손 생김새를 한 번 더 본다.

내 손 닮았나 관심있게 한 번 더 본다.



'아이 손이 저렇게 작고 오동통했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덕분에 잊고 있었던 사진을 다시 한번 보는 시간이 되었다.


글을 썼을 때가 2017년 9월이니 어느새 3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는 6살 유치원생이 되었다. 키와 덩치와 손과 발이 커지고, 말과 글과 생각이 느는 중이다. 오늘도 유치원에 입고 가는 옷 가지고 아침부터 울고불고 엄마랑 사랑과 전쟁을 찍었다는데, 찡찡과 고집도 늘어가는 중이다. 그것도 과정이려니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세 살 취향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손톱에 뭔가를 칠하는 걸 좋아해서 아이들 장난감 세트에 있는 물로 지워지는 매니큐어를 바르기도 했고, 엄마 것을 슬쩍 가져다가 발라보는 시도도 했었다.


며칠 전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아내가 “아이 손 좀 봐.”라고 했다. 오마나. 아이 손톱이 형형색색 칼라로 덧칠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야. 직접 다 한 거야?”라고 했더니 유치원에 교생선생님이 나왔는데 아이들 손에 매니큐어를 발라줘서 했다고 한다. 선생님 앞에 앉아서 기쁜 마음으로 손톱을 바라봤을 아이 모습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세 살 때랑 달라진 건 이젠 손톱칠뿐만 아니라 반지까지 좋아해서 손에 토끼 반지까지 끼워져 있다는 것.


“이리 와서 손 요렇게 해 봐.”해서 다시 사진 한 컷 남겼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왠지 세 살 취향도 여든 살까지 갈 것 같다.


어느새 세 살 취향 여섯 살 까지 왔다.



p. s. 자라면서 멋 좀 부릴 거 같은데.. 난 돈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닌데 어쩌지..





<사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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