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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Oct 18. 2020

아이 앞니가 빠졌다

6살 딸아이에게 일생일대의 빅뉴스가 생겼다.


몇 주 전 딸아이는 이가 아파서 엄마와 함께 치과에 다녀왔다. 충치가 생겼고, 치료를 잘 마쳤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아이 아래쪽 앞니 2개가 3달 이내로 빠질 겁니다."라는 말씀을 덧붙여 해 주셨단다. 그날 저녁 딸아이는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는 아빠에게 바람처럼 달려와 "아빠 아빠. 의사 선생님이 나 이빨 빠진다고 그랬다~~ 그리고 새 이빨이 요 밑에서 올라올 거래."라고 손가락으로 아랫니 쪽을 가리키며 들떠서 그 소식을 전했다.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건 누구나 한 번은 겪게 되는 과정이다. 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봤다. 나는 집에서 앞니를 뽑았다. 부모님이 내 이빨 뿌리에 실을 칭칭 감은 뒤 관심을 딴 쪽으로 유도해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이를 쏙 뽑았다. 난 울지 않았다. 뽑은 이는 달밤에 지붕 위에다 던졌던 것 같다.


별일 없이 한 주가 흘러갔다. 여느 때와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기 위해 욕실로 갔다. 치카치카를 시켜주려고 입을 벌려보라고 하니 아이의 아랫니 2개가 누렇게 변했고, 잇몸은 하얀 띠가 퍼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윗니 아랫니 골고루 치카치카를 시키고 마지막으로 치실을 끼워 이물질을 제거해 주는 데 아랫니 두 개가 뒤로 휙 밀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순간 움찔해서 더는 진행하지 못하고 잠시 멈췄다. 딸아이에게 "아랫니 두 개가 빠질라고 흔들거리네."라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자신의 혀로 아랫니를 밀었다 제쳤다 해보더니 갑자기, "이 빠지면 나 어떻게 살아~~"하고 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잉? 나 실수한 건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전달했는데, 아빠의 얘기를 들은 아이는 그때서야 실감이 나고 두렵고 그랬나 보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 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급기야 엄마가 출동하는 상황이 되었다.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는 아이구나. 내 기준이 아니라 아이에 맞춰서 조심조심 얘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6살 아이가 어떻게 '나 어떻게 살아?'같은 말을 구사하지 하는 신기함과 놀라움도 교차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치과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는데, 데리고 가자마자 아랫니 2개를 한꺼번에 뺐다. 와이프 말로는 1초도 안 걸렸다나. 그날 오후에는 꺼이꺼이 울던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아랫니 없어도 해맑게 웃는 딸아이 사진이 나의 휴대폰에 도착했다.


아이는 바뀐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앞니가 없어서 불편하지만 어금니로 음식을 잘라서 먹으려고 애쓰고 있다. 아랫니가 없으니 시옷(ㅅ) 발음은 잘 안 된다. 이제는 기분이 다시 좋아져 "아빠 앞니 옆에 이가 이가~~"하면서 마치 옆에 있는 이도 흔들리는 것처럼 아빠를 걱정시키고는 "뻥이야~~."라고 장난도 친다.


지금 빠진 이가 곧바로 날지 시간이 좀 걸릴지는 모르겠다. 때가 되면 나오겠지. 새로 나오는 이가 반듯하게 나와서 가지런한 치아가 되면 좋겠다. 이왕 나오는 거 튼튼하게 자리 잡아서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희망해 본다.


p. s. 치과에서 준 작은 통에 아랫니 2개를 담아왔다. 아파트에 살아서 지붕에 던질 수도 없고 어디 영험한 곳에다 묻어주고 싶은데, 어디 좋은 데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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