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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Oct 23. 2020

순대는 뱀이 아니란다

아빠는 순대중독자란다.


이건 다 할머니 때문이야. 아빠가 어릴 적에 할머니를 따라서 시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순대라는 것을 처음 먹었단다. 장터에서 아주머니가 빨간 고무대야 속에서 장어처럼 생긴 놈을 꺼내서 썰어줬고, 그걸 된장에 찍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있었단다. 그때부터 할머니가 시장에 간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나섰지.


아빠는 자라면서 순대를 주기적으로 먹었단다. 그런데 중독이란 모름지기 금단현상이 뒤따른단다. 일정 기간 순대를 안 먹으면 몸에서 '순대가 부족해'라는 신호가 오더라. 소위 땡긴다고 하지. 처음에는 순대만 먹었는데, 그 단계를 마스터하니 순댓국을 먹을 수 있게 되더구나.


고등학교 시절 아빠는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때론 제끼고) 친구들과 순대집을 들락거렸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순대와 막걸리라는 환상의 조합을 알게 되었고, 대학교 4학년 때는 자취방을 구했는데 순대집이 앞이었던 관계로 일주일에 4~5번은 순댓국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었지.


사서 먹다가 가서 먹는 단계에 이르니 순대집에 장점이 많더라고. 여럿이 가도 저렴하면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고, 혼자여도 주변 의식 않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직장에서 끼니도 잊은 채 늦게까지 야근하고 홀로 집으로 가면서 순댓국에 소주 한 병으로 그날의 피로를 풀곤 했단다. 술자리가 있은 다음 날에는 순댓국이 해장으로 최고였지. 그러다 보니 아빠 인생에서 가장 많이 외식한 단일 메뉴가 '순대'란다.

 



네가 태어나고 나는 아빠가 되었지. 네가 커서 이제는 딱딱한 것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좋아하는 순대를 너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단다.


하지만 세상 일은 아빠의 뜻대로 되지 않더구나.


2년 전 네 엄마가 집에 먹을 게 없다고 하여 퇴근하면서 대형마트에 들렀지.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찰순대를 사서 집으로 갔었다. 너는 그때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레시피대로 15분간 순대를 쪘었지. 익은 순대를 꺼내서 도마 위에 올리고 둘둘 말린 순대를 먹기 좋게 칼로 썰고 있었단다.


그때 네가 다가왔었지. 그리고 아빠에게 물었지. 이건 뭐예요 라고.

아빠는 당당히 말했지. "이건 순대란다."


그런데 너는 3연속으로 아빠에게 질문을 날렸지.


"아빠, 이거 동물이야?"

"혹시 뱀은 아니지?"

"방금 뱀의 머리를 자른 건 아니지?"


맛있다고 한 번 먹어보라고 했더니 너는 입에 대지도 않고 피해만 다녔지. 이래서 첫 경험이 중요하구나 아빠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차차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 후에도 넌 순대를 입에 대지 않았지. 어느새 2년이 흘렀는데도 말이지.


모든 게 운명의 장난이란다. 그러나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단다.

우리 세 가족 순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젓가락질 하면서 함께 웃을 그날을 말이지.


그 날을 기약하면서 오늘도 아빠는 열심히 일할게.


2년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딸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으로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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