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내어놓을 것이 없을 땐 내어놓는 것이 유달리 많다.

by 차렷 경래


이력서

김경래



백지 위엔 머슴 하나 나뒹굴고 있다
벌거벗겨진 채 미로에 고문 중이다

실험용 쥐처럼, 맹독성 눈초리 앞에
보이는 건 오직 순간의 짧은 내력뿐인데
사람들은 이 정도로 나를 안다 아우성이고
글자 몇 자로 남의 인생에 행세한다

행적이 묘연한 자리에

껍데기 수료증이 물올라 있다
남 뒤통수 때리던 소소한 오욕의 분실이여

일생은 마냥 값나가는 스틸컷의 물량공세
내 눈물과 아픔의 열병조차

두리뭉실 마감된 펜대의 리그전이지
감춘 것을 다 내어 놓는다면
백지 위에 쓰지는 않으리

말라버릴 잉크로는
염원 몇 가닥인들 쓸 수 있을까.



해설과 변명 |


제대로 된 사람을 찾는다면 이력서를 무시한다. 이력서는 얼굴이고 속사람은 그 이면의 진실이다. 혹은 얼굴만 보았다면 내면이 피악 되는 시점에 다시 판단할 근거를 남겨두자. 그런탓인지 인턴이니 걔약직이니 하며 세상이 떠들썩하다.


결혼관도 마찬가지겠다. 몇 년을 알아가야 그가 누군지 겨우 보이는 것이 사람이다. 실수하거나 변할 수는 있되, 그 이후의 처리 방식이 사람을 더 아는 판단 근거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반드시 나중이 나오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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