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수도와 변기와 쥐덫
1.
비는 지루하게 예보되어 있다. 앞으로 10여 일, 크리스마스 끝난 후 며칠 까지는 체념하고 지내야 한다. 덕분에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장점이 있긴 하다.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가 확인하기 위해 꼭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일기예보 앱이고, 그 유용성이 점점 더 더해갈 뿐 아니라, 정확도에서 뛰어나다. 비슷한 여러 앱들 이라 해도 아이폰에서 디폴트로 제공하는 앱이 더 정확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내가 쓰는 안드로이드 폰의 앱을 비교해 보면서부터다.
그렇다고 그 비교가 자세한 기술 정보를 가져다 스펙 대 스펙으로 한 건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 그 파편에서 흔적을 찾아냈을 뿐이다. 예컨대,
“내일 비 온대..”
“아닌데, 날씨 좋다는데…”
“누가 그래?”
“누구긴 누구야, 전화기지”
“너 전화는 그렇게 나와?
“응”
“흠… 난 아닌데…”
식의 일상 속에서다. 그리곤 다음날 되면 여지없이 내가 맞는 현상.
대체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술적인 분석은 멀리하고, 경험에 의한 감정 이입으로 끝내려 한다. 익숙한 환경에 안주하고 싶고, 머리 아픈 일은 피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 본능을 저항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우리는 그럼 사람의 내적 유형을 갈렙 혹은 파우자 신드롬이라 부른다.
갈렙은 40세가 되었을 때 모세의 명령으로 여호수아와 함께 12명의 일원으로 가나안 정탐꾼으로 갔다. 45년 후, 85세가 되었을 때 여호수아에게 찾아가,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들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청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85세면 분배받은 땅에서 조용히 농사나 짓고 살겠다 할 텐데, 갈렙은 가장 험난한 지역을 청했고, 결국 그곳의 장대한 기골의 민족 아낙 자손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다. 이런 갈렙의 지치지 않는 도전 정신을 가리킨 말이 갈렙 신드롬이다.
한편 파우자는 인도의 마라토너다. 89세에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원인은 부인과 자식을 잃게 된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였다. 92세에 토론토 마라톤 완주, 100세에 런던 마라톤 완주함으로 공식 기네스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고 세계 기록을 세우는 사람”을 지칭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기술에 대해 제때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스마트폰 하나에도 부지런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안 그런 사람보다 더 재미있는 인생 후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 뒤엔 수도꼭지와 워터 호스가 있다. 여름이면 쉴 새 없이 사용하는 이 귀중한 도구가 못쓰게 망가지는 일은 겨울 동안 방치된 상태로 뒀을 경우다.
몇 년 전 일이다. 큰 신경 쓰지 않고 계절이 바뀌도록 호스를 버려두었었다. 그다음 해 호스 몸통에서 실 펑크가 나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좋은 호스라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집안 관리나 장비에 별 신통치 않은 실력으로 도구를 방만하게 관리했다는 후회를 가져왔다. 실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 찾아보고 알아볼 의욕이라도 있어야 했다는 마음은 그다음 해 봄이 되어서야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의욕 자체도 실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시에, 겨우 잔디 깎고 가든 정리하는 것, 지붕 청소 하는 것쯤, 배우거나 장비를 사서 관리하는 수준이 다인 터에, 이도 나의 한계를 넘은 거라고 자부하면 더 이상의 의욕도 사치라는 사실과 함께.
그 이후로 겨울이 되기 전에 잔뜩 긴장하고 준비한다. 호스를 빼 창고에 보관하고, 수돗물을 잠근 후, 별 사용이 없는 수도는 덮개를 수도꼭지에 씌운다.
2.
집은 전체의 1/4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십 년 된 수령의 Cedar 소나무로 울창한 숲이다. 겨울이면 집 뒤뜰 기온이 지역 평균보다 2-3도는 더 떨어트리는 숲이다.
집 앞과 뒤에 있는 각양의 나무 중 이 세다 나무는 키가 30-50 미터로 크다. 가치로 보면 값을 헤아리기 어렵게 곧고 튼튼한 나무다. 그 고픔 경의 나무들로 빽빽한 숲을 2층 덱에서 바라보는 것은 가히 축복이다.
그런데 이 큰 키의 나무가 알고 보면 숨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내실의 빈곤이다. 이 나무들 주위로 끼고도는 계곡 물이 원인이다. 물을 먹기 위해 힘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늘 물은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크게는 자라지만 뿌리가 깊지 않다. 큰 키는 언제고 강풍이 지나갈 때 쉬 넘어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일 년에 몇 번씩 오고 가는 폭풍에 이 나무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자연히 나무 쓰레기를 양산하고 만다. 쓰러지면서 옆 나무에 부딪혀 몇 개의 조각으로 땅에 떨어진 나무 파편들을 내버려 두지도 못한다. 숲 사이로 산책로가 있고, 이 길이 넘어진 나무로 막히지 않게 최소한 옆으로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