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과 별, 거리의 법칙이다. 100도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젠 북반구도 적도 못지않게 뜨겁다. 개가 그늘을 찾아 바닥에 자빠지고, 말만 나오면 수영장에 아이스크림이다. 대형 쇼핑몰과 은행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북적댄다 더운 것이 진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30도도 높을 동네에서 40도 소식도 심심치 않다. 그런데도 물이 이제 겨우 끓는 온도라고 하는 것이 100도라면 40도는 여전한 새 발의 피다.
지난 며칠 뜨거웠다. 최고기온 33도를 기록하고 서서히 식었다. 열대야 기온이 3층 하우스 아래층으로 자꾸 내려가야 잠이라도 잘 수 있게 했으나, 이 역시 내가 느끼는 극히 주관적인 온도일 뿐 여전히 물 하나 끓이지 못하는 어중간함이다.
삶을 100도로 산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아니 100도로 살 수는 있을까? 물을 데우는데 그치지 않고 끓인다면,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결과물을 대량으로 내놓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산 온도가 겨우 50도쯤인데 그 정도인 것은 아닐까? 사람으로 태어난 모두는 100도라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한다. 생의 첫 발걸음이 그렇고, 인생에 눈뜨는 소년 시기에 그렇다. 계절이 바뀌면 또 그렇게 새롭게 출발선에 서기도 하고 해가 바뀔 땐 연례적으로 하는 행사다. 그 맛이 사는 맛을 더하는지도 모른다. 뒤엣것은 잊고 푯대를 향할 수 있다면 여전히 생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뒤돌아보면, 턱없이 높은 가능성을 허공에 남겨두고 그네가 흔들린 15도만큼만 살다가 진다. 가고 싶고, 갈 수 있었지만, 가지 못했거나 가지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학창 시절 이런 유의 등굣길 추억은 부지기수다. 신혼여행 둘째 날 제주 한라산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내와 잠이 들었다. 목적지를 지나쳤을 뿐 아니라 버스는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향하는 중이었다. 관광은 망쳤지만 어차피 함께 있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으므로 여전히 행복할 수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을 살피지 못하면 쉽게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나마 자리라도 잡았다면 그것이 보금자리가 되어 관심 사항이 바뀌어 버린다. 바뀌고 잊고 흔들리는 우리는 그렇게 약한 존재다. 행복의 치수니 척도니 이야기하지만, 성취감이 꼭 행복이라는 일치는 없다. 그것도 극히 대다수 사람이 자신의 목표에 밑도는 인생을 살지만,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은, 따끈한 중간 지점은 역시 가장 편안한 안전지대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