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

해와 달과 별, 거리의 법칙이다. 100도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by 차렷 경래

33도

김 경래


태양이 가까우면 호들갑스럽고
음식물이 열에 빨리 부화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냥감만 겨냥한 채 얼마나 많이
우리는 어중간해했던가


나사를 뽑다 말고
어설프게 남겨둔다든지
진입구가 통제된 극장 앞에서
암표상과의 흥정한달지
행인으로 드라마 한 편 출현하고
온 친척이 눈을 비비며 찾게 하는
검지와 엄지 사이의

밀어 넣다 만 방향 감각의 잔해

과연 대단하다
팽팽한 줄 위로 다리 한 짝 올려놓는 일만큼
찍찍이 위로 파리 날개 걸터앉은 일만큼
지구의 온난화로
프라이팬 생존이 위협받는 일만큼.



이젠 북반구도 적도 못지않게 뜨겁다. 개가 그늘을 찾아 바닥에 자빠지고, 말만 나오면 수영장에 아이스크림이다. 대형 쇼핑몰과 은행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북적댄다 더운 것이 진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30도도 높을 동네에서 40도 소식도 심심치 않다. 그런데도 물이 이제 겨우 끓는 온도라고 하는 것이 100도라면 40도는 여전한 새 발의 피다.

지난 며칠 뜨거웠다. 최고기온 33도를 기록하고 서서히 식었다. 열대야 기온이 3층 하우스 아래층으로 자꾸 내려가야 잠이라도 잘 수 있게 했으나, 이 역시 내가 느끼는 극히 주관적인 온도일 뿐 여전히 물 하나 끓이지 못하는 어중간함이다.

삶을 100도로 산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아니 100도로 살 수는 있을까? 물을 데우는데 그치지 않고 끓인다면,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결과물을 대량으로 내놓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산 온도가 겨우 50도쯤인데 그 정도인 것은 아닐까? 사람으로 태어난 모두는 100도라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한다. 생의 첫 발걸음이 그렇고, 인생에 눈뜨는 소년 시기에 그렇다. 계절이 바뀌면 또 그렇게 새롭게 출발선에 서기도 하고 해가 바뀔 땐 연례적으로 하는 행사다. 그 맛이 사는 맛을 더하는지도 모른다. 뒤엣것은 잊고 푯대를 향할 수 있다면 여전히 생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뒤돌아보면, 턱없이 높은 가능성을 허공에 남겨두고 그네가 흔들린 15도만큼만 살다가 진다. 가고 싶고, 갈 수 있었지만, 가지 못했거나 가지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학창 시절 이런 유의 등굣길 추억은 부지기수다. 신혼여행 둘째 날 제주 한라산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내와 잠이 들었다. 목적지를 지나쳤을 뿐 아니라 버스는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향하는 중이었다. 관광은 망쳤지만 어차피 함께 있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으므로 여전히 행복할 수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을 살피지 못하면 쉽게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나마 자리라도 잡았다면 그것이 보금자리가 되어 관심 사항이 바뀌어 버린다. 바뀌고 잊고 흔들리는 우리는 그렇게 약한 존재다. 행복의 치수니 척도니 이야기하지만, 성취감이 꼭 행복이라는 일치는 없다. 그것도 극히 대다수 사람이 자신의 목표에 밑도는 인생을 살지만,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은, 따끈한 중간 지점은 역시 가장 편안한 안전지대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