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김경래
내 처방은 포용력에 있습니다
누구 앞이든 불 땐 화로가 꺼지고
통로가 막힌 수도관이
옆구리로 소리를 뱉으면
휴식이 필요한 넋두리는 다 습관이었답니다
구르다 모인 이파리가 구릉에 밀집하고
무색한 낙서를 주워 비굴한 경력을 읽겠습니다
대각선의 빛 자국이 벽 모니터에 걸리고
매끈한 경사면에는 촉수를 갖다 댑니다
동공보다는 둥글고 큰 눈물 단자
화촉 밝힌 희망의 우편함에 꼽은
나는 싸잡아 안아 주는 아량입니다
아무 말이나 허공을 찌르는
가쁜 숨에 책잡힌 문명이란 게
그렇게 우리를 버림받게 한다면
한껏 부풀던 베르테르의 날이
다 여기 있다 하지 않겠습니까
내 범주는 상처의 치유입니다
꼬깃한 지난 추억의 실타래를
밀실 밖 파랑 페인트로 칠하려 했죠
시답잖은 낱말 몇 자로
염치없던 근황의 자판을 두드립니다
삐그덕 핀 빠진 하이체어에 앉아
목표지점을 되돌아보는
문풍지 틈만큼의 희망이라는 택배
지금부터 갈무리해 드리겠습니다.
희망이라는 것, 마당 끝에 위치한 우체통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이다. 아무도 갖다 주지 않을 때 내가 찾아 나서는 안 갇힘의 원천이 시답잖은 퍼즐의 첫 조각을 책상 위에 올리는 일만큼 소중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인생의 입지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우체통에 배달된 수많은 우편들 속엔 우리가 있어야 할 정체성이 반드시 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배달되는 찌라시 전단물, 시청에서 온 고지서랄지 시시콜콜한 안내문 틈에서 반드시 사람이 사람을 향하는 생기가 어디선가 배달되어 있을 것이다. 희망은 우리 눈의 사각지대를 흘끔 바라보는 것에서 문득 시작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