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없는 세상에서는

사건이 핫이슈가 된다는 것은

by JJ

얼마 전 캄보디아 프놈펜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으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행지를 돌아보며 구경을 할 수 있는 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프놈펜 시내에 있던 국제 교회에서 주일 예배 후, 이번 캄보디아 행을 주선해 주신 선생님께서 그 근처에 있던 관광지로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전혀 아무런 준비나 사전조사 없이 도착한 곳, Toul Sleng이었습니다.


Toul Sleng 티켓을 내고 입장을 하면 유네스코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이 보입니다

Toul Sleng 대학살 박물관.

캄보디아에 '킬링필드'라 불리는 끔찍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 어떠한 내용인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해서 설명을 들으며 불과 40여 년 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70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폴 포트는 공산주의 사상에 깊게 빠져 있었고, 그 어느 나라보다 더 훌륭하게 공산주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는 `공산주의 건설의 장애물`이라는 이유로, 2만여 명의 지식인들 (교사·기업인·의사·예술인·체육인 등)을 참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심지어 외국어를 아는 사람이나,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죽여버렸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죽여야만 하는 사람들 안에 프랑스까지 유학을 다녀온 자기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성인들만 살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린 자녀마저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런 불손한 사상을 갖은 부모에게서 불손한 사상을 전해 받은 자녀가 자랐을 것이라는 주장에 의해서요. 외국인도 사형당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기도 어려운 어린아이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살인 병기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프놈펜에 있던 학교 건물을 개조해 비밀 감옥으로 사용합니다.

그곳이 바로 Toul Sleng입니다.

교실이었을 듯한 공간이 고문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학교 마당이었을 곳 역시 고문 장소가 돼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지식을 습득하며 즐거운 학창 시절의 추억을 쌓아야 하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진 곳이 되었습니다.




뾰족한 쇠창살 사이로 푸르디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손에 닿지 않는 푸른 하늘이 그들을 얼마나 더 절망스럽게 했을까요.

방마다 하나씩 놓인 고문 기구들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곳을 둘러보며 더 놀라웠던 사실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이런 일들을 그들이 꼼꼼히 기록하고 문서화했다는 것입니다. 죽이려고 잡아들인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키를 재서 문서화했습니다.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러한 기록을 자랑스럽게 남기진 않았겠지요.


또 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모든 일이 불과 40여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루 이틀 만에 끝난 것이 아니라 4년 여간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1975년 4월부터 대학살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는 이미 전화기뿐만 아닌 무전기도 사용 가능할 정도의 통신 장비의 발달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시대였습니다. 유엔 평화 유지군이 설립된 연도는 1948년이라고 합니다.

1975년부터 4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자행되는 대학살을 멈추도록 그 누구도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디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섬나라가 아닌,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 국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 국가에서 이런 일들이 세계로 전해지지 않고 4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소문이 새어나가지 않게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하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봄에 다녔던 "사회 선교 학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거기서 "어필"이라는 공익 법 단체 탐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유엔 아동 인권 보호에 서명한 우리나라가, 그 아이들의 인권을 처절하게 짓밟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나와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범주에 들지 않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소외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http://www.apil.or.kr/


하루 이틀 있었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201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인터넷에 어필 홈페이지도 있고, 그분들의 활동이 기사로도 나왔는데 저는 몰랐습니다. 헤드라인이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이지만, 우리가 알게 되는 정보는 결국 우리가 관심을 쏟는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인터넷 기사에 헤드라인으로 올라오는 많은 기사들은, 내가 오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소식들은 어떠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관계된 일을 하는 친구와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가 북한 관련 영화 <신이 보낸 사람>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영화 스토리 라인상, 분명히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픈 부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반응하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무덤덤한 반응이어서 자신이 있던 상영관에서만 그러한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많은데, 우리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눈물 흘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라는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내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내가 어차피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을 덜 느끼지만, 내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지금 살아가는 하루가 나 자신에게도 너무 벅차기 때문에, 내 손길이 닿을 만한 곳에 있는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관심조차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윌리엄 C. 비얼 [신념과 신뢰] 1958 퓰리처 상 수상


어떠한 "사실"이 전달되는 범위나 파급력에 관하여는, 그 사실의 전달 방법보다는 그 사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느냐가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사과를 받지 못하고 착취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그 할머니들을 위해 뛰다가 벌금형을 받은 여대생 김샘 씨나,

"난민"이라고 인정조차 받지 못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아직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2017년의 누군가를 위해.


금전이던, 시간이던, 마음이던.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직도 그늘 많은 그곳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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