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영원히 발전하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가난한 집, 그게 우리 집이었다. 골목길을 지나가며 마주하는 동네 할머니들은 혀를 차며 우리 집의 사정을 걱정했다. 엄마는 그게 못내 서러워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찌 되었던 이 동네는 아빠에게 사랑하는 나의 고향이었으니까.
되는 대로 산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 스스로 해보고 싶은 일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금세 어떤 벽에 가로막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 친구들 모두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을 때도 나는 그 강의나 책값이 무서워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도 늘 생각만 했다. 몇 년 준비하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안 되겠지 하면서. 몇 년 전부터는 그냥 시험이라도 쳐볼걸 하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하곤 한다.
웃긴 건 그렇게 살면서도 가난해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뚜렷하게 해 본 적이 없다는 거다. 집이 못산다고 선생님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도, 반장보다 더 많은 일을 해도 가난한 부반장이라는 이유로 나를 무시했던 선생님의 태도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점점 더 쭈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는데도 그러려니 했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보다 더 많이 불편한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건 못살아도 내게 나름 애정을 주는 부모님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남들보다 생활감이 떨어져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되는 대로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도 없었다. 그렇게 일평생을 표류했다. 사실 멍청하게 흘러가면서도 나는 내가 표류하는 이곳이 바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은 하천쯤 됐다. 그런 좁은 곳에서도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그래서 파견직으로 몇 년, 계약직으로 몇 년 일하다가 쉬고 있는 지금, 이제는 대학 졸업 후 일한 날들보다 쉰 날이 더 많아졌다. 몇 년 전부터 나이의 가장 앞자리가 바뀌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뤄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걷더라도 아, 이쪽으로 이렇게 가는 게 아니구나 하는 교훈을 얻고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보다도 영양가 없는 삶이었다. 무엇도 얻어내지 못하고 늘 가만히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던 나는 누가 봐도 그냥 패배자였다. 참, 아이러니하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결국 실패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을 때, 아빠가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이미 몸속에 여기저기에 전이되어 있었다. 허리 통증으로 찾은 병원이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 뒤로 허리 통증이 심해져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을 오가야 했고 거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는 항암제가 잘 맞아서 아빠의 통증은 사라졌고, 겉으로 봐서는 중병 환자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신이라는 신 모두에게 감사드릴 정도로 나아진 상황이지만, 사실 아빠는 돈이 없어서 원하던 병원에서 더 치료받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사는 곳 주변에도 좋은 병원이 있지만, 환자라면 더 크고 더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은 게 당연하리라. 나 또한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내 능력 밖이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돈이 없을 때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불행이 더 몸집을 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돈이 없어서 이 불행이 더 크고 무섭구나. 돈 앞에서 목숨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배웠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불행하게 살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물론 사람마다 그 어느 정도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목숨이 달린 일에 돈을 떠올려야 하는 상황은 겪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어쩌면 나는 여태껏 못살아서라기보다는 잘 못 살아서 더 불행했던 것 같다. 가난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난을 변명 삼아 살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물론 큰 일을 겪으면서 앞으로는 독기를 가득 품고 앞으로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할 줄 알았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다만 내 삶을 흐리게 보여주던 얼룩 묻은 안경을 벗은 것 같다. 애써 그 얼룩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위기 경보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좀 뛰어야 될 것 같다.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겠지만 망할까 봐 두려워 그냥 망해버린 삶을 살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