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을 보여줘!

긍정의 힘을 보여줘?

by 그리니지


어릴 때는 바람 부는 게 너무 싫었다. 방음 그런 거 모르겠다는 낡은 집에 살다 보니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지붕을 때리는 전깃줄 소리에, 덜컹이는 대문 소리들이 온 집안을 훑고 다녔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이 서라운드로 내 귓가를 울릴 때면 괴로웠다. 남들보다 좀 더 예민했던 나는 그 소리들이 마치 대문이 쓰러지고, 지붕이 날아갈까 봐 두려워 그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아마 나는 늘 만성적인 불안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불안을 그냥 걱정과 겁이 많은 성격쯤으로 생각했고, 내색하지 않아도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는 불안, 우울, 분노인가 아무튼 부정적인 심리를 확인하는 세 가지의 심리 검사에서는 모두 90점을 넘겼다. 그게 국영수 점수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친구들도 놀란 점수였지만 나 때는 학생의 심리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그냥 검사를 하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뒀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여태껏 내가 평범한 사람이고,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이 예민한 사람이겠거니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가진 감정들은 단순한 불안과 우울 그 이상이었다.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이라더니 그때 나에게 참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째 저째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니 어른이 되어있었다. 물론 여기서의 어른은 그냥 나이만 먹은 사람을 말한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을 줄 알았지만 그건 경기도 오산만큼 크고 넓은 착각이었다. 취업에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 세상이라는 출발선에서 뛰기 시작하자마자 넘어져버렸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났지만 자꾸만 넘어지는 일이 많아지면서 나중에는 뛰지도 않고 그냥 앉아서 쉬기만 했다.


내가 가는 길에는 왜 이렇게 신호등이 많은 것이며, 내가 가려고만 하면 빨간불이 켜지는 걸까. 그렇게 나는 장기 취준생이 되었다. 중간중간 일을 하기는 했지만, 직장이라는 곳에 완전한 내 자리는 없었다. 내 직업을 묻는 질문에 무직이나 취업준비생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기에 자기 계발서를 읽는 데 몰두했다. 자기 계발서 중에서도 긍정의 힘, 끌어당김의 법칙 등에 대한 책을 주로 읽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 나는 잘 될 거야 하면서 이유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날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취업보다는 사업이나 주식, 비트코인 쪽으로 마음이 흐르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상황이 된 건 내가 남들과는 다르게 성공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본 장기 취준생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지만, 원대한 꿈만 가진 사람이자 스스로가 한심하긴 하지만, 어쨌든 잘 될 거라고 믿는 프로망상러가 되어있었다. 자기 계발서 몇 십 권 정도 읽고 나서 책을 100권, 1000권 읽어봤자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실행력이 없는 긍정은 그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한 번씩 너무 우울할 때는 앞으로 절대 긍정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미취학 아동 같은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사는 건 좋은 것 같다. 프로망상러가 되었다더니 갑자기 왜 긍정하라는 건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건 성공한 사람이 해야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쨌든 집에서 미친 듯이 읽고 쓰고 외쳤던 긍정의 언어들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 중 하나로 불쑥불쑥 자주 찾아오던 불안들은 이제 나와 거리 두기를 하려는 것 같다.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오면 '어? 또 이러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의도적으로 다른 걸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물건 같은 걸 일부러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 불안이 내 마음에 찾아와 머무는 시간도 짧아진다.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지만, 그래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외치는 나를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인지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에 젖어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게 뭐 어렵냐 싶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생각들을 의식하고 제어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의식하다 보니 전보다는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을 많이 털어내고 있다.


우리가 하는 걱정 중 4%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거나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걱정할 게 너무 많아서 두렵기까지 할 때는 속는 셈 치고 좋아하는 걸 떠올려보자.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나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인간관계에 적용시키면 착각이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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