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어릴 적부터 벽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완-벽. ...아무튼 그랬었다. 완벽주의는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태생적으로 소심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던 나는 의도치 않게 완벽주의자의 길을 걸어갔다. 공부를 할 때도, 노트를 정리할 때도, 시험을 준비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뭐든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 집착 덕분이었는지 어렸을 때는 결과도 나름 괜찮았다. 역시 완벽하게 하려는 자세는 참 좋은 것 같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린 시절의 나였다.
물론 내가 부지런했으면 완벽주의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였고 그 결과는 뻔했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을 때 시작하고 싶다는 이유로 생각한 일들을 미루고 또 미뤄서 결국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일들이 쌓여갔다.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완벽한 준비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질러야 했다. 그랬으면 내 삶이 더 다채롭고 풍요로웠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삶은 생각보다 얼렁뚱땅 흘러가서 완벽하지 않아도 곧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데 그걸 많이 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완벽하게 하려고 해도 나는 AI 로봇이 아니었고 사소한 실수 하나쯤은 꼭 있었다. 무엇이든 완벽하기 위해서 노력해 봐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기를 쓰고 완벽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인생이 달려있는 일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완벽하게 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맞지만, 그런 게 아니라 무언가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면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나의 작품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선을 긋고 또 그어야만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완성하고 더 나아가 완벽하기 위해서는 완벽하지 않은 순간들이 아주 많이 있어야만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완벽한 완성은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완벽주의 지망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 대신 완료주의자를 꿈꾸며 산다. 유튜브에서 '돌돌콩'님이 나온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해외에서 통계학자로 일하기 위해서 꽤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100번의 NO 다음에 한 번의 YES가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몇 번의 NO만 받고도 이를 뼈아픈 실패로 여기며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른 누군가는 한 번의 YES를 위해 100번의 NO를 이겨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100번의 NO는 목표를 완료하기 위한 YES를 얻기 위한 과정일 뿐, 실패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 영상을 본 이후 나는 한 번의 완벽한 도전보다는 여러 번의 도전을 통해 무엇이든 완료를 지어보려는 완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NO를 받더라도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더 발전된 NO 혹은 다음의 YES를 향해 달려 나가자고 말이다.
실패를 두려워말자. 인생이 폭망할 수도 있는 실패가 아니라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 완벽한 순간을 위한 대기는 잠시 멈추고 일단 질러보자. 물론 생각을 저언혀 하지 않고 지르자는 건 아니다. 자신이 꽤 오래 꿈꾸고 있던 일이 있다면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자는 거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항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바다에 나갈 수 없다는 말처럼 완벽한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