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편해질까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내게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정차 시에 앞차와의 거리를 가까이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앞차에 바짝 붙여 차를 세우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지적을 듣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혹시라도 앞에 있는 차가 출발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그 차가 뒤로 밀릴 경우에 대처가 불가능하니 차를 너무 가까이 붙이지 않는 게 맞았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차를 가까이 붙이게 된 것일까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차가 경차라는 게 한몫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운전을 하다 보면 깜빡이도 켜지 않고 무턱대고 끼어드는 차들이나 칼치기를 하면서 내 차를 지나가는 차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간격을 벌리지 않으려고 하던 게 습관이 된 게 아닐까. 경차는 공영주차장도 반값에 이용할 수 있고, 세금 부분에서도 혜택이 많지만 뭔가 안전이나 사람들의 인식 면에서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 차를 몹시 사랑하지만, 어쨌든 나쁜 습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의식적으로 앞차와의 거리를 띄우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저 막연하게 거리를 두자고만 생각하니 잘 고쳐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보인 게 앞차의 뒷바퀴였다. 아, 그럼 앞으로는 앞차의 뒷바퀴가 꼭 보이게 차를 세우자고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러자 순식간에 차를 세우는 게 쉬워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준만 있으면 사는 것도 좀 쉬워지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기준이라는 게 있으면 편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 맞는지 틀린 지도 알 수 있고, 그렇게 사는 게 좋은지 나쁜 지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이 너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하면,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자가를 마련해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 못하면 등등 어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닌데, 너무 높은 삶의 기준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삶의 기준을 너무 높이 잡는 순간,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삶에 실망하게 되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삶의 기준을 높이 잡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나 또한 대학교 졸업 후에 취업의 기준을 조금 더 높이 잡았다면 지금 훨씬 좋은 결과를 얻었을 텐데. 나는 너무 소극적이었고 결국 좋은 시간들을 놓쳐버린 것 같아 지금도 많이 아쉽기 때문에 높은 삶의 기준이라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만든 기준이 아니라 타인이 설정한, 그것도 이루기 쉽지 않은 삶의 기준이 눈앞을 가로막는 순간, 앞으로 달려 나갈 의욕조차 잃게 되지 않을까.
아직 나만의 견고한 철학을 갖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면서 이것만큼은 지켰으면 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하나씩 만들어가야지. 어찌 되었든 사는 게 조금은 더 편해졌으면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