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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Apr 27. 2020

사이드 스토리_05

05. 본고사 시험장에서

그러니까 소년은, 시험장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상황에 왠지 모를 불길함과 위화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험장 안은 그저 몇명의 학생들끼리 모여 시험 전에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을 뿐인데요. 그리고 몇명은 열심히 책상에서 마무리 공부를 하고 있었구요.


소년은 그 화기애애한 시험장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수험번호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 결과,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근거 1.

대학교 입학시험은 보통 지방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많고, 보통 일반 고등학교에서 고려대 입학지원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근거 2.

근거 1 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지방마다 학생들이 다 다른 학교라고 한다면, 이처럼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시험전에 잡담을 나눌 수 없다.


근거 3.

외국어 고등학교 학생은 대학교 입시에서 같은 어문계열로 진학할 때, 내신 가산점이 아무리 못 해도 3등급까지 주는 외고내신특혜라는 제도가 있다.


결론

앞의 근거들을 종합해 보자면, 시험 전에 이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즐겁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이 학생들은 같은 학교, 혹은 같은 반일 확률이 크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각 외국어 고등학교의 일본어반 학생들일 것이다.


이어지는 추가결론

그리고 이 아이들은 외고 내신 특혜 때문에, 내신이 아무리 못 해도 3등급이고, 내 내신은 8등급이다. 이는 나와 등급간 격차가 아무리 못 해도 5등급이라는 말이며, 1등급 차이마다 5점씩이므로 25점 정도 차이가 난다. 게다가 내 대학교 수학능력시험 점수도 엉망이었으니 대충 15점 정도 차이가 있다고 보면, 나와 저 아이들은 출발부터 40점 정도 차이가 난다는 의미이다.


소년은 이런 식으로 줄줄이 결론을 내놓았지만, 지금의 제 관점에서 보자면 저것도 굉장히 희망적인 관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고려대학교에 원서를 낼 수 있는 학생이라면 아무래도 꼴찌는 아닐 것 같고, 수학능력시험 점수도 저보다 15점이 아니라 더 큰 차이가 났을 거니까요.


어쨌든 소년은 자리에 앉자마자, 멘탈 날라갈 추측을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년은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1교시 국어

소년은 30분 동안 열심히 풀고, 나머지 1시간 동안 엎드려서 잤습니다.


2교시 수학

소년은 7문제 정도의 수학문제를 대략 90분 동안 풀어야 했습니다. 시험지를 받은 소년은 마음 속으로 유레카!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고려대 본고사 수학 샘플 문제와 거의 비슷한 유형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소년은 거의 다 맞았던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소년은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1번 문제... 음, 패스.

2번 문제... 음... 패스.

3번 문제... 으음... 패스.

...

...

7번 문제... 으으으음... 패스...


아뿔싸! 한문제도 못 풀었는데 시간은 앞으로 30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나온 이후 수학시험을 보는 지금까지, 약 10일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수학을 단 한번도 공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의 모든 수학문제를 다 외웠던 소년은 그 10일 동안 놀았던 것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소년은 다시 1번으로 돌아가서 부랴부랴 풀기 시작하는데, 한번 끝문제까지 돌고 나니,


수백만번이나 쏘아온 슛이다!


아, 이게 아닌가. 소년은 한시간의 워밍업을 하고 나니 예전의 전투기계, 아 이것도 아니지, 수학에 대한 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제를 하나씩 풀다가 거의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해서 답지를 제출했습니다. 정말 땀나는 기억이었죠.


3교시 영어

대충 30분 풀고 엎드려서 잔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소년은 밥을 먹고, 만화책을 보다가 또 저녁 7시에 취침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기상하여, 이번엔 여유롭게 어제와 같은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익일 1교시 논술

소년은 논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으므로, 30분 동안 바로 볼펜으로 써내려가서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1500자칸에 마침표를 찍고 잤습니다. 소년은 논술 시험 볼 때, 1500자 내외라고 하면 1500자칸에 마침표 찍고 끝내는 걸 하나의 놀이로 여겼거든요.


익일 2교시 중국어

무엇을 숨기랴. 소년은 중국어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적이 있던 터라, 10분 풀고 잤습니다. 물론 만점이었죠.


이 시험장에서 소년의 이러한 엎드려 자는 행태를 보고, 당시 뒤에 앉아있던 대학 동기가 말했습니다.


앞자리에서 시험 보던 어떤 XX가 매 시험시간마다 쳐자서
시험 포기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합격자라고 앞에 있는 걸 보니 정말 놀랐다


소년은 나중에 이 말을 듣고, 생각없이 쳐자느라 뒷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반성을 했지만, 그건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면접

도 있었지만, 소년은 당시 천상천하 유아독존격이었기 때문에 정말 아무 생각없이 교수님과 환담을 나누고 나왔습니다. 교수님이 소년의 내신이 8등급이라는 것을 보고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세


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찝찝했지만 말이죠. 참고로 당시 소년의 만화책 보급담당이었던 신 모군도 교수님에게 저 비슷한 말을 들었지만, 붙었으니까요, 뭐.


소년은 이렇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 끝에 고려대 본고사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외대 본고사 시험도 남았죠. 그리하여 소년은 선배가 살고 있는 한국 외대 근처의 자취방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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