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과하면 아니하니만 못하다. 예시로 과식, 과로, 과장, 그리고 '라임(Rhyme) 과다'가 있다. 작사에서 라임은 '일정한 자리에서 같거나 비슷한 음운이나 시어를 배치하는 것'으로 가사에 운율을 느끼게 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보통은 가사의 앞부분에 반복하는 '두운'(예-하루가 돌아오겠지/아무 일도 없단 듯. BTS의 'Life goes on' 중)과 가사의 뒷부분에서 반복하는 '각운'(예-어제의 나 / 오늘의 나 / 내일의 나. BTS의 'I need you' 중)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함께 쓰이는 경우(예-니가 나한테 이럼 안 돼 / 니가 한 모든 말은 안대. BTS의 'I need you' 중)가 더 많다.
이 라임에도 단계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나뉜다.
▶ [1단계 라임] 같은 자리 및 박자에 라임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쓰는 라임으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예시 - 영원히 함께니까/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BTS의 DNA 중)
▶ [2단계 라임] 박자를 나누어서 라임을 사용하는 것이다. 박자를 쪼갰을 때 보통 강세가 오는 박자에 라임을 맞춰주는 방식으로 한다.
예시 - 내 피 땀 눈물 / 내 마지막 춤을 / 다 가져가 가
내 피 땀 눈물 / 내 차가운 숨을 / 다 가져가 가 (BTS의 '피, 땀, 눈물' 중)
▶[3단계 라임] 자음이나 모음의 받침과 발음의 뉘앙스를 활용한 것이다. 가장 고난도의 라임이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들 때 3단계 라임이 쓰인 경우가 많다.
예시 - 마음은 걷지 않아도 저절로 걸어지네
미련이 빨래처럼 조각조각널어지네 (BTS의 '고엽' 중)
작사를 배우며 애매한 순간이 많은데 비해, 상대적으로 라임은 비교적 명확하다는 것이다. 작사 시 고려할 많은 사항 중 모호한 것을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씹을 수 있는 발음을 섞는다(먹을 것도 아니고 발음을 어떻게 씹으란 건지), 노래할 때 어색한 발음은 피한다('어색'하다란 게 자연스럽지 않다는 뜻인데 뭘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 건지),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는 지양한다(입에 착 붙는 단어란게 무엇일지) 등이다. 처음 맛보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심정으로 우선 이것저것 때려 넣고 만들어내 보지만, 돌아오는 피드백은 이렇다.
"매우 진귀한 재료를 가득 넣고 음식을 했는데, 같은 재료로 고듬 램지가 만들었다면 최상의 요리인데, 00 씨의 요리는 상품성이 없어요. 뭔가 조합이 이상해요. 특히 오늘 00님의 작사는, 저 오늘 라임 처음 배웠어요, 같아요. 가사 끝에 '~고'를 의도해서 넣으신 거죠? 음...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당분간 라임 배운 것은 잊어버리세요."
라임 자제 권고에 얼어붙은 내 표정과 닮았다.
그나마 내가 구현할 수 작사의 기술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이 라임이라 나도 모르게 너무 자주 사용했나 보다. 그것도 '나 라임을 넣었어요'가 너무 티 나게 1단계 라임으로만 써서 의도한 리듬감보다는 촌스러움이 묻어났다. 사실 자연스럽게 꾸미는 게 제일 어렵다. 그동안 들었던 노래 중 이상하게 노래가 입에 착착 붙으며 쉽게 흥얼거린다 싶었던 것들은 어김없이 3단계 고단수 라임임을 깨닫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것은 마치 남자친구가 집 앞이니까 잠깐 나오라고 해서 생얼로 나간 듯 하지만, 알고 보면 아이섀도 같은 티 나는 색조만 안 했지, 눈썹부터 입술까지 꾸민 듯 안 꾸민 듯 한 풀메이크업한 여자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 나의 라임구사력은 색조화장 처음 배운 데다 어두운 데서 화장해서 눈코입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조화롭지 못한, 꾸미고 또 꾸며서 이상한 메이크업 같은 느낌의 작사실력이다.
한참 라임 중독에 빠졌을 때는 쓸데없는 곳까지 라임을 맞추고 난리였다. 글의 성격이 완벽하게 다른, 법정에 제출해야 할 답변서에 앞글자를 맞춰서 '부당, 부담, 불만..." 각운도 맞춰서 "불합리, 유불리...."등을 넣어놓고 혼자 좋아했었다. 지금은 라임 자제 권고에 자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라임에 빠져있다. 영어공부하러 가서, 남들은 모르는 단어에 형광펜 칠할 때 나는 라임에 동그라미를 치고 보물을 발견한 양 기뻐하고 있다. 이 정도면 그냥 라임 자체를 좋아하는 걸 인정해야겠다.
지금 내 상태를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나는 라임을 생활화하는 사람으로서, 작사할 때는 당연히 라임을 더 잔뜩 넣고 싶은 게 기본값이라는 것을. '정-반-합'의 논리를 차용해서 감히 미래를 예측해보자면, 라임을 쓰고 싶은 대로 써보고, 또 자제도 해보는 과정을 거쳐서 언젠가는 중용의 미덕을 깨우쳐 자연스럽게 라임을 적재적소에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은 미래를 꿈꾼다. 하하하)
이미 발매된 가사들의 훌륭한 라임들을 감탄하며 보기만 하는 것보다 입으로 흥얼거리며 내가 직접 만든 덜 다듬어진 라임들을 하나둘 쌓아가다 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라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아직까지는 라임을 오늘 처음 배운 사람같이 어색하지만, 동시에 열정은 충만한 상태로 어디에 운율을 심어볼까 호시탐탐 노려본다. (라임, 라임, 라임! 열정, 열정, 열정! 하하하)
또 다른 구름이 몰려온다. 작사의 본질, 음악화.
덧. 초반에는 이렇게 작사라는 행위를 '글'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작사수업을 들을수록 '멜로디'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제일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음악화'였으니, 선생님의 뼈 때리는 조언에 순살이 되어 작사를 그만둬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위기가 닥쳐왔었다. (물론 매 순간 고민하면서도 아직까지 하고 있지만.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