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쉬가 안 좋은 또 다른 이유

작사의 기초 2 : 음절 체크

by 나다움

내 미천한 영어실력은 작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작사 시 영어를 잘하면 유리한데, 요즘 노래에 영어가사가 많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 더 먼저 데모곡의 음절을 체크할 때 영어를 잘하면 장점이 많다. 작사를 하기 위해 받는 데모곡은 말 그대로 '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곡에 임의로 붙여진 '가이드 가사'가 있는 상태로 받는데, 가사가 보통은 영어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이드 영어 가사를 그대로 번역해서 작사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영어를 잘하면 음절을 체크하는데 편하기 때문이다. 음절을 체크하는 방식은 몇 가지가 있는데 예문으로 'I'm so incredible'이란 가이드 가사가 있다고 가정하고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들리는 대로 적는 것이다. 가장 편한 방식인데, 치명적인 단점이 오류가 생기기 쉽다. 특히 한국식 정직한 영어 즉 자음에 모음을 무조건 넣는 방식에 익숙하다면, 음절을 잘못 파악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위의 문장을 콩글리쉬로 적으면 '아임 쏘 인크레더블'로 8음절이 된다. 하지만 실제 영어의 음절(syllable)은 [aɪm soʊ ɪnˈkredəbl]로 총 6음절이 된다. 굳이 한글로 표시해 보면 [암 쏘 인ㅋ레더블] 정도 되겠다.

두 번째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데, '000'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똑같은 예시로 적어보면, 총 6개의 동그라미(000000)로 표시한다. 여기에 멜로디가 들리는 데로 어절을 묶어줄 수 있는데, I'm so / incredible로 멜로디의 리듬이 나뉜다면, '00/0000'로 최종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역시 단점이 있는데 너무 많아질 경우 리듬 또는 글자수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눈에 잘 안 들어오기도 한다. 000/00000 // 00/000/00000 이런 동그라미의 줄 세움이 A4 용지를 꽉 채우고 있으면 없던 환공포증이 몰려온다. 동그라미로 음절체크를 하다 보면 아무리 띄어쓰기나 '/'로 나눈다고 해도 헷갈릴 때가 많은데 이경우 다른 기호(예- AAA BBB , 111 222)를 섞어서 쓰기도 한다.

세 번째로는 생각나는 단어를 아무거나 쓰는 것이다. 이때도 노래의 리듬을 파악해서 단어를 붙이면 좋은데, 리듬이 2음절과 4음절로 나뉘어 있다면 '작사가 쉬워요(3음절+3음절)' 보다는 '작사 그만둘까(2음절+4음절)'로 적는 게 좋다. 이왕이면 그 곡과 어울리는 단어를 쓰면 더 좋다. ('작사 그만둘까'처럼 내 맘과 어울리는 단어 말고. 하하하)

음절체크를 하다보면 사진 속 호박같은 얼굴이 된다.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점점 안색이 어두워진다.

음절은 틀리지 않고, 정확히 체크하여야 한다. 음절 파악을 잘못한 상태에서 작사를 하게 되면 옷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격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아직도 음절을 체크하며 자신이 없을 때가 있다. 요즘 아이돌 데모곡은 가사가 많고 빠른 템포가 특징인데, 컴퓨터를 할 때 자연스레 나오는 내 거북목처럼 음절을 체크하다 보면 콩글리쉬가 익숙해서 음절체크에 오류를 범한다.

물론 콩글리쉬로 적어도 무난한 경우도 있고, 정말 좋은 가사의 경우에는 이런 작은(?) 문제의 경우에는 수정요청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한낱 작사가 지망생으로, 이런 실수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실제 작사에 참여한 곡에 대한 피드백으로, 작사학원 선생님이 자연스레 나온 나의 콩글리쉬를 지적하실 때 자괴감을 느낀다. 마치 일자 다리 찢기도 안 되는 뻣뻣한 신체의 소유자가 발레리나가 되어 큰 무대에 서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숙련된 작사가들은 이렇게 음절체크를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음악을 들으면서 작사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난 음절체크라는 작사의 초입에서 이렇게 길을 헤매서 이게 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콩글리쉬로 음절체크하다 딱 걸렸다. 애써 괜찮은척 웃는 이모티콘에 자괴감을 감춰본다. 하하하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음절체크가 그나마 들리는 대로 적으면 되기에 상대적 '난이도 하'이지만, 이 음절체크에도 몇 가지 포인트들이 있다. 성시경 님의 '거리에서'가 처음 데모곡 가사가 '똥빠릴라스'여서 다른 가수들이 거절했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이드 가사도 그 곡의 분위기 등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그래서 가이드 곡의 가사를 그대로 살리거나 비슷한 발음으로 바꾸기도 하고, 라임의 힌트를 얻기도 하며, 거센 발음 여부 등 강세 파악을 하기도 하는 등등 작사의 힌트가 많이 숨겨져 있다.


처음엔 말 그대로 데모곡 가이드 가사의 글자 숫자 체크에만 했고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사학원 선생님의 다음 한마디에 제일 쉬웠던 과정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작사에서 데모곡을 선택할 때 가이드 가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그게 필요 없는 거라면 굳이 가이드 가사가 모든 데모곡에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허밍으로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작사에서는 그 가이드 가사가 주는 분위기도 작사에 반영해 주길 원하는 겁니다."


그 이후로 작사를 할 때는 가이드 가사의 발음, 강세, 리듬 등을 고려하며 음절체크를 하다 보니 더 어렵게만 다가온다.(때로는 아는 게 힘이 아니라, 알수록 힘들 때도 있다. 하하하) 마치 처음 영어 배울 때 동사의 과거형엔 'ed'만 붙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많은 불규칙 동사가 빼곡히 적힌 종이를 본 느낌이랄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보통 가이드 곡 가사는 2절은 1절과 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1절 음절체크가 끝나면 2절까지는 2배가 아니라 그보다 짧다는 것 정도가 있겠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면, 데모곡의 음절체크는 '무조건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체크하여야 한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단순히 글자수만 세는 것이 아니라, 데모곡의 가이드 가사를 다각도로 분석하며 실제 작사작업에 녹여야 하는 녹녹지 않은 작업이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고로 여전히 음절체크에서 헤매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비록 작사학원 선생님께는 가장 기초작업조차 못하는 작사가 지망생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지만, 그러면 또 뭐 어떠한가. 음절체크 틀려서 보는 제일 큰 불이익이라곤 내가 한 작사가 채택되지 않는 것인데, 작사 채택을 위해 들인 나의 시간과 노고가 결과론적으로는 헛수고가 되었다는 것이 서글프긴 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작사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영어 가이드 데모곡을 수십 번 들으며 영어 리스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영어 듣기 평가보다는 재밌고,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라는 점에서 난이도는 한층 올라갔다는 점이 또 뿌듯하다.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늘어가는 미채택 된 작사시안 폴더에 고개가 숙여지는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영어공부'라는 음절체크의 또 다른 장점을 찾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넘어간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처럼, 과거의 나의 경험들이 미래에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작사 시 음절체크 오류의 경험이 작사채택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작사에 대한 글로 쓰는 경험으로 연결되고, 또 미래의 어떤 것과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작은 점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고,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다짐을 하며 계속 점을 찍고 있다.

어떤 날은 음절체크만 0.5배속으로 느리게 듣는데도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지금이라도 작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내가 좋아하는 작사의 묘미, 바로 '라임(Rhyme)'을 여기저기 넣을 때는 신이 나서 작사에 몰입한다. 그런데 고기에도 등급이 있듯이, 라임도 다 같은 라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내적 흥겨움을 잠시 내려놓고 차분해진다.

작사에 대한 자신감이 시간에 비례하여 옅어질 때쯤, 라임이란 새로운 재미가 떠오른다.


덧. 모든 가이드 곡이 영어는 아니다. 일본어 느낌(실제 일본어가 아닌 경우가 많다)의 가사, 외계어 등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이드 가사가 영어이다 보니 영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가끔 가이드곡도 친절하게 영어 가사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음절체크가 1.5배 쉽다. 이로써 분명해진 것, 영어실력이 탄탄할수록 영어로 된 가이드곡 음절 따기가 쉽다는 것. 따라서 난 지금 영어를 잘하기 위한 목적의식 부여를 위해 작사를 하는 것이라고도 치환할 수 있다.(좋았어, 자연스러웠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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