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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킨디센터 Feb 25. 2020

데구루루 파쿠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나요?

낯선 여행지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꼭 가보고 싶던 베이커리의 디저트 첫입, 사랑하는 존재와의 다정한 포옹, 지친 하루 끝에 듣는 내 아티스트의 노래. 우리는 또 어떤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낄까요.


'살아 숨 쉬고 있구나.'


최근 파쿠르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생생하게, 그리고 낯설게 느끼는 감각 중 하나입니다. 특히 체력 훈련(conditioning) 시간에는 평소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뺨이 터질 듯한 열기를 느끼고는 해요. 잠시 눈을 감으면 높은 심박 수에 맞춰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고, 말 그대로 심장이 제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갈 것만 같은 착각과 함께 엄청난 희열에 휩싸입니다. (경고: 물론 이렇게 기분 좋은 뇌의 장난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다음날이면 근육통에 괴로워하고, 낙법을 처음 배우던 날에는 반복적으로 옥상 바닥을 구르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자아를 성찰하기도 했답니다.) 

엔돌핀의 효과가 굉장했다!

크리킨디센터에서 파쿠르를 바라보는 관점과 코치 제이의 워크숍을 직접 접하기 전까지는 저 역시 파쿠르가 건물을 날아다니고 부상 위험이 높은 익스트림 스포츠인 줄만 알았습니다. 새로운 종목에 대한 호기심이 들어도 애초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 거죠. 기존의 인식과 다르게 실제 파쿠르는 각자의 수준과 몸에 맞게 점진적으로, 그리고 다치지 않게 통제 가능한 위험만을 책임지는 태도가 중요했습니다.


파쿠르는 스펙트럼이 넓은 움직임입니다. 초보자는 이런 거 안 합니다. 못합니다. (단호)

파쿠르의 시작이 군사 훈련과 연관이 깊은 건 사실이지만 커뮤니티와 시대 변화에 따라 이타주의(altruism)에 기반을 둔 움직임으로 그 흐름이 바뀌어 왔습니다. 파쿠르 트레이서들은 신체적 강인함만이 아닌 정신적 수련과 협력, 연대를 통한 상생을 핵심 가치로 품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무찌르고 이기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스스로와 서로를 살리며 사회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잠재력을 가지게 된 것이죠. 실제로 팔레스타인, 이라크, 예멘의 일부 도시에서는 폭격 피해 이후에 청년들이 파쿠르를 익히며 도시를 재건할 상상력과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합니다. 같은 몸, 같은 움직임이라도 무엇을 향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사뭇 달라지겠지요.


팔레스타인과 예멘에서의 파쿠르


영국의 어린이들은 2017년부터 국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체육시간에 파쿠르를 접한다고 해요. 과거에 저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고, 체육대회를 손꼽아 기다리던 학창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학교를 떠나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을 움직이고 신체를 돌보는 일에는 소홀해질 때가 많습니다. 틈틈이 좋아하는 수영을 하지만 운동은 일과 쉼에 비해 우선순위가 쉽게 밀리고는 합니다. 파쿠르를 경험하면서 운동(exercise)이 아닌 움직임(movement)에 관한 질문을 나누며 주변 환경을 좀 더 유심히 관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을,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통해 훌쩍 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크리킨디와 함께하는 '모두의 힘센발'


파쿠르에는 정해진 경로도, 움직임의 정답도 없습니다. 경쟁이나 평가 없이 고유한 길을 찾고 서로의 길을 지지하며 함께 나아갑니다. 그렇게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체, 사회, 세상을 연결하는 언어로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일상의 변화는 아주 작은 점프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움직임이라도 좋아요. 오늘은 평소 밟지 않던 보도블록을 따라 걷거나 낮은 턱에서 균형을 잡으며 마음의 벽을 넘어보면 어떨까요?



작성자

파이 pi (김주원)

물과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 20년차 수영러, 그리고 한달차 초보 파쿠르 트레이서(traceur). 크리킨디센터에서 새롭게 조성 중인 4차산업혁명 체험공간 ‘엔진룸’ 운영을 담당하며 인간과 지구, 모두를 위한 기술 교육을 고민합니다.
[크리킨디센터X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 ADAPT Level 1 자격 준비반]
크리킨디센터는 2018년도에 개관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파쿠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파쿠르를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고 싶은 분들을 위해 최근에는 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와 함께 ADAPT Level 1 자격 준비반을 시작했습니다. 자격 준비반에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합니다.

ADAPT 자격증('Art du Déplacement And Parkour Teaching' Qualifications)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파쿠르를 접할 수 있도록 코칭의 표준을 정하여 국제공인 파쿠르 코치를 양성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파쿠르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실천 가능한 움직임이지만 준비 없이 무모하게 동작을 모방하지 않도록 경험 많은 코치와 동료 트레이서들이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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