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과 경험담 사이

무지한 자의 인도 입국기

by 김역마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여행에 필요한 책을 찾고 있었다. 가장 확실한 정보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출간했다는 노란 가이드북을 지나 내가 멈춘 책에는 한 코끼리가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가진 채 서 있는 표지가 있었다.


"역시, 여행 준비는 이거지."


그 책은 인도의 문화에 관한 책으로 힌두교의 유명한 코끼리 신인 가네샤가 그려져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내 첫 해외여행은 인도가 되었다. 이상하게 몇십 년째 배낭여행의 성지라는 말이 붙어 있던 곳. 다신교이자 동물의 형상을 가진 신들이 여전히 그들의 신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 요가의 성지. 불교의 시작 등 붙이고자 한다면 한 없이 포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보통의 이미지는 단순했다.


"형, 미쳤어??? 객사가 꿈이야??? 좋은 나라 두고 거기를 왜 가!"


더럽고 위험한 나라. 그 많은 단어를 두고 가장 쉽게 붙은 두 단어. 해외여행에 있어서 처음이라는 단어와 인도라는 단어의 결합은 주변 인물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야, 사람 사는 곳인데 똑같겠지 뭐."


그렇게 시간은 흘러 출국날이 다가왔다. 머릿속에는 힌두교 신들의 형상과 그들의 상징이 뚜렷하지만 여행 정보는 없는 채 떠나게 되었다.


시작은 좋았다. 첫 해외여행에 오버부킹이라니. 혼자라는 이유와 면세품 구매가 없다는 이유로 선택된 나는 여권의 첫 도장부터 void가 찍혔고, 공항 호텔과 31만 원이라는 시간에 대한 보상 그리고 다음날 인도행 직행 티켓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때의 나는 무지했다. 시작부터 잘 풀리니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시차와 직항 시 걸리는 시간을 몰랐고, 뉴델리 공항에 밤 9시가 되어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원래의 항공권이 경유 7시간 대기를 하더라도 아침에 도착하기 위한 것이 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내리자마자 고장 난 내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4의 슬립 버튼은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


"헤이 친구! 어디가 빠하르 간즈 가는 거 아니야??"


패기 있게 나간 공항 밖은 매연으로 인해 따갑다는 걸 인식하기 전부터 많은 택시 운전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어차피 네가 갈 곳은 뻔하지 않냐며 먼저 흥정을 시작해왔다.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 간즈. 거기까지 단돈 100루피라는 말에 솔깃했고 그들의 차에 다가갔다. 단지 그 택시가 그냥 하얀 차일뿐더러 왜인지 두 사람이 타고 있다는 점이 이상했다. 가방을 트렁크에 넣으라는 그들에게 괜찮다며 뒷좌석에 탔다.


"어디서 왔어??"

"나? 한국에서."


긴장 속 하얀 차 안.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빠하르 간즈까지는 약 25km이고, km당 100루피야." 순식간에 25배로 뛰어버린 가격. 장난치냐며 내리겠다고 말하자 문을 잠그는 그들. 그러나 마침 차는 공항 도로에서 빠져나가려는 곳이었는지 도로를 걷다시피 가고 있었고 잠겨진 문을 열고 내린 채 공항을 향해 뛰어갔다. 다행히 차는 내 시야에서 금방 멀어졌고, 나는 때아닌 도로 위에 멈추게 되었다. 다시 한번 델리의 따가운 매연이 느껴졌다.


멍하니 공항까지 걸어가던 중 누가 봐도 택시인 초록색 차가 멈춰 섰다. 다가가 말했다. 한 번 사기를 당했다. 넌 진짜냐는 말에 그는 킬로당 20루피라고 말했고 다시 한번 배낭을 메고 뒷좌석에 타게 되었다.


천천히 달리던 차는 도로를 벗어나 한 구멍가게 앞에서 멈춰 섰고 운전사는 나에게 물통 하나를 건넸다.


"마셔. 오랜 비행에 지쳤잖아. 이건 서비스야."


멍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그가 강조했다.


"그거 밀봉이야 확인해봐."


나에게 하필 인도냐며 미쳤냐고 했던 동생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알아본 정보를 나에게 말해줬었다. 건네준 물을 마시면 그대로 정신을 잃으니 꼭 밀봉인걸 확인하고 애초에 마시지 말라던 물괴담. 웃으며 그런 게 어딨냐고 말했는데 그런 게 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나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마시기 싫다고 말했다. 그러자 운전사는 그럼 내가 안전한 물이란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벌컥벌컥, 퉤. 벌컥벌컥, 퉤. 벌컥벌컥, 퉤."


안전하다며 자신 있게 물을 마시다 문을 열고 뱉기를 반복한 그는 나에게 물을 다시 건넨 후 차를 출발시켰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괴담이 경험담이 된 아찔한 순간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창문을 다 닫은 채 구석에서 꺼낸 담배를 펴도 되냐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짓을 하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뉴델리 기차역 앞에 도착하게 되었고 공항 주차비 80루피를 더 추가하고 나서야 끝내게 되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대충 들어간 한 낡은 숙소. 소리치는 한 서양 여행자를 옆에 두고 방값을 지불한 채 올라와 그녀를 기다렸다. 무슨 일이냐는 내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난 내일 인도를 떠나거든? 한마디만 해줄게. 인도인은 아무도 믿지 마."





다음날 아침, 제대로 된 숙소로 옮기려고 체크 아웃을 하는데 직원이 말했다. "돈 내야지?" 정확히 어제 내가 준 돈을 받은 그 직원이라는 점이 마치 코미디 쇼를 보는 느낌이었다. 단지 내가 그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결국 어제의 그녀처럼 나도 한껏 소리를 지르고 싸우기 시작하자 그는 나를 그냥 보내주었다.


이른 아침 뿌연 안갯속의 빠하르 간즈. 나는 가장 먼저 이곳에 있다는 한식당으로 향했고, 한국에서 가장 관심이 없던 책을 찾게 되었다. 그 책은 가장 확실한 정보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출간했다는 노란 가이드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