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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20. 2021

부모의 금지는 자식의 거짓말을 부른다

공갈 젖꼭지와 손가락 빨기를 허하라

미나는 태어나서부터 공갈 젖꼭지를 줄기차게 빨았다. 갓 세상에 태어나 공갈 젖꼭지 같은 것이 있는줄 알리 만무했던 아기 미나는 뭔가 허전하고 심심하던 차에 할 일도 없고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울려고 '앵'! 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웬 횡재! 입에 뭔가 쫄깃한 것이 들어왔고 그것을 빨아보니 허전하고 심심한 마음이 가시어서 그 후로 그런 기분이 들때마다 '앵'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2년 반동안이나 그 쫄깃한 것을 입에 넣고 빨았다.


미나의 엄마는 갓 태어난 자식의 '앵' 소리가 부담스러웠다. 애가 태어나고 나서 귀가 100배는 밝아졌는지 옆방에서 들리는 자식의 사부작거리는 소리에도 잠을 깰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더 예민해져서 자식이 '앵'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득달같이 달려가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물렸다. 그러고 보면 자식이 공갈 젖꼭지에 길들여진 것도 다 엄마 탓이다. 


나는 미나가 공갈 젖꼭지를 뗄때까지 상표별로 색깔별로 아마 스무 개는 사지 않았을까 싶다. 


미나가 네 살이 되고 어린이 집에서도 제법 큰 아이 축에 들 무렵, 나는 저렇게 장성한 것 입에 물려있는 공갈 젖꼭지가 어느덧 부담스럽고 불안하고 챙피하게 느껴졌다. 어린이 집에서 네 살이나 돼서까지 공갈 젖꼭지를 물고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나는 미나에게 '이제 너는 클대로 컸으니 이제 심심하더라도 공갈 젖꼭지를 빠는 일은 삼가하도록 하여라.' 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집에 있는 모든 공갈 젖꼭지를 쓰레기 통에 넣어서 컨테이너에 버렸다. 미나에게 나의 작심을 일러두려고 쓰레기 봉지를 컨테이너에 버리는 것까지 보여줄 정도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까... 애가 커서 그런지 생각외로 공갈 젖꼭지 없이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였다.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미나는 공갈 젖꼭지를 대용할 대용품을 스스로 찾았다. 엄지 손가락. 사실 스스로 찾은 것은 아니고 모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나의 어린이 집에 루이제라는 빵집 딸이 있었다. 얘는 미나보다 한 살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지 손가락을 줄창 빨고 다녔다. 미나는 공갈 젖꼭지가 없이 맨입으로 종일 어린이 집에서 지내다 어느날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빨고 있는 루이제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새삼 놀라웠을 것이다. 어라, 인간몸에 공갈 젖꼭지 대용품이 붙어있었네? 하며 슬쩍 자기의 엄지손가락을 빨아 보았을 것이다. 


공갈 젖꼭지와 다름없는 쫄깃함, 따로 보온하지 않았건만 입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적절한 온도, 거기에다 짭짤함까지.


이런 엄청난 발견이 있나! 미나가 엄지 손가락을 빨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나는 이리하여 네 살부터 루이제를 따라 엄지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앞니가 닿는 엄지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배긴 것을 보고 나는 미나에게 손가락을 그만 빠는 것이 어떻겠니 하고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 무렵 한국에서 유행이던 칭찬 스티커를 미나에게 주기도 하였다. 하루종일 엄지 손가락을 안빤 날은 칭찬 스티커 하나, 그것이 열 개 모이면 선물 하나. 미나는 칭찬 스티커를 모으는 재미에 더이상 엄지 손가락을 빨지 않았다, 칭찬 스티커가 여러 개 모여 선물도 받았다. 신기하게도 애가 정말이지 말끔하게 손가락 빨기를 멈췄다.


어느날 밤, 미나가 한창 잠이 들었을 무렵, 한밤중에 빨래를 갖다 넣느라 미나 방에 들어갔더니 미나가 엄지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재우면서 동화책을 읽어줄때까지만 해도, 불을 끄고 나올때만 해도 손가락을 빨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게 입에 들어가있네? 내가 엄지 손가락을 빼려고 하자 살짝 잠에서 깬 미나가 다시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나는 다섯 살 된 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거짓말 쟁이가 있나!


칭찬 스티커를 받기 위해, 엄마한테 야단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애가 그동안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방에 붙여놓은 칭찬 스티커 북을 다 떼내었다. 다음날 미나에게 니가 그동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므로 칭찬 스티커는 다 압수하겠다고 얘기했더니 아이가 서럽게 울었다.


괜한 일을 벌여서 애를 울렸나 싶기도 하고. 그 일이 있은 후에 미나가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 거짓말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손가락 빨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금지한다면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입장바꿔 생각해서, 나는 나 나름대로 고달픈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스트레스가 없어보이는 삶이지만 나는 나름대로는 스트레스를 갸날픈 어깨위에 잔뜩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게 있어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는 퇴근후 담배를 피우며 당구를 치는 일이다. 부모가 내가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로,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내 유일한 탈출구인 이것마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고분고분하게 부모의 말을 받들어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집에 들어와 일찍 잠에 들까, 아니면 부모에게 영어학원엘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당구장에 갈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의 선택은 후자이다.


다섯 살 미나도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긴 스트레스가 있고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자유가 있다. 미나가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빨므로서 다른 이의 손가락을 아프게 한다면이야 그것을 금지할 이유가 있겠지만 굳은 살이 배기도록 지 스스로 아픔을 감당해가며 지 손가락을 빤다는 데야. 이리하여 나는 칭찬 스티커를 압수한 후 그것을 박박 찢어버렸다. 칭찬 스티커 따위로 자식의 행동을 컨트롤 하려 들었다니... 내 행동이 가소롭까지 했다.


그 이후로 손가락을 맘껏 빨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하여 자유인이 된 미나는 초등학교에 입할할 때까지도 간간히 손가락을 빨았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손가락 빠는 행위가 챙피한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화장실에 가서 몰래몰래 빨다가 2학년이 돼서 손가락 빨기를 말짱 멈췄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허전하든 심심하든 불안하든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수학시간에 다리를 벌벌 떠는 아이에게 다리를 못떨게 하면 손가락으로 볼펜을 돌릴 것이고, 볼펜을 못돌리게 하면 머리카락을 꼬을 것이다. 이 모든 행동을 금지하면 아이의 위장에서는 위산이 분출되어 위벽을 헐게 할 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할 바엔 원인이 불러온 행동을 하게 함으로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풀게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그러니 자식때문에 노심초사 안달하는 시간에 맥주라도 느긋이 한 잔 마시고 넷플릭스 영화라도 보는게 부모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지금 미나의 손가락을 보면 여섯 살 무렵에 양쪽 엄지손가락에 배겨 있었던 굳은 살이 다 없어졌다. 손가락을 빨면 앞니가 뻐드렁 니가 되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서 애 앞니가 잘 나오나 살펴봤는데 뻐드렁 니 안났다. 키울땐 저거 커서 뭐가 될까 싶었는데도 어느덧 열두 살로 잘 자라있다. 애들은 천성대로 크니 싫어하는 것 시키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내버려 두면 다 잘 자란다. 


미나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손가락을 빨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미나보다 앞서 가진 아기가 임신말기에 사산되는 바람에 내 불안한 마음이 임신기간동안 미나에게까지 전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손가락을 빨게했던 그 이유가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미나의 마음속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나 죄책감은 별로 없다. 그 사람이 어리건, 늙었건, 여자건, 남자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모든 사람에겐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름의 불안함이 있다. 그건 남에게 떠넘길 수도 없다. 그 감정이 싫어도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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