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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Aug 24. 2022

독일 농가에서 3박4일 여름휴가

올해는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여름 휴가 계획을 못세우고 있다가 미나가 가자는 대로 북해 Wilhelmshaven으로 3박 4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 생전 보도 듣도 못하고 여행지로서도 그다지 매력이 없는 곳을 왜 골랐냐면 미나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 친구이자 코스플레이 친구. 어쨌든 그것이 작은 인연이 되어 우리 모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500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았다.


소는 농가로 정했다. 숙소마저 별 볼일 없는 심심한 곳에 정했다면 나는 이번 여행을 후회할 뻔 했다. 가보니 도시는 보잘 것 없었고 바닷가에는 물이 다 빠지고 뻘만 있었으며 그럴듯한 맛집도 없었다. 이런 심심한 곳에 그나마 숙소라도 농가로 정했으니 낮에는 가축멍, 밤에는 별멍이라도 때릴 수 있어 좋았다.

농가가 제공한 조식. 두당 9유로(1만2천원) 농가에서 기르는 닭이 낳은 계란, 농가에서 직접 짠 우유와 수제 버터, 수제 호박잼, 딸기잼, 갈아만든 오렌지 쥬스 등.


어라, 조식중인데 염소가 지나가네? 지나가다말고 소변을 보네?
저녁답엔  송아지들이 급식을 먹기위해 문앞에서 기다린다. 시계도 없는데 거의 정확하게 오후 6시면 문앞에 모여 축사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발걸음이 분주하다.급식이 얼마나 맛있길래.
닭들이 참으로 통통하다.이 닭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내가 지나가도 비켜서질 않는다. 빵 부스러기를 던져줘도 싸우질 않는다. 좋은 농가에서 자란 닭의 본보기
작은 연못엔 금붕어가 유유히 헤엄친다.
이 개는 우리가 도착하던 날엔 잡아 먹을듯이 짖더니 우리의 냄새를 맡고난 이후부턴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나를 알아봐주었다. 눈이 참 밝아.


농가네덜란드 인 내외가 운영하는 곳으로 소, 말, 염소, 닭들을 키우며 빈 방을 휴양객들에게 세를 놓고 있는데  바닷가에서 꽤 떨어져 있음에도 평점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농가에서 직접 만든 요구르트, 치즈, 잼으로 제공하는 아침식사에 대한 평이 좋았고 먹어보니 신선한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농가 건물안에 있는 더블룸을 예약했지만 야외에 있는 카라반을 보고는 반해서  거기서 머물기로 했다. 이 카라반은 2차대전 당시에 폴란드 의무병이 쓰던 카라반인데 이 농가의 여주인이 구입해서 들여 놓았단다. 군용 카라반답게 쇳덩어리가 아주 무겁고 단단해서 캠핑용 카라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두껍고 무거운 철제문은 열고 닫는데도 용을 써야한다. 엿장수에게 팔아도 고철값을 충분히 받을듯.



카라반 안에는 작은 주방이 있어 요리를 하고 설겆이를 할 수 있으며 작은 냉장고도 있다.1박에 75유로, 10만원선.
이 작은 카라반에서 수술을 했던지 천장에는 저런 수술용 램프가 달려있었다. 어느 폴란드 병사의 팔다리가 잘려나갔던 곳에서 잠을 자다니...
카라반 안에는 이런 이름모를 스위치들이 있었는데 혹시 뭔가가 발사될까봐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의 가림목장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연로하셔서 일을 못하시지만 우리 아버지의 가림목장과 녹산 사슴농장도 이런 모습이었다. 들판에는 옥수수와 호박이 자라고 풀밭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풀어놓고 키우는 닭들이 낳은 계란나는 보물찾기하듯 찾아 다녔다. 눈이 오던 날이면 우유차가 못들어올까봐 이른 아침부터 눈치우기에 바빴다. 때때로 버스를 놓치면 우유 트럭을 타고 등교하기도했고. 


이 농가에서 지내면서 친숙한 소똥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옛날 생각이 났다. 게다가 오랜만에 모기소리도 들어보고 모기장도 치고 자니 꼭  어린시절 모기장 치고 자던 여름밤이 생각나서 좋았다. 모깃불을 좀 피웠더라면, 밤하늘 높이 올라가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숙소를 떠나던 날, 주인양반에게 남들 다 휴가가고 놀때 이렇게 일만 해서 어쩌냐고 그랬더니 우리가 거의 마지막 손님이란다. 휴가철이 끝나가니 우리를 보내고 캠핑카를 타고 한달 넘게 유럽 여행을 다닐 계획이란다. (네덜란드 인들이란!)그러고 보니 축사옆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던 신식 캠핑카가 생각났다. 캠핑을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농부가 가축을 두고 어딜 그렇게 오래 떠나 있는단 말인가?


우리 아버지는 외출을 했다가도 가축들 끼때 맞춰서 늘 돌아오시곤 했다. 가축을 키우다 보니 부부가 함께 1박 여행을 떠나는 건 고사하고 당일치기 여행도 어려워 하셨다. 거기에 비하면 이 농부는 팔자가 편하다. 딸이 와서 농장을 봐준단다. 가축 수도 많지 않고 손가는 일도 많지 않아 어려울 것이 없단다.




뻘밭을 걷고있는 미나. 우리나라 뻘에는 낙지도 있고 조개도 있던데 여기 뻘에는 그런 것들이 없어 재미가 덜하다. 설사 있다해도 독일정부에서 분명 조개캐기를 금지했겠지만.

그런데 이 많은 물들은 어딜가서 12시간이나 있다가 돌아오는 걸까? 한 두 양동이도 아니고 우리 동네 만큼이나 되는 이 많은 물들이... 이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웬 고생일까. 날마다 본의 아니게 하루에 한 번씩 고향땅을 떠나 쓸려갔다 와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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