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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Oct 28. 2021

이 모자는 방탄 소년단 아미의 모자일까요?

아니면 그냥 아미의 모자일까요?


터키가 어떤 나라냐. 최근들어 터키 리라화가 폭락하여 전 국민들이 살인적 물가로 고통에 신음하는 나라가 아니냔 말이다. 미나가 3살때 우리가 찾았던 터키, 당시엔 1유로에 2,5 리라였다. 맥주값은 심지어 독일보다 더 비싸 맥주를 위스키 마시듯 조금씩 아껴서 마셨던 기억이 있다. 미나가 9살때 터키를 찾았을 땐 1유로에 6,5리라. 당시 터키화가 급락하여 사람들이 명품을 산다 부동산을 산다고 난리를 쳤던 걸로 기억난다. 그 시기를 지나 미나가 12살인 현재 리라화는 1유로에 11터키리라까지 급락했다. 터키 여행 초기 9월만 해도 1유로에 10리라 정도였는데 10월 말 현재 11리라까지 내려갔다. 환전소가 없는 오지에서도 치솟는 경유값만 봐도 터키화가 계속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터키 리라화 폭락은 터키 국민들의 몫일 뿐,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들에겐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물가가 높은 유럽에서라면 꿈도 못꿀 장기여행자들이 터키에선 수두룩 하다. 1년에서 심지어 3년동안 여행다니는 청년들도 많다.(유럽에서 워킹 홀이데이 비자로 돈을 벌어 터키로 들어옴. 돈 떨어지면 다시 유럽으로 들어가 여행경비를 벌어 터키로 들어옴.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요즘 청년들을 보며 느꼈음) 나 역시 살인적으로 저렴한 물가 탓에 배낭 여행자 주제에 지중해에 위치한, 수영장이 딸린 쓰리 스타 호텔을 단돈 1만5천 원을 지불하고 입실한 호사를 누린 적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래 사진 참고.




터키 경제가 이런 수준으로 파탄이 나고 있음에도 터키 국민들은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다닌다. 지하철에 앉아서 승객들의 면면을 보자면, 명품 변별력이 떨어지는 나조차도 저건 명품! 하고 알 수 있는 구찌, 루비똥, 샤넬 정도에서 소소하게나마 리바이스나 아디다스로 치장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심지어 백화점이라고는 반경 100 킬로미터 내에 없는 시리아 국경 근처에서 잭 울프스킨 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중학생을 본 적도 있을 정도다.


경제가 바닥인데도 터키 국민들이 국제적인 브랜드로 치장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테이션 산업의 발달 덕택이다. 이미테이션의 면면을 보자면 딱 봐도 이미테이션임이 드러나는 조잡것들도 있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져 진짜 명품같은 상품들도 대단히 많다. 터키의 텍스틸 산업은 눈부시게 발달하여 이미테이션을 진품 수준으로 만들어 내고 있을 정도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저렴하게 구입한 아래의 3가지 상품이 혹시나 이미테이션이 아닐지 강력히 의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가격은 엄청 저렴하지만 디자인이나 기능면에서 출중한, 내가 터키에서 구입한 3종 패션세트를 소개한다.



모자 5천 원, 티셔츠 1천 2백원, 가방 1만 2천원.


롤링스톤즈의 이 혓바닥 티셔츠도 혓바닥에 꽃을 수놓은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티셔츠인데 아무리 세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천 원에 팔릴 상품이 아니다. 이 티셔츠는 분명 어떤 브랜드에서 롤링스톤즈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만든 티셔츠의 이미테이션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가방 역시 아무 생각없이 주머니도 많고 크기도 적당해서 실용적일듯 싶어 샀는데 로고인 sl이 씌어진 것으로 봐서(나중에 떼어버렸음) 어떤 명품 브랜드의 이미테이션일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아미 모자다. 모자가 특히나 의심스럽다. 여행중 한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만난 스페인 여자가 이 모자를 쓰고 있는 내게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너 혹시 BTS팬이니?"


당시에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방탄 소년단의 팬인지 묻는 줄로만 알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ARMY모자(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방탄 소년단의 팬클럽 이름은 소리나는대로 아미, 즉 AMY 혹은 AMI인줄 알았다)를 쓰고 있어서 그런 질문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방탄 소년단의 굿즈를 이미테이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질문을 듣고 나서 나는 혹시나 또 같은 질문을 들을 것에 대비하여  방탄 소년단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귀를 막고 살지 않는 한 한 번 쯤은 들었을 법한 다이너마이트, 퍼미션 투 댄스 밖에 모르던 나는 우연히 아미 모자를 사고난 후 방탄의 여러 곡들을 섭렵하게 된다. 그렇게 듣고 다니다가 여행 마지막 즈음에는 방탄 소년단의 팬이 되어 버렸다. 방탄 소년단의 2018년에 발표한 곡 Mic Drop은 너무 좋아서 아마 천 번 이상 듣지 않았을까 싶다.(디지털의 은혜를 입고!)


어쨌든 아직도 나는 이 모자의 ARMY가 방탄 소년단 팬클럽의 ARMY인지 아니면 그냥 ARMY인지 궁금하다. 누구든 이 모자가 실제 방탄 소년단과 관련이 있는지 판별해 주실 분이 계시면 증거 자료를 제출해 주시기 바란다.


그러고 보니 방탄 소년단이 제대로 유명해졌단 생각이 든다. ARMY로고가 박힌 모자 하나를 사고도 이게 방탄 소년단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PS.

나는 5주간 터키 여행을 마치고 어제 돌아왔다. 터키는 코로나 위험지역으로 선포되어 출입국 관련절차가 약간 까다로웠으나 무사히 귀국하였다. 동남 아나톨리아 지역( 시리아, 이란, 이라크 국경 근처) 주로 돌아다녔는데 노느라 바빠 관련 여행기를 하나도 올리지 못했다. 시간나는대로 친절한 쿠르드 인,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한 글을 올릴 것이다.


그나저나 15유로나 들여 터키쉬 딜라이트 1kg를 사왔는데 아무도 안먹는다. 너무 달아서 두통이 올 지경이라고 방만구는 손절했다. 156 리라면 지중해의 수영장이 딸린 쓰리스타 호텔에서 조식포함 1박 할 수 있는 돈이고, 롤링 스톤즈 혓바닥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 15개를 살 수 있는 돈이며, 방탄 소년단의 아미인지 그냥 아미인지 모를 로고가 박한 4유로짜리 모자를 3개를 사고도 남는 돈인데. 참 아깝다. 저 많은 단 걸 누가 어느 세월에 다 먹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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