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휴가중 제일 재미난 일, 개미먹이 장만하기

다른말로 파리잡기

by 오순이

연중 내가 가장 공들이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금같은 2주간의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일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중순에 휴가를 가지만 나는 이미 2월부터 휴가지를 검색한다.


몇년 전부터, 그러니까 내 피부에 와닿기로는 코로나 직전부터 유럽에서 여름마다 어디선가 불이 나거나 이상기후로 인하여 40도가 넘어가는 탓에 스페인과 이태리 남부, 그리스, 터키 등은 더이상 못갈 곳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독일, 프랑스, 이태리 북부, 크로아티아 북부 등이 되겠다. 휴가라고하면 아무래도 외국말이 들리는 곳에서 보내야하는 것이 내 상식이니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한국은 여기서 제외한다. 작년에 프랑스와 이태리를 휘 돌아왔으니 올해는 크로아티아를 가기로 했다.


우리는 휴가때 호텔에서 묵지 않는다. 올 인클루시브 호텔은 그 간편성때문에 미나가 아기였을때부터 유치원다닐때까지 갔었는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더이상 가지않는다. 거기서 1주일이상 휴가를 보냈다가는 돼지가 된다. 특히 나처럼 본전생각을 지우지 못해 배가 고프지 않아도 허겁지겁 먹어대는 이에게는. 게다가 호텔방은 너무 작아서 답답하 풀장은 시끄럽다.


그리하여 애가 크고부터는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지 않고 바닷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더라도 한적하고 조용한, 정원이 있는 시골집을 선호한다.


올 여름에는 이스트리아 반도 동부해안 근처의 작은 마을, 슈퍼마켓도 없고 미용실도 없고 식당도 없는 깡시골의 2층집을 빌렸다. 오전에는 포도나무 덩쿨이 있는 테라스에 누워 책을 읽었다. 이 집은 깡시골 마을에서도 제일 가장자리에 있어 오가는 사람이라곤 없어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기엔 더할나위없이 좋다. 눕는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보면 천천히 화면이 바뀌는 넷플릭스 영화같다.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 간간히 나타나는 소리새 두 마리, 그리고 팔랑거리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나비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포도 잎사귀.


아, 평화롭다.


나는 사진찍을때 내 존재를 증명하기위해 유니크하게 생긴 내 발가락을 첨부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사진을 본 내 친구 왈, 니 발가락으로 욕하는 중이제? 내 발가락에 그런 기능이?

그런데,


이 아름다운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파리떼들. 파리떼 너덧 마리가 잠시도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나는 파리채를 들고나와 파리를 잡기 시작했다. 네 마리를 다 잡고나면 어느샌가 또 파리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심심한 이 시골동네에 산해진미를 잔뜩먹고 맛있는 몸냄새를 풍기며 누워있는 인간의 몸뚱이가 궁금한 모양이다. 먹어보진 못하더라도 앉아라도 보자 싶은 건지 죽음을 무릅쓰고 자꾸만 내 몸에 들러 붙었다.


이런 각다귀들!


5개월 공들여 찾아낸 아름다운 집, 여기 오려고 천킬로미터나 운전해와 겨우 눕는 의자에 누웠는데! 내 비싼 휴가를 방해하는 이 죽어마땅한 각다귀들!


나는 책읽기를 멈추었다. 적의에 타오르는 빨간 눈알을 하고는 파리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여덟마리, 아홉마리 파리의 검은 시체가 쌓여갔다. 음하하하! 동정은 없다. 나를 괴롭힌 죄 몸이 떡이되도록 처 맞아도 불쌍하지 않구나. 그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파리채를 휘두를 무렵갈 파리인줄 알고 하마트면 때려잡을 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개미였다.


개미구나... 그렇지, 너희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으니 가없지. 그냥 지나가려무나.


그러다 우연히 개미들이 파리시체를 들쳐업고 벽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의 눈은 파리에서 개미로 옮겨갔다. 살펴보니 나의 테라스에는 너댓 마리의 개미들이 하루종일 정찰을 돌고 있었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도 늘 한결같이, 혈액이 우리 몸을 한결같이 24시간 돌듯 개미도 실망하거나 지치지 않고 계속 정찰을 돌았다. 30도가 넘는 데워진 벽돌바닥위를 발이 타도록. 종일 걸어다녀봤자 썩은 메뚜기 다리 하나 찾을성 싶지않은 허무한 정찰이었다. 인간세상이나 곤충세상이나 목구멍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세상일은 노력보다 운이다. 호재는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운으로 얻는다. 개미세상에서 한 큐에 파리 여덟마리를 얻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먹이를 얻겠다고 살아있는 파리와 처절히 싸우는 일 없이, 썩은 파리도 아니고 방금 살육된 싱싱한 파리를... 이 개미왕국은 오늘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앞으로 나로 인하여 너희들은 대대손손 배불리 먹을 양식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는 눈이 없어 바로앞에 죽은 파리를 두고도 못보고 지나갔다. 그래서 이들이 파리를 찾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코앞에 던져줘도 화들짝 놀라 가던 방향을 바꾸었다. 할 수 없이 시간이 지나더라도 스스로 찾아가길 기다리는수 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개미가 워낙 부지런한 탓에 언제 찾아도 다 찾아내서 다 들고간다는 것이다. 드문드문 누워있는 파리는 한 시간 지나서 나가보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문제는 파리채를 너무 쎄게 휘둘러 파리가 떡이되어 바닥에 들러붙어있는 경우다. 이럴때면 개미는 한참동안 이것을 떼어내기위해 씨름을 한다. 그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나는 떡이된 파리를 바닥에서 떼어내어 말끔히 장만해둔다.


이렇게 지척거리에 파리가 있어도 이것을 찾아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먹이를 찾아내면 소스라치게 좋아하면서 먹이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운반하기좋게 물고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개미는 먹이를 찾으면 꼭 다니는 길로만 먹이를 운반한다. 바닥에서 파리를 물고 벽을 타고 이동해 테라스 벽을 돌아 빗물받이있는 곳에서 사라진다. 그 어드메 개미들의 왕국이 있을 것



파리잡기와 개미에게 은총 베풀기는 하늘쳐다보기와 더불어 내가 이 집에서 지내는내내 오전에 하는 소소한 일과가 되었다. 그러면서 테라스를 지나가는 여러 벌레들을 구경하게되었다. 물론 파리를 제외하고 나는 이것들을 죽인 적은 없다. 그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데 내가 그들을 죽일 이유는 없다.

지네인가 아닌가
딱정벌레인가 아닌가. 혹시 장수하늘소? 아니겠지.
여치인가 메뚜기인가
쇠똥구리인가 아닌가.
쥐며느리. 쥐는 어쩌다 이렇게 작은 며느리를 두었을까. 그 몸이 워낙 하잘것 없어 쥐시어미가 대를 이으라는 소리도 못하겠네.


아침마다 반짝이는 청록색 쇠똥구리의 외향에 날개를 단 놈도 나타났다 사라진다. 워낙 거대한 몸집에 날개짓 소리가 커서 나는 녀석이 나타나면 잠시 안에 들어갔다 나온다. 이런 거룩한 외향을 가진 놈에게 파리채를 휘두르면 죄책감이 든다. 혹 천연기념물을 죽인게 아닌가 싶어.


밤에는 귀뚜라미 한마리가 화장실들어가서 밤새도록 운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기계소리인가 싶어 귀기울여봤는데 소리가 일정치 않아 화장실 불을 켜봤더니 놈이 울음을 멈췄다. 그 이후에도 또 울면 내가 물을 한번 꽝 하고 열었다 닫는다. 소심한 녀석은 그러면 더이상 울지 않는다. 사흘동안 우리 화장실에 잠입해 울던 녀석은 어떻게 나갔는지 나가고 없었다.


이렇게 크로아티아의 시골집에서 보낸 2주의 휴가는 끝나간다. 그러면 개미왕국의 호재도 더이상 없다. 내가 이곳을 떠나고 나면 개미여왕은 정찰명에게 잡도리를 할까?지난 2주간의 실적에 비해 최근 실적이 너무 형편없다고, 더욱 분발하지 않으면 식사량을 줄일 거라고. 그래도 계속 실적이 낮으면 날마다 내보내는 정찰병 수를 늘려보기도 하고, 먹는 입을 줄이고자 낳는 일개미의 수를 줄일까?그랬다가 결국, 아, 그때는 우리 개미왕국에서 한번 있을까 말까한 호재였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날이 올까. 나의 은총이 개미왕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레 독일로 출발이다. 토요일. 그 날은 56퍼센트의 확률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소식이 있다. 우리가 2주를 지낸 동안 한 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졌는데 실로 졸딱 젖었다. 불과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은 맑은데 우리동네만 비가왔다. 모레 이 비로 인하여 개미들의 식량창고가 와르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집까지 천 킬로미터 거리라 뮌헨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 그동안 즐거웠다. 있는 내내 고요하고 즐거웠으므로 다음에도 포도가 익어가는 이 시골집에 찾아올 것이다. 그때지 개미왕국이 버티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가 파리를 잡던 테라스. 중간에 동그란 시설물은 자물쇠로 잠겨 그 기능을 잃은 우물. 이 집은 100년이 넘은 농가로 주인이 리노베이션하여 유럽의 휴가객에게 세를 놓고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마당에 죽어있는 벌레를 선물했다. 첫째가 머리를 분해해서 들고갔고 둘째 세째가 협동하여 분해작업중이다. 먹기에 너무 딱딱하려나? 키토산이 풍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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