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왜버려, 죄다 땅에 꽂아놔야지, 대대로 먹을 수 있게
나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농사와 흙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다. 아버지의 옥답은 문전에 있지 않았고 자전거로 20분 거리, 도보로 40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출퇴근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옥답에 가본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흙의 원리에 대해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
그런데 텃밭을 임대한 후 흙의 원리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우주만물의 원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인생이 저물어가는 갱년기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셈이다. 나의 눈은 어느날 갑자기 전기에 감전되듯 찌릿하며 떠졌다. 그리고 얻은 깨달음.
우리의 우주는 그 원리를 깨친 자에게 무한한 자원을 제공한다. 오! 우주의 신비여!
자연의 원리는 대대손손 풍성하리라 이다. 인간을 제외하면 자연의 모든 만물은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하고 이를 악물고 최대한 많은 자손을 보려고 한다. 가지 하나 뚝 끊어서 꽂아두면 거기서 자기와 똑같은 것이 복제되고, 먹고남은 씨앗을 툭 뱉어놓으면 거기서 자기와 같은 것이 복제된다. 하나의 민들레에서 수많은 홀씨가 퍼져 좁디좁은 보도블록 틈사이에 내려서도 다음꽃을 피운다. 이것들은 도무지 포기를 모른다. 이 우주를 창조한 창조자가 있다면 아마 명령어 제1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대손손 풍성할 것' 일 것이다.
나는 파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파를 한 단 사면 다 먹고 남은 뿌리를 수염을 잘라 화분에 꽂아둔다. 일주일에 두어 번 물을 주면 쑥쑥 자라서 파를 구입할 일이 없다. 상추뿌리도 모으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많은 채소들을 뿌리채 파는데 상추도 그중 하나다. 나는 한 달 전에 상추 두 단을 샀는데 그 뿌리를 화분에 꽂아두고 잎이 자라는 족족 뜯어먹는다. 이게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못할 것이 뭐있는가. 주식은 본전을 잃을 일도 많지만 파뿌리 상추뿌리는 본전을 잃을 일도 없다. 주식을 상속하면 상속세를 내야하지만 채소뿌리는 그럴 일이 없다.
발코니에서 자라고 있는 나의 파와 상추는 꽃을 피우지 않는 한 10년이고 20년이고 식물로서의 생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그러면 저것들을 미나에게 상속해 주는 것도 고려해봐야한다. 기후위기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줄 알고. 영화 워터 월드에서 캐빈 코스트너가 지키려 했던 고귀하디 고귀한 것이 방울토마토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