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충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딱히 공들이는 뭔가가 없다. 대충 살아지는대로 산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공을 들이는 자식교육에 대해서도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인데, 발레를 가르쳤다 중단, 체조를 가르쳤다 중단, 승마를 가르쳤다 중단, 피아노 가르쳤다 중단(집에서 가르쳤음), 한글학교 보냈다가 중단. 지가 싫다는데 도리가 있나. 애미된 입장에서 남들한테 떠벌일 일은 못된다만 돈 굳어서 좋다고 히히닥거렸다.
미나가 커서 즈이 에미를 원망할 순 있다. 엄마, 난 왜 아무것도 잘 하는게 없어? 싫다고 해도 억지로 좀 가르치지 그랬어, 그랬으면 지금쯤 지젤을 맡았을지 누가알아?
나는 이런 원망에 이미 준비해둔 멘트가 있다.
딸아, 나무위키에 지미 헨드릭스를 쳐보렴. 그는 사교육이라곤 받은 적이 없지만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됐단다. 대가는 태어나는거야. 니가 열한 살이 될때까지 아무런 조짐을 보이지 않고 그럭저럭 살고있다면 너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될 팔자인 거야.세상의 99퍼센트는 평범한 사람들로 채워져있으니 니가 평범하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지.
나는 자식 사교육 뿐만 아니라 부동산, 재테크, 커리어 등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조금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여 커리어를 쌓아볼까에 관심이 없이 다달이 나오는 시원찮은 월급에 만족하고 산다. 부동산을 사두면 오르면 올라서, 내리면 내려서 골치아플 일이 생길까봐 사고싶잖다. 그럼 나의 관심분야는 무엇인가?재미있게 노는 일이다. 오로지 잘 놀고 잘 먹다 세상을 등지고 싶어 내 하찮은 벌이의 대부분을 노는데 탕진한다.
겨울동안 웅크리고있다가 3월이되면 날개짓을 시작한다. 3월에 짧은여행 하나, 4월 부활절 방학에 1주일짜리 여행 하나, 5월에는 휴일이 삼일이나 되므로 휴일끼고 혼자 배낭여행, 6월에 짧은여행 하나, 7, 8월 여름방학이므로 1주일이나 2주일짜리 여행 하나... 이런 식으로 다달이 길고 짧은 여행을 하다가 12월 크리스마스 여행을 마지막으로 그 해의 여행을 마친다. 여행이라함은 내가 못알아듣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므로 다 해외여행이다. 이런 여행들을 다 소화하려면 1년에 여행경비가... 많이 나간다고 보면된다.벌이가 시원찮은 우리에게 이 여행경비는 많은 짐이된다.
그 돈으로 부동산을 샀었어봐!
그런 생각은 아예 안한다. 여행의 아름다운 기억은 부동산을 소유한 기분보다 더 충만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있기때문이다. 조금 더 늙어봐라. 이제 곧 인생을 돌이켜 추억을 회상하는 시기가 온다. 그럼 추억부자인 나는 방만구 씨와 식탁에 앉아 그때 우리가 얼마나 재밌게 살았는지, 얼마나 무모한 여행을 했는지 회상하며 웃음짓는 날이 올 것이다.
사실, 이런 삶은 불효를 저지르지 않고는 성립될 수가 없다. 한국에 갔다하면 최소 2주를 탕진해야하므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해야 3,4년에 한 번 뵈러갈 뿐이다. 그렇게 뵈러가서도 그 시간들을 오로지 부모님과 함께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볼일을 잔뜩 본 이후에 사나흘 정도 부모님과 함께할 뿐이다. 대학때부터 이렇게 살아와서 부모님은 내게 큰 기대가 없으시다. 다행히 나는 무남독녀도, 장녀도, 막내도 아니다. 4남매중 어중띤 셋째다. 부모님께는 자식이 나 말고도 셋이나 있으니 그 셋에게 효도를 받으시면 된다.
올해는 유독 나에게 슬픈 한 해였다.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기 때문이다. 1월에 부킹해놓은 여행상품을 줄줄이 취소해야했다. 3월에 에쎈과 네덜란드 여행, 4월에 프랑스 엘사스 여행.아, 5월에는 그야말로 큰 여행을 잡아놨었지... 초등학교 동기이자 나의 불알친구와 이스탄불에서 조우하여 터키 조지아 3주여행을 하기로 했는데불발됐다. 원래는 터키에서 출발하여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최소 한 달 정도의 일정이 소요되므로 터키 조지아로 계획을 바꾸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에누리없이 취소된데다 당시엔 도대체 언제쯤 여행이 다시 가능해질지 그 여부조차 불투명했었다. 코로나가 길어지니 내 삶의 의욕이 짧아졌다.
천만다행으로 6월 15일 코로나때문에 닫힌 유럽국경이 다시 열렸다. 나는 여행계획을 세워볼까 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계획을 세우는 일은 밤이 새는줄도 모르게 재미있었다. 부킹닷컴에서 점찍어둔 호텔을 예약하려던 어느날, 시기적절하게도 미나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미나네 학교에서 확진자가 둘씩이나 나왔단다. 그래서 애를 학교에 보내지말고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까지 자가격리 하란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기다. 조금 있으면 여름방학인데, 연중 가장 비중있게 놀러다녀야할 시기에 자칫 자가격리를 해야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중간에 취소될 계획이라도 일단 계획은 세웠다. 여러 여행이 취소되었으므로 휴가일수도 많이 남았고 이번 여름엔 15일동안 어디로든 다녀오자. 비행기 여행은 갔다가 못돌아올 수 있으므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이라야한다. 그렇다면 후보지 중 터키, 그리스, 스페인이 빠지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좁혀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너무나 영어를 못한다. 8년 전 트로아에 갔다가 빵집에서 근무하는 분이 '밀크'도 못알아 들어 젖소를 그려보인 경험이 있지않냔 말이다. 그러므로 프랑스는 여행하기가 심히 불편하다. 그럼 우리에게 남은 여행지는 단 한 곳, 이탈리아다. 자동차로 갔다올 수 있는 곳, 경치좋고, 바다도 있고, 음식맛있고, 휴가분위기도 물씬나는 곳. 그리고 코로나 확진자도 만발한 곳.
나는 이탈리아가르다 호수에서 1주일, 아드리아 해에서 1주일 있다가 오기로 결정했다. 이동거리가 800킬로미터에서 1000킬로미터에 육박하니 오고 가는 길에 알프스 어딘가에서 잠을 자야한다. 미나네 학교는 확진자가 나온 이후로 폐쇄되었으므로 미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될때까지 집에서 놀았다. 다행히 미나의 방학이 시작될때까지 우리의 신상에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떠나기 하루 전날, 봐두었던 호텔을 예약했다. 여느해 같았으면 쓸만한 호텔은 이때쯤이면 예약이 끝났을텐데올해는 많이 다르다.
휴가가 가까워지자 일더미가 내게 몰리기 시작했다. 휴가 가기전에 이거 끝내줘, 휴가떠나기 전에 미팅가지는 거 잊지마. 내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여기 저기서 일더미가 몰려들어 나는 인도 여자들이 화장할 때 찍는 이마중간에 송곳으로 찌르는듯한두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모든 두통거리를 끝내고 근무 마지막날 퇴근하려는 찰나,
인사과 기네스양이 냐게 물었다.
휴가는 어디로?
이태리로 가. 내일 오스트리아 티롤에서 하룻밤 자고, 곧장 이태리로 내려갈거야.
어머, 미쳤나봐, 너는 코로나 확진자 어마무시하게 나온 데만 골라서 그렇게 다니니.
목소리 큰 기네스 양이 말을 꺼내자 마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너 이태리 가니? 간도 크지.
웬만하면 독일에 있어, 이 시국에.
어우, 벌써부터 자가격리 냄새난다!
마요르카에 집이 있어 일 년에도 서너 번씩 마요르카를 찾는 회계부장도 올해는 독일에서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부인이 유니크한 여행지를 좋아해 나 못지않게 여행을 많이 다니는 한 임원도 올해는 독일국내여행으로 만족할 거라고 했다. 나 혼자 외국여행을, 그것도 확진자가 유럽에서도 월등히 많은 이탈리아 여행을 가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정부에서 오죽이나 알아서 6월15일부터 유럽의 국경을 열었을라구. 나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다가 이태리에 가는거야, 유럽 경제를 살려야지. 미리부터 김빠지게 스트레스주지말라고,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한 마디 크게 남기고 퇴근했다.
시끄럽고! 내 친구는 밀라노 살아도 아직 안죽었어. 걱정하지마, 살아서 돌아올께.
우리는 짐을 잔뜩 실고 이태리로 출발했다. 보통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지방인 브렌너의 교통체증이 말이 아닌데 이번 만큼은 길이 뻥 뚫렸다. 단 한 번의 체증도 없이 우리는 네비게이션에서 안내해주는 도착시간보다 무려 20분이나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점찍어둔 방갈로, 출발하기 하루 전에 예약하는 바람에 이제나 저제나 예약을 못하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던 방갈로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5분의 4가 텅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로 2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이곳 방갈로 전체를 둘러보며 우리가 들어가고 싶은 곳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뒤에는 멋진 돌산에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앞으로는 가르다 호수가 훤히 보이는 훌륭한 뷰를 갖춘 17호 방갈로로 우리는 이삿짐을 들였다.
옆으로 앞으로 다 빈 방갈로들
이불보와 베게보, 메트리스보를 빌리는데 돈을 내라고 해서 우리는 이불 보따리를 들고갔다. 초저녁에 모기가 있어서 더운데도 애가 이불을 덮고있음.
여기저기 다닐 필요없다. 테라스에 앉아서 매미소리 들으며 호수만 내려다봐도 충분하다
이곳의 방갈로들은 아마 예전엔 올리브 농장이었던 모양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방갈로들이 지어져서 꽤 운치가 있었다. 흡사 예전에 우리 아버지의 사과나무 밭에 있었던 오두막처럼. 매미도 해뜨자마자 시작해서 어두워질때까지 우는 것이 우리나라 여름풍경과 비슷하다. 우리 방갈로에 자주 들렀던 제리라는 고양이는 우리들에게 참치와 우유를 얻어먹고는 다음날 아침에 죽은 매미 한 마리를 선물로 가져다논듯 했다. 매미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매미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우는 소리도 약간 다르다.
어쩌다 죽었니, 너는?
방갈로들이 텅 빈 것처럼 두 개나 되는 풀장도 텅텅 비었다. 보통 성수기에 호텔을 찾으면 수영장의 눕는 의자들이 대부분은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로부터 찜이 되어있기 마련이어서 의자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올해는 예외였다. 이렇게 비어있을수가... 처음에는 이게 웬떡이냐 싶었지만, 지내다 보니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혼자 놀면 뭔 재민겨...
아닌게 아니라 여기 지내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코로나의 치명타를 입은 이탈리아의 호텔업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나마 우리의 방갈로는 이렇게나마 문을 열었지만 방갈로 근처의 호텔중 제법 큰 규모의 호텔이 여럿 문을 닫았다. 그 호텔 종업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싶어 마음이 쓰렸다.
가르다 호수의 명물인 알록달록 스파게티 누들. 우리도 한 봉지 사서 끓여먹었음.
한적한 가르다 시내모습
우리가 머물렀던 가르다 시 구시가지 모습.
베로나의 성벽에서. 미나 다리가 특별히 길어보이게 나와서 올려봄.
어제 아드리아해(니그나노, 비비오네)로 왔는데 여기도 많이 붐비지는 않는다. 피서객들의 대다수가 이탈리아인들이고 외국인 차 번호판을 가진 자동차들은 가물에 콩나듯 보인다. 예년과 확실히 다르다.아드리아 해는 뭐... 바다 말고는 별로 볼것이 없네. 솔직히 여기보단 포항 송도혜수욕장이 훨씬 낫다.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물을 수도있다.
너는 그렇게 인생을 대충 살아놓고 후회는 없니?
후회가 없네요. 놀고 싶은 만큼 실컷 놀아서, 쓰고싶은 만큼 펑펑 쓰고 살아서 곧 죽어도 후회가 없네요. 글쎄요, 내일 죽는다면... 키르기즈스탄에 못가본 것이 후회가될 지언정 부동산을 딸에게 물려주지 못한 건 후회가 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