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마세요, 나라에서 월급이 나옵니다
3월 16일 오후, 시국이 심상찮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중 우리 회사 직원들은 삼삼오오 한 IT 직원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메르켈 총리의 발표를 듣게 되었다. 이날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위해 연방 주정부 회의를 통해 사회적 접촉 제한 조치를 발표했는데 이런 발표문은 그녀의 취임후 처음이었단다.
앞으로 운영금지될 업체로 발표된 곳은 클럽, 바, 술집, 디스코, 극장, 콘서트장, 영화관, 놀이시설, 카지노, 각종 스포츠 시설, 아울렛, 쇼핑몰…
메르켈 총리의 입에서 아울렛, 쇼핑몰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직원들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회사는 수입의 100%가 아울렛과 쇼핑몰에서 나오는 패션 소매업체다. 메르켈 총리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우리 회사 통장에 찍히게될 수입은 0 원이라는 것. 모든 직원이, 심지어 설립자 조차도 입사후 처음 맞딱뜨리게 된 전무후무한 뉴스였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 세대가 직면한 또다른 형태의 재난이었다.
나는 메르켈 총리의 발표가 있은 후부터 상부의 지시를 받아 분주히 월세를 비롯, 직원들의 건강보험료나 세금 등 큰 지출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과 통화를 하고, 리스트를 만들고, 보고하였다.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를 수입 0 원의 현실은 나를 옥죄더리 급기야 3월 말 사달이 났다. 회사로부터 25%의 감봉과 노동시간 삭감에 대한 통보를 받은 것이다. 직원 하나 하나 모두 미팅룸에 불려 들어가 죽상을 하고 나오는 걸로 봐서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그래도 헤드 오피스에서 일하는 우리는 매장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할 일이 있었고, 그런 까닭에 전원 임금의 25%만 삭감돼서 다행이다. 매장 판매원들은 메르켈 총리의 발표가 있었던 다음 부터 독일내 모든 아울렛과 쇼핑몰이 문을 닫게 되면서 아예 출근을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매니저를 제외한 판매원들의 월급은 0 원이 되었다.
미팅룸에 불려들어간 나는 회사의 입장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해주면서 끄적끄적 연습장에 내가 받게될 월급을 적어 보았다. 그러니까 3월달 월급까지는 받고 4월부터는 노동시간도, 임금도 기존에서 25%가 삭감되니... 세후 월급에서 25%를 제한다면… 생각보다 꽤 많은 임금이 깍였다. 죽상이 된 내 얼굴을 조금이나마 펴볼 요량이었던지 인사과 부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Kurzarbeitergeld 라고 들어봤죠?
예, 근데 그게 요정도로 작은 폭으로 임금이 삭감된 케이스에도 적용이 되는 건가요?
그렇단다. 사업장 폐쇄에 발맞추어 정부에서 Kurzarbeitergeld라는 지원금 제도를 발표하었다. 그것은 강제로 폐쇄당하는 바람에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거나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에 한해서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다. 아이가 있는 노동자에게는 월급의 67%, 싱글에겐 월급의 60%. 그러니까 월급이 100만원인 아이가 있는 노동자라면 일을 안하고도 67만원의 지원금을 월급처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지원금이 나온단다. 그 지원금 내역은 삭감된 임금액의 총 67%(싱글인 경우 60%)를 나라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10만원이 월급에서 삭감됐다면 정부에서 6만7천원을 지원하니 결과적으로 3만3천원만 삭감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게 어딘가, 이 시국에.
그리하여 나는 월-수는 사무실에서 6시간 노동을, 목-금은 집에서 6시간 재택근무를 하고 4월달 월급은 정부 지원금을 감안하여 세후 월급의 약 10%정도만 감봉된 월급을 받게 되었다. 불행중 다행이다. 이 와중에 나는 머리를 한 번 굴려보았다. 아예 일을 안하고 이 시국에 한국 친정에 가서 달래 냉이 쑥 캐러 다니며 시간을 좀 때우다 올까? 그래도 월급의 67%가 나온다잖아?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올 것 같니? 힐링하고. 얼마나 좋아.
달래, 냉이, 씀바귀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사실, 지인중 한 분 아버님이 지난주에 돌아가셨는데 그 분은 한국엘 가지 못했다. 한국가면 유럽에서 왔으니 장례식에도 못가고 2주 자가격리 해야하고, 친척들 만나고 돌아올 땐 독일에 들어와서 또 2주 자가격리를 해야할, 아니 아예 귀국비행기 조차 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맏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님 장례식엘 못간 것이다. 지금 이런 사람들 차고 넘친다. 그러니 이런 시국엔 장례식이든 결혼식이든 못 갈 각오하고 집에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