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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훈 Dec 19. 2019

잘 읽히는 글이란?

- 독서가 어려운 세 번째 이유 : 나에게 적합하지 않은 책

 우리는 독서가 어려운 이유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첫 번째로 본 것은 독서의 언어가 가지는 특징인 ‘높은 밀도’에 대해 살펴보았고, 두 번째로 본 것은 독서를 하는 데에 있어 좋지 않은 습관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좋은 습관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함께요. 


 독서를 하기 힘든 세 번째 이유는 이 두 이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책의 언어는 밀도가 높아서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거기다 책을 읽는 좋은 방식에 대해서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독서를 하기 힘든 세 번째 이유는 애당초 잘 읽히는 책 자체를 못 고른다는 것입니다.

 

 독서의 시작은 책을 사는 것입니다. 일단 책이 있어야 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갑니다. 서점이라는 곳은 사실 꽤 독특한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책’이라는 물건만을 파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넓은 공간에, 단 한 종류의 물건을 그렇게 많이 쌓아놓고 판매하는 가게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책을 잘 못 읽는다는 통계가 무색하게, 서점에는 정말 많은 책이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야채도 팔고 고기도 팝니다. 가전제품점에서는 TV도 팔고 냉장고도 팝니다. 그런데 서점은 오로지 책만 팝니다. 휴대폰 대리점은 휴대폰만 팔지 않느냐고요?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휴대폰만 팔긴 하지만 서점처럼 크지도 않고, 서점처럼 많은 수의 휴대폰이 있지는 않죠. 보통 한 종류의 물건만을 취급하는 곳은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는 우리는 바로 이 점 때문에 곤경에 처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요즘 독서를 안 한다, 일년에 책을 10권도 안 읽는다, 이런 이야기만 많이 들었는데 서점에 가면 책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요. 서점에 그득 그득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기가 죽습니다. 자기계발서 코너에 가면 더 놀라게 됩니다. 비슷한 제목의 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실 서점에서 아동, 청소년을 위한 학습지를 제외하면, 자기계발 코너에 책이 가장 많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는 이 많은 책들 앞에서, 안 그래도 선택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정신은 끝내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죠. 책은 너무 많은데, 도대체 어떤 책을 고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이 독서를 하기 힘들게 만드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독서를 하려면 책이 있어야 되는데, 책을 고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서점을 방문하는 짧은 시간 안에 그 많은 책들을 일일이 읽어보고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그러나 저는 ‘작가 독서법’에서 나름의 해법을 알려드릴 것입니다. 후훗) 그러니 책을 골라 놓고도 독서에 진도가 안 나가 고생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죠. 살 때도 고생, 읽을 때도 고생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겁니다. 제가 계속해서 ‘작가 독서법’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핵심은 ‘글과 책을 쓰는 과정’ 에 있습니다. 

 

 주변에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책을 잘 쓰는 사람….도 잘 찾아보면 있을 수 있겠죠. 말은 순간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재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의 풍성함을 위한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반면 글의 경우는 말과 달리 한 순간에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을 들여 써도 상관이 없죠. 따라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말의 경우와는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고민, 끈기,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는 능력과 노력이죠. 그러면 책을 쓰기 위해서는 무슨 능력이 필요할까요? 책을 쓰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한 것 같지만 또 다릅니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글의 조각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글을 배치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책은 쉽게 말해 글을 많이 모아 놓은 것이죠. 과거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웠던 ‘기승전결’이라는 말 기억 나시지요? 모든 책에는 기승전결이 있게 마련입니다. 비슷한 내용의 글을 그저 병렬식으로 많이 모아놓으면 책이 될까요? 물론 책이 될 수는 있겠죠. 그러나 많이 팔리고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이 읽다가 지루해 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모든 책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책에 적혀있는 수많은 문장들은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한 마디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들은 독자를 설득하는 것이죠. 설득을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책과 글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잘 쓰려면 큰 그림을 잘 보는 능력이 필요하죠. 책에 적혀있는 단어가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라고 해서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면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요? 책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죠? 그렇다면 작가가 하고 싶은 그 한 마디를 독자에게 잘 전달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겠지요. 책은 300페이지가 넘는데, 다 읽으면 ‘아, 이 책은 한마디로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번뜩하고 떠오른다면, 여러분은 좋은 책을 읽은 것입니다. 


 아까 이 한 마디를 잘 전달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니까 좋은 책은 작가의 한 마디를 전달하는 전략이 치밀하고 정교한 책인 것입니다. 이 구조가 촘촘하면 독자들은 작가의 한 마디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가게 되는 겁니다. 


 이 구조가 치밀하지 못한 글을 읽으면 어느 순간 글을 읽다가 턱 막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글은 A에서 B로 넘어갔는데,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안 넘어가는 거죠. ‘왜 갑자기 A를 말하다가 B로 넘어가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글을 읽는 속도가 안 나고 혼란을 느낍니다. 좋은 글이 아닌 것이죠.  

모든 책은, 결국 한 문장을 잘 전달하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느껴지게 쓴 책이 좋은 책입니다.

 

 한편, 애당초 내용 자체가 어려운 글이 있습니다. 이런 글을 해당 분야의 비전문가가 읽으면 당연히 이해가 잘 안 되겠지요? 이런 글은 작가의 필력이 부족하여 못 쓴 글이라기 보다는 ‘불친절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의 가장 대표적인 글은 사실 논문입니다. 


 논문은 처음부터 일반인들이 누구나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니지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신이 그동안 연구했던 것들에 대해 발표하는 성격을 가진 글입니다. 그러니 그 분야의 기본이 되는 지식들의 경우는 구구절절 논문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 있을 수 있겠네요. 

 

 어떤 명제도 자기 자신에 관해 무엇인가를 진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명제 기호는 자기 자신 속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형이론'의 전부이다.) ……요컨대 함수 F(fx)가 자기자신의 독립변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F(F(fx))'라는 명제가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명제에서 외부 함수 F와 내부 함수 F는 상이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내부 함수는 Φ(fx)의 형식을 지니고, 외부 함수는 Ψ(Φ(fx))의 형식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 두 함수에는 단지 'F'라는 문자만이 공통적인데, 그러나 그 문자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 저, 논고 중 3.332~3.333 에서 발췌)


 도대체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죠? 인용을 한 저 자신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알고 싶지도 않….) 명제? 명제 기호? 유형이론? 철학자의 책인데 갑자기 F(x)? 등등 뜻을 잘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하는데, 저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친절하게 단어 하나하나를 설명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은 ‘대상’이 이미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쉽게 말해 ‘알아들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봐라’는 성격을 가진 글입니다. 

 

 글의 친절함과 불친절함은 글을 읽을 사람을 저자가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논고’를 초등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게끔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 책을 쓰는 저자는 꽤나 고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위의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뜯어고쳐야 할 테니까요. 어떤 부분은 내용을 과감히 빼기도 할 것이고, 핵심적인 부분만 남긴 뒤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온갖 예시를 들어 가며 비트겐슈타인의 어려운 이론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이렇듯 글의 대상이 달라지면 글의 목적도 그에 맞게 달라집니다. 글의 목적이달라지면 글을 쓰는 방식도, 글에 쓰이는 언어도 그에 맞게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해가 어려운 글과 불친절한 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해가 어려운 글은 불친절한 글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말, 이제는 이해가 되시지요? 요약하면 이해가 어려운 글은 ‘전략이 부재하거나 미비한 글’ 입니다. 불친절한 글은 ‘특정 대상을 위해 쓴 글’ 입니다. 독서를 이제 도전하시려고 하는 분들은 위의 두 종류의 글은 모두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이런 책을 보시면, 일단 도망가세요!!!!


 불친절한 글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독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점차 읽어 나갈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처음에는 쉬운 글을 읽으세요. 청소년이 읽는 책을 어른이 읽어도 절대 부끄럽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운 글을 너무 빨리 접하는 것은 독서 의욕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반면 이해가 어려운 글은 사실.... 좋지 않은 글입니다. 이런 글은 처음부터 안 읽는 것이 좋겠고, 독서의 고수가 되고 나서는 여러분이 스스로 구분하실 수 있게 되실 겁니다. 논리가 정연하고, 읽는 데에 걸림돌이 없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단어를 쉽게 쓴다고 해서 책이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쉬워 보여도 글이 이상하면 읽으면서 자꾸 표정이 찌푸려집니다. 좋은 글을 잘 찾는 법은 '작가 독서법'을 조금 더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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