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이 고통스럽고 아픈 당신에게

폴 틸리히의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

by 안태희

상담실을 찾는 분들 중에는 유독 '적막'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저는 퇴근하고 텅 빈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TV나 유튜브부터 크게 틀어놓아요. 가만히 있으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거든요. 주말에 아무 약속이 없으면 마치 세상에서 저 혼자 버림받은 것 같아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이분들의 스마트폰은 늘 누군가와의 카톡이나 SNS 알림으로 바쁘게 울립니다.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화면이 까맣게 꺼지는 순간 밀려오는 정적 속에서는 지독한 공허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겉보기엔 인간관계가 넓고 활기차 보이지만, 사실 이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어떻게든 도망쳐야 할 '형벌'에 가깝습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아주 깊고 다정한 통찰을 건넵니다.


외로움(Loneliness) : 혼자 있는 '고통'

폴 틸리히는 영어에 '혼자 있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가 두 개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단어가 우리 내면의 완전히 다른 두 풍경을 그려낸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외로움(Loneliness)'입니다. 틸리히는 외로움을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정의했습니다. 외로움에 빠진 사람은 결핍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내 안이 텅 비어 있다고 느끼기에,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의미 없는 술자리에 참석하고, 끊임없이 SNS 피드를 새로고침하며 '좋아요' 하나, 댓글 하나에 일희일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내면을 채울 수 없습니다. 타인은 내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치유제가 될 수 없으니까요. 외로움에 쫓기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고, 관계 속에서도 늘 '버림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잃어갑니다. 분명 사람들 틈에 있는데도 지독하게 외로운 '군중 속의 고독'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고독(Solitude) : 혼자 있는 '영광'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혼자만의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틸리히는 두 번째 단어인 '고독(Solitude)'을 제시하며, 이를 "혼자 있는 영광을 표현하는 단어"로 아름답게 정의했습니다.

외로움이 타인이 '없는' 상태에 초점을 맞춘 부정적 감정이라면, 고독은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에 초점을 맞춘 지극히 긍정적이고 충만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왜 혼자 있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할까요? 심리학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그것은 '나 자신과 단둘이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소음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페르소나(Persona)를 다 벗어던진 진짜 내 모습, 어쩌면 초라하고 상처받은 내면의 민낯을 직면하는 것이 무서워 자꾸 밖으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당신이 유별나게 약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아픈 과정이니까요. 자꾸만 바깥의 소음으로 도피하려 했던 스스로를 먼저 너그럽게 안아주세요.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고독이라는 '영광스러운 시간' 안으로 용기 있게 걸어 들어갈 때, 마침내 진짜 치유가 시작됩니다.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내 마음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온전히 물어볼 수 있는 시간. 그 고독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내 고유한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고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가 외로움에 쫓겨 누군가를 만날 때, 그 관계는 안타깝게도 쉽게 무거워지고 삐걱거립니다.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상대방이 무조건 채워주기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연락이 조금만 늦어도 불안해하고,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하게 되죠.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 실은 상대방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의존'에 불과합니다.

반면, 스스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내면이 단단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내가 나로서 이미 충분히 평안하기에, 타인을 만날 때도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난 살 수 없어"가 아니라, "혼자서도 좋지만, 당신과 함께라서 내 삶이 더 풍요로워져"라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타인에게 맹목적으로 기대거나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존중하며 성숙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혼자서도 온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진정으로 조화로울 수 있습니다. 마치 웅장한 사원의 기둥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무거운 지붕을 안정적으로 떠받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역시 각자 '고독'이라는 단단한 기둥으로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아름다운 관계를 지어 올릴 수 있습니다.


적막 : 나를 만나는 '시간'

혹시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계신가요? 우리, 오늘 단 10분만이라도 용기를 내볼까요? 세상의 모든 스위치를 끄고 그 적막 속으로 고요히 걸어 들어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른 아침 조용히 물을 끓여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시간도 좋고, 카메라를 들고나가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가만히 응시하는 찰나의 순간도 좋습니다. 혹은 방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불안의 소음이 잦아든 그 고요한 자리에서, 당신은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든든한 평생의 '내 편', 즉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혼자 있는 고통(외로움)을 넘어, 혼자 있는 영광(고독)을 온전히 누릴 줄 아는 당신의 단단한 홀로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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