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과 건강한 질투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이 가장 꺼내기 어려워하는 감정은 단연코 '질투'입니다.
"선생님, 친한 친구가 블로그로 대박이 나서 지난달에 퇴사했어요. 앞에서야 진짜 잘됐다고, 너무 축하한다고 웃어줬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하는 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는 제가 너무 위선자 같고 초라해서 괴롭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탓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분들에게, 저는 우선 따뜻한 차를 한 잔 건네며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남의 성공에 내 처지가 초라해 보이는 건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타인의 성공 앞에서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고 씁쓸해지는 걸까요? 이 은밀하고도 보편적인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통찰을 빌려올까 합니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 욕망이 온전히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고 믿습니다. 내가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나 높은 연봉, 혹은 얽매이지 않는 시간적 자유를 원하는 것은 모두 나의 고유한 취향이자 주체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르네 지라르는 그의 저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통해 우리의 이런 착각을 단호하게 깨뜨립니다. 그는 내 안에는 근원적인 욕망이 없기에, 타인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곁눈질하며 그것을 따라 원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핵심 이론인 '모방 욕망(Mimetic Desire)'입니다.
우리는 왜 남의 것을 모방할 수밖에 없을까요? 지라르는 그 원인을 '존재론적 결핍'에서 찾습니다. 인간은 늘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다고 느끼는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타인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성취하는 모습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아, 저것을 가지면 나도 저 사람처럼 완벽해지고, 삶이 충만해질 수 있겠구나.'
즉, 우리가 진짜 질투하는 것은 친구의 늘어난 '통장 잔고'나 '퇴사라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친구가 얻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존재의 충만함'과 '여유', 그 반짝이는 상태를 훔쳐오고 싶은 것이죠.
지라르는 우리가 욕망을 모방하는 대상을 가리켜 '중개자'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심리적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 중개자와 나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에 따라 감정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만약 일론 머스크 같은 세계적인 부호나 유명 연예인이 수백억을 벌었다는 뉴스를 보면, 우리는 그저 "대단하다"며 선망하거나 감탄하고 맙니다.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아득해서, 애초에 질투라는 불씨가 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의 대학 동창, 직장 동료, 혹은 친척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나와 비슷한 출발선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내가 은연중에 모방하고 원했던 그 '욕망의 대상'을 먼저 쟁취해 버리면 동경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시기와 질투로 돌변합니다. "저 자리가 내 자리일 수도 있었는데", "왜 나보다 앞서가는 거지?" 하는 억울함이 내면을 잠식하는 것입니다.
결국 배가 아픈 진짜 이유는 상대방이 밉거나 내가 악해서가 아닙니다. '나도 저렇게 충만해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는 내면의 결핍과 불안이, 나와 가까운 사람의 성취를 통해 너무도 선명하게 거울처럼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이 모방 욕망의 거대한 쳇바퀴 속에서, 남의 떡을 흘깃거리며 괴로워해야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질투는 내 마음의 진짜 결핍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아주 정교한 '내면의 나침반'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부러워서 견딜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말고 가만히 그 마음을 직시해 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나는 지금 저 친구의 '무엇'을 그토록 질투하고 있는 걸까? 저 친구가 가진 물건인가, 아니면 그 물건이 가져다줄 것 같은 '안도감'과 '인정'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삶의 방향을 바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진짜로 원하는 내 삶의 가치인가? 아니면 그저 세상이 만들어놓은 성공의 정답지를 맹목적으로 베껴 쓰고 있을 뿐인가?"
막상 그 욕망의 밑바닥까지 치열하게 파고들어 보면, 우리는 타인의 화려한 겉모습에 잠시 현혹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숨 쉬고 싶은 삶의 풍경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참 많죠.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진짜 풍경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남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베껴 쓰느라 피로해진 삶의 궤도에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를 차례입니다. 세상의 요란한 박수 소리나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의미 있는 작은 기쁨들을 하나씩 발굴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지독한 모방 욕망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진정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첫걸음입니다.
타인의 성공에 또다시 마음이 소란스러워지더라도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저 남의 욕망을 훔쳐보던 시선을 거두고, 삐뚤빼뚤하더라도 당신만의 언어로 당신이라는 책의 다음 챕터를 묵묵히 써 내려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