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다
관광지로 유명한 애월 쪽 입니다만은, 바닷가 쪽도 아닐뿐더러 근처에 특출 날 볼거리도 없어 스을쩍 지나가는 관광객들이나 원주민 들만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그러니, 요즈음의 흔한 시골 마을과도 같은- 그런 마을입니다.
그런 조용한 시골 마을에도 조용한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더랍니다. 이름은 제주옥이요, 어디 하나 특별나게 고친 것도 없이 낡은 제주 구옥의 감성을 그대로 살려 운영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공간을 아주 사랑합니다.
거실에 앉아 -보통은 누워 있지만서도- 밖을 바라보면 보이는 제주도의 하늘, 나무, 돌담 그리고 평상. 낡은 판자 바닥에서 슬슬 올라오는 나무, 사람, 강아지의 냄새들. 누군가가 소중히 틀어 놓는, 그러나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그마 히 틀어놓는 사랑스러운 노래들. 그래서 저는, 이 공간을 아주 사랑합니다. 제주도에 방문할 적이면 항상 이곳에 방문하여 하루 종일 거실에 누워 있고는 한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제주옥 방바닥에 누워 하루 일용할 양식을 찾아다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작고 귀여운 봉성리에 얼마 전 떡볶이 집이 하나 새로이 들어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장사로서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이곳에는 떡볶이집을 포함해 식당이 새로 들어온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백 명 남짓한 원주민 -그마저도 다 댁에서 손수 음식을 하여 드시는- 과 일부 관광객들만이 머무르는 이 동네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식당을 차린단 말입니까?
무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윗동네에서 떡볶이 집을 하다 귀농을 하여 똑같이 떡볶이 집을 할 수도 있겠고, 봉성리 원주민이 떡볶이를 만들어 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 동네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떡볶이 집을 할 수도 있겠고요. 그게 무엇이든, 봉성리에 떡볶이 집이 생기었다는데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마룻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슬리퍼 질질 끌며 떡볶이 집으로 향하였답니다.
동네가 작아 어디를 가던 걸어 5분 내로 다 갈 수 있는 터라, 떡볶이 집에도 금방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도로 위치를 찾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이 봉성리에, 새로이 올린 것만 같은 아담한 한 동짜리 건물이 새로이 올라와 있었거든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나, 새로 생겼다던 그 떡볶이 집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를 온통 원목으로 인테리어 하여 나는 나무 냄새, 새 건물 냄새, 그리고 그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분식의 이것저것들 냄새가 섞여 나더군요. 아직 손님은 없어 여주인장은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계시었고요. 문이 열리자 와야 할 사람은 안 오고, 웬 백수마냥 슬리퍼 풀풀 흘기는 -이 동네에서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비주얼의- 젊은 남성이 들어오자 약간은 당황해하시는 것 같더라 이내 이것저것 안내를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특이했던 것이, 음식들이 저렴하더군요. 컵떡볶이 1인분 2천 원, 떡볶이 1인분 5천 원, 순대 1인분 5천 원, 그리고는 수제 튀김이 한 개당 1천 원. 이게 참, 요즘 시대 물가에 이 가격 내고 분식 먹는 것도 미안할 정도인데 이 시골 동네에 손님도 없이 이리 장사를 하시니, 죄송하지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무개라고도 생각을 했었습니다. 약간은 주제넘게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메뉴를 하나씩 시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윽고 메뉴들이 하나둘씩 나오더니, 시킨 적도 없는 어묵국물 듬뿍 담은 그릇에 어묵 하나가 들어가 나오더랍니다. 이게 뭔가, 주문이 잘못 들어갔나 해서 가만 보았더니 여주인장이 한마디 합니다.
'국물이랑 같이 좀 드세요.'
순간 기분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보통 국물을 주어도 국물만 주지, 판매하는 메뉴인 어묵 하나도 같이 넣어 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단골도 아닌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그럴 일은 더더욱이 없을 겁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장사치였습니다. 최대한의 이익을 올려, 그리고 한 푼 한 푼 아껴 직원들 월급 주고 내 먹을 돈 남겨먹어야 하는 그런 장사치요. 하루하루를 쥐어 짜내며 살아오듯 살아왔습니다.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요. 그런 제가 여주인장이 내놓은 저 뜨끈한 어묵 한 그릇의 의미를 어찌 이해하겠습니까. 그냥 서비스가 좋다고만 생각해버리고 넘어가버리고 말았답니다.-그리고 그 생각은 철저히 틀렸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문하여 나온 특출 날 건 없지만 슴슴하니 적당한 분식들을 한입 한입 먹어보고 있자니, 뒤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더랍니다. 도대체 이런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인가 한가득 호기심을 담고 저의 후발 주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게 웬걸. 아주 어린 꼬마 신사 손님 둘이 뛰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 아들이겠구나. 손님은 아니겠구나. 하는 와중 뒤로 꼬마 신사숙녀가 둘이, 둘이, 또 셋이, 혼자서 '안녕하세요!!' 단말마 인사를 외치며 마구마구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 그제야 창문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여기 초등학교 바로 앞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온 아이들은 바로 주문을 하지도 않고 건물 구석으로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비밀스레 '관계자 외 출입급지'가 붙어있는 여닫이식 문을 마구 밀어젖히고 안으로 쇄도하더랍니다. 아,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붙어 있던 저 방 또한 그 관계자가 주인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방으로 들어갔던 꼬맹이들은 이윽고 다시 나와 주인장 정신없게 한 마디씩 보태며 주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주문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이모, 저 누구랑 누구랑 먹을 건데 컵떡볶이 하나랑 튀김 삼백 원어치만 잘라주세요!'
'저는 슬러시 하나랑 떡볶이 이 돈에 맞게 조금만 주세요!'
사실 주인장 입장에서는, 정말 귀찮은 주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인장은 하나하나 꼬마들을 타이르며 주문을 받더니, 천천히 모든 요구사항들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요구 사항을 전부 들어준 커스텀 음식을 받아 든 꼬마들은 다시 관계자 전용 방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테이블에 앉아 받아 든 음식들을 고사리 손으로 조금씩 주어 먹더랍니다.
이곳은 나 같은 장사치나 생각하듯이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곳이 아니라는 것을요.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아마도 주인장은 앞의 학교에 다니는 조그마한 식솔이 하나 또는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소중한 내 자식과, 내 자식들의 친구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깨닫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더군요.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다치지 않도록 둥근 테이블 모서리, 성인이 앉기에는 조금 불편하지만 아이들이 앉기에는 너무 편한 낮은 바 테이블과 바 의자, 저렴한 분식들의 가격, 그리고 심심한 음식의 맛. 이 모든 것들이 주인장의 당신들을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의 맛을 표현하기를 중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음식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으니까요. 그저 이 음식에 담겨있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예쁜 음식을 하나씩 받아 들던 아이들이 하던 말이 아직도 귓속을 맴돈답니다.
콜라를 만든 사람은 90살까지 살았대.
콜라는 맛있잖아? 맛있는 거 만드는 사람은 오래 살아.
그러니까 떡볶이 이모는 오래오래 살 거야!
분명 제가 제주의 한 작은 떡볶이 집에서 겪은 것들은, 지금까지 제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모두 반대되는 것들이었거든요.
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롯 장사라면 순익은 남아야 하니까요.
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과한 서비스를 준 적이 없습니다. 규정된 서비스만 제공해야 다른 손님들과 형평성이 맞으니까요.
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규정에서 벗어난 요구사항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업무 프로세스에 과부하를 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손님에게 마음을 준 적이 없습니다. 서로 비즈니스적 필요 관계로 만난 사이니까요.
세상은 분명히 '상식'이라는 큰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며 돌아갑니다. 그리고 '상식'으로 이어진 세상에는 '질서'가 생기고요. 저는 그 질서를 지키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떡볶이 집의 주인장과 꼬마들은 행복해 보였고요.
무엇이 행복인가를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누워 고민해보기 시작했답니다. 이윽고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돈이나, 상식이나, 질서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이는 행복과 불행, 현실의 모든 현상이 외부 환경이 아닌 개인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분명히 봉성리의 그 작은 떡볶이 집은, 제가 했다면 불행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음을 주지를 못하니요. 떡볶이 집의 행복은, 주인장이 꼬마들에게 주는 예쁜 마음과, 그 예쁜 마음을 받은 꼬마들이 주인장에게 다시금 예쁜 마음을 주어서 만들어진 행복이 분명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그간 저를 불행하게 느끼게 했던 아무개들에게서 비로소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이나 했을까요. 우연히, 그리고 어찌 보면 갑자기 생긴 제주 봉성리라는 작은 마을의 한 떡볶이 집에서 평화를 느끼다니요! 그리곤 저는 제주에서 돌아와 평화 속에 본가에서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실은, 8월 말부터 제주옥을 제가 일시적으로 맡아서 하게 되었답니다. 원체 제주옥의 공간을 좋아하기도 했지만서도 내려가서 좋아하는 공간을 직접 꾸리며 장사를 해보겠다는 마음이 컸었지요. 그래서 맥주 기계를 들여놓을지 말지, 방 가격은 어떻게 설정할지 등의 장사치 같은 것들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저는 제주옥을 찾아오는 당신들에게 내가 겪은 평화를 제공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제주옥이 이렇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언제 방문해도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 마치 저에게 있어 제주도 봉성리에 있는 그 작은 떡볶이 집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