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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삼 Nov 18. 2024

화내는 지점

 방귀도  못 트는 신혼 때의 일이다. 신혼여행 중 태국의 빠통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남편이라고 지칭하기에도 어색했던 그 당시 새신랑 o 씨는 물건의 값을 깎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생각한 10% 도 아니고 20% 디스카운트도 아니고 물건값의 반값이하를 부르는 것이다. 50% 억지 땡처리 할인 떼쓰기 흥정에 손님은 왕이라는 팔지 않는 타이어를 갖다 주어도 웃으며 환불해 주었다는 전설의 서비스는 미덕이겠거니 했던 나의 인식을 산산이 부쉈다. 상인은 o 씨에게 물건이라도 훔친 양 화를 내고 있었다. 물건을 사는 고객에게 화를 내는 장면은 낯설기도 하거니와 반값이나 깎는 것이 어이없고 부끄러워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결국 그 새신랑은 짝퉁 켈빈 클라인 팬티를 비닐 봉지에 손에 거머쥐고 시장을 위풍당당히 걸어 나왔다.

"물건 값을 그렇게 많이 깎으면 어떻게 해? 화까지 내시잖아!"

"아니 그게 뭐냐면 상인이 화를 내는 지점이 있거든 그게 바로 그 물건의 값이야. 그러니까 그 지점에 ㆍ비밀이 있는 거야. 저기 꼬치구이 먹을래?"


 화내는 지점에 바로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더라.

지금 그 새신랑은 재래시장에서 물건값을 깍지 않는다라는 철든 중년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만큼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그때 일화가 자주 생각난다.

 

 어떤 직장 상사는 연륜이 쌓였지만 빠른 시장에 맞춰 변하지 못해 자신의 도태와 무능을 숨기기 위해 자주 화를 내었고, 집에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기를 해줘야 하는 애기가 있는 여자는 남편에 늦은 귀가 소식을 들으면 그 무심함과 외로움에 화를 내었다.


 주변사람들이 화를 내면 나도 모르게 즉각 도마뱀의 뇌에 스위치가 들어와 같이 화내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멈춰서 다시 생각해 본다. 그 지점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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