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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ug 19. 2024

나는 나뭇잎 장례사

한여름이지만 매일 아침이면

거실에 둔 화분에서 나뭇잎이 떨어진다.

이사하고 선물 받은 나무다.

이사한 지 2년이 되어가니

저 나무와의 생활도 2년이 되는 셈이다.

관찰이 부족하여 나무의 생리를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나무는 늦봄이나 늦여름쯤 생육이 활발한 거 같다.

그때쯤 새로 돋아나는 잎들이 생겨났다.

작년에는 나무를 판 곳에서 영양을 충분히 받아서 왔는지

새로 자라는 새순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작은 가지가 돋아 그 위에 다 자란 나뭇잎과 다를 것 없이

7-8개의 새순이 뭉쳐서 돋았다.

아주 작아도 오밀조밀한 모양으로 어른의 몸과 다를 것 없는 아기 같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바라보고

‘잘 자라라’

‘지금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건네곤 했다.

올해도 그즈음 새순이 돋았다.

그래서 이 나무의 생육기가 이쯤이로구나 여길 수 있었다.

나는 힘겹게 돋아났을 새순이 고맙고 귀했다.

하지만 올해는 잘 자라지 못했다.

어느 순간 바짝 말라죽어버리고 말았다.

새순은 말라 떨어질 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나뭇잎 장례사가 된 것처럼 매일 떨어지는 나뭇잎을 치운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치우며 어느 순간부터 나뭇가지를 손으로 살살 쓸어줬다.

겨우 붙어 힘겨워하는 나뭇잎이 있다면

부는 바람에, 스치는 손길에 편안히 떠나게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나뭇잎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이 달렸던

가지도 하나둘 떨어졌다.

하나둘 떠나고 가지까지

한 가지에 붙어살던 가족이 모두 떠난 셈이었다.

화분 하나였지만

난 그 화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화분을 잘 키우는 전문가들은 가지치기를 하고

또 화분의 모양을 잡기 위해 잘 있는 나뭇잎을 일부러 떼어내기도 한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보았던 화분이 그랬다.

그래서 모양이 조화롭고, 나름의 멋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척 흡족하여 거실에 하나 사서 더 둘까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뭇잎은 제멋대로 자랐고, 처음 느낀 멋은 찾을 수 없었다.

원하는 모양으로 머리칼을 자르듯 나뭇잎과 가지를 떼어내야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멋을 위해 생명이 달린 나뭇잎을 떼어낼 수 없었다.

가지치기를 할 수 없었다.

모양이 좀 덜하지만 그대로 이어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두니 새로 자라난 새순이 더는 살지 못했다.

화분에 있는 흙과 양분으로 새순까지 살 수는 없었던 거다.


나는 생명의 조화가 참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다.

생명을 다해 힘겹게 붙어 있다 떨어진 나뭇잎 치워주는 것으로는

화분을 제대로 돌보는 것이 아니겠구나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함부로 조화를 만들 자격이 내게는 없고, 그저 지켜볼 뿐이다.

너무 힘겹게 붙어있어

부는 바람에도 떨어질 나뭇잎을

손끝으로 쓸어 치워 주는 것 정도다.

그리고 새로 돋아나는 새순을 정성스레 바라봐주는 정도.

생명은 어디에서 건 그런 모습으로 이어지다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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