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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Dec 26. 2024

글쓰기는 종교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큰 쟁점이 되곤 한다.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이룬 정부의 이야기는 참 기가 막힌다. 하지만 믿음이란 것은 어떤 종교든 비슷한 모습을 띈다는 생각이다. 믿음이 모든 판단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처음 접한 종교는 무교였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무교를 표방하셨다. 할머니가 절에 가끔 가기는 했지만 먹고살기 바쁜 엄마, 아빠는 아는 척도, 모른 척도 하지 않으며 무교로 사셨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와 전통은 불교문화 속에 이어졌으니 알게 모르게 불교문화는 내게, 우리나라 사람 전체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내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난 것은 기독교였다. 옆집에 사는 언니가 교회 선생님이어서 자연스레 어린 나를 교회로 유도했다. 늘 할 것이 없어 심심했던 나는 호기심에 교회에 따라갔다. 교회는 집보다 풍족한 느낌이었다. 주일이면 어린 성도들에게 간식도 주고, 간단한 문구도 나눠줬다. 처음에는 그 재미에 나갔다. 난 누구에게 건 실망감 주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교회 선생님의 말도 잘 들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나는 그게 나만, 어린이들만 눈을 감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손을 드는지 마는지 하나님만 보는 게 아니라 교회 선생님이 보고 있을 거란 걸 말이다. 하나님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솔직했을 거다. 겨우 몇 주 나온 교회에서 내가 하나님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얼마나 믿겠나. 하지만 나는 속마음과 달리 손을 들었다. 교회 선생님이 나를 안 믿는 애로 볼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고두고 맘에 남았다. 그 후로 나는 점차 교회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두 번째 만난 종교는 불교였다. 어릴 때 일이라 어떻게 불교 행사에 가게 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시기로 따진다면 교회에 갔어야 맞는데 나는 어찌 된 건지 불교 어린이 행사에 가게 되었다. 어린이 행사는 불교도 다르지 않았다. 재미있는 노래를 가르쳐주고, 먹을 것을 주고, 뭔가 작은 선물을 주었던 거 같다. 그리고 때가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그랬는지 부처님이 예수님 탄생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기뻐했다. 나는 그게 참 생소하면서도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종교가 서로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기쁜 일을 같이 기뻐해주니 보기 좋았다. 어린 맘에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날뿐 다시 불교 행사에 간 적이 없고, 절에 간 적도 없었다. 그렇게 두 종교를 잠깐 경험하고 떠나왔는데 당시 교회 선생님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나를 집까지 찾아오려 했고, 불교에서는 나라는 애는 애초에 없던 아이처럼 찾지 않았다. 그것이 어린 날 경험했던 종교의 기억이다.




이후 종교는 나에게 한참 잊힌 것이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드니 세상에, 학교에, 부모님에게 까지 반항심이 생기는데 종교가 어떻게 내게 올 수 있겠나. 그렇게 종교에 대한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 청년기를 보내고, 나는 성인이 되어서 다시 종교를 만나게 된다. 

내가 사귄 남자 친구는 모태신앙이었다. 교회를 잘 나가는 거 같지는 않은데 밥 먹기 전에 기도는 빠지지 않고 했다. 아마 처음 사귈 때는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한다는 것도 잘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그 애와의 연애에 종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태 신앙이라고 해도 종교색을 드러낸 적이 전혀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애는 모태 신앙이라 불릴 뿐 종교에 대해 나만큼 무신경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긴 연애 끝에 결혼이 가까워오자 시댁에서는 신앙이 있는 며느리를 맞고 싶어 했다.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것이 맘에 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 신자만 아닌 것이 아니라 불교 신자도, 이슬람 신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신자가 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나는 결혼하면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다. 원한다면 결혼하기 몇 개월 전부터 다니마 했다. 결혼에 필요한 나의 노력은 그거면 충분했다. 


성인이 되어 종교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마음속 깊이 믿음을 갖고, 그 믿음에 따라 판단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이전의 자신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믿기로 작정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믿기로 작정하고 시작해 보자고 말이다. 종교란, 믿음이란 그렇게 시작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았다. 하지만 작정하고 하는 일은 급박한 순간 뽀록이 나게 마련이다. 나는 시시때때로 신을 찾고 열심히 기도도 했다. 신에 대한 감사를 기도하고, 축복을 기원했다. 온전히 믿고 따르게 해달라는 기도도 했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독교 교리 정도 되어야 맘 편히 살 수 있다고도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것을 잊고 말았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달려가 도와야 하는데 그건 미루고 기도만 하는 믿는 자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는 일이 자꾸 생겼다. 그러면서 나는 기도도 했지만 힘든 맘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헐뜯고 비난하는 말로 몇 페이지를 채우기도 했다. 그러면 몸속에 쌓인 독을 빼낸 듯이 편안해졌다. 내 글로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글로 나를 이해시키고 스스로를 정제하면서 하루하루 숨 쉴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글이 내 기도가 되는 셈이다. 나는 여전히 종교가 있다고 말하지만 이쯤 되니 나의 종교는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부처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점점 글을 따르게 되네요. 나 하나쯤은 글을 믿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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