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시어머니를 살피러 간다
시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온 남편은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힘든 기색이 역력한 엄마를 보는 것이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삶은 이어지고, 긍정적인 남편은 그리만 살 수는 없으니 힘을 내는 기색이다.
그러다 늦은 밤, 긴 한숨 소리를 낸다.
시동생의 전화다.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면 어떻겠냐고 하신단다.
시동생의 전화로 집안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동생은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형과 누나에게 연락하곤 했다.
살뜰하니 다정한 사람이라 가족의 생일이면 잊지 말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라고 알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시작이 형편없는 결과를 낳을 때도 있었다. 이번이 그랬다.
시동생의 전화를 받은 남편은 고민 끝에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시어머니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다 동생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섭식 장애가 생긴 시어머니는 가래 삼키는 것도 힘겨워했다. 그래서 숨이 차는 일까지 생겼는데 병원에서는 가래 삭히는 약을 처방해 줄 뿐이었다. 시누이와 시동생은 가래 흡입기를 사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남편이 주말을 맡아서 한다면 그건 시누이와 시동생이 알아서 하기로 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왜 아직까지 가래 흡입기를 사지 않는 거야? 왜 늘 말만 하고 하지 않니!“
남편이 화를 내니, 시동생은 누나가 어쩌고 하고, 남편은 누나는 늘 그런 식이라고 하고.
화를 냈던 남편은 동생에게 어서 누나와 이야기를 해보라는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시동생은 그 후 누나와 통화를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다들 생각이 달라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니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간절함은 그렇게 표현되기도 했다. 그날 밤은 남편도 나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아픈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아픈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아버지의 어려움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다. 80이 훌쩍 넘은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아픈 노인을 돌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내라고 해도 그것은 계속될 수 없는 일이다.
시어머니의 상태도 문제지만 시아버지도 더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막내아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시동생은 늘 그랬듯이 시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형과 누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그날 밤, 남편과 형제들은 어머니를 입원시키는 것이 맞다고 여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아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내가 시어머니가 다니는 종합병원에 가서 알아보고, 소견서를 받기로 했다. 시누이는 집 앞에 자기 시어머니를 모신 요양병원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남편도 아마 회사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저런 검색을 해볼 거다. 엄마 일이니 그냥 있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정리해 보면 이게 다였다.
누구도 시어머니를 살피러 찾아가는 이는 없었다.
사실 남편이 나에게 가볼 수 있느냐고 일찌감치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병원에 알아보러 가기로 했고, 아들이 휴가를 나와 있어서 밥을 좀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선뜻 그러마하지 못했다. 거기에 친자식들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또 내가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있었다. 내게는 복잡한 마음들이 엉켜 있었다.
돌아보니, 그중 가장 큰마음은 의구심이었던 거 같다. 그동안 시어머니를 돌보고 찾아뵌 것을 횟수로 센다면 내가 가장 많을 것이다. 친자식도 아닌 내가 더 많이 어머니를 돌봤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걱정이 있었다.
친자식이 아니니 시어머니도 내게 편하게 요구하지 못할 테고, 나도 어딘지 눈치가 보여 내 뜻대로 해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제대로 하는 걸까,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거기에 아빠를 떠나보내고는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아빠에게는 이리 못하고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맘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상태를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며칠 사이 드시는 것이 어찌 달라진 건지 다시 밥을 먹여보고, 눈으로 확인해 보고 한 후에 뭘 해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런데 내가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누가 확인해 줄 수 있을까? 아빠의 일을 결정하는 것도 그리 헤매고 후회했는데, 시부모에 대한 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자식인 그들이 나서지 않는데 내가 나서는 것이 맞는지'
'내가 나서며 그들이 틀렸다고 비난하는 맘을 품는 것이 올바른지'
그래도 최소한 내가 생각한 대로 해야 할 거 같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시어머니는 내게 갯벌에서 캐온 바지락으로 칼국수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열무김치를 담가 들려주시던 분이다.
그 많은 일 속에 당신 아들을 위한 맘이 대부분이었대도
나는 고마운 맘이, 안타까운 맘이 있다.
나를 친자식과 다르게 여겼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