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괜찮지요? 질기기 않지요?
남편이 출근할 때 나도 함께 집을 나섰다. 시어머니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전날 해 두었던 반찬 몇 가지를 챙기고, 입맛 없을 때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준비해 둔 샐러드를 작은 통에 옮겨 담고, 나중에라도 데워서 드실 수 있게 폭립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입맛 돋는 포도 봉지를 챙기니 보냉 가방은 터질 듯이 가득 찼다.
시간 약속을 정해두진 않았지만 늦고 싶지 않아서 서둘렀는데 그날따라 차가 많이 막혔다. 간선도로에 오르고 보니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차가 너무 막힌다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순탄하게 차를 달려 시댁에 도착했다.
시어머니는 안방 침대에 앉아계시고, 시아버지는 소파에서 뭔가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표정이지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아침 식사부터 차렸다. 국은 이미 시아버지가 데워서 떠 놓은 상태라 내가 싸 온 음식을 더하는 정도로 했다.
요양보호사가 없는 아침 시간이면 시아버지가 국을 데워 아침을 차렸다. 요양보호사는 점심을 챙기고 저녁을 차려두고 퇴근을 한다. 그러면 두 분이 차려 놓은 저녁을 드시고, 아침이면 간단하게 국을 데워 드시곤 했다. 씽크볼에는 설거지 거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건 큰 일거리가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어머니의 건강상태였다.
시어머니는 아침 시간이면 특히 기운이 없어서 힘들어했다. 그래서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침 시간을 서두는 것은 시어머니의 아침 식사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에게 턱받침 같은 앞치마를 해드리고 준비해 간 고기와 겉절이 김치를 올려서 먹여드렸다. 이제는 당연한 듯 입을 쩍 벌려서 받아 드신다. 어머니는 그 정도로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 숟갈 입에 물고 오물오물, 숟가락으로 연신 미역국 국물을 떠 넣어 삼킨다.
“괜찮지요? 질기지 않지요?”
숟가락에 밥 반을 채우고 다시 멸치며, 콩나물무침을 넣어서 입에 떠 넣는다. 어머니는 성에 차지 않는지 손으로 멸치를 몇 개 더 집어 드신다. 나는 그런 모습에 안심했다. 그렇게 드시라고 멸치를 볶아온 것이라 생각대로 되는 것이 만족스럽다.
시어머니는 숟가락을 놀려 국물을 뜨는데 건더기까지는 숟가락에 좀체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젓가락으로 미역을 집어 국물 든 숟가락에 올려줬다. 그제야 어머니는 미역국을 미역과 국으로 온전히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반복하여 음식을 떠먹이는데 밥그릇의 반이나 먹었을 즈음이면 배가 부르다며 그만 먹자고 하신다. 잘 못 드시는 것을 아니까 아침에 이 정도면 그래도 잘 드셨구나 생각한다.
곧이어 식탁에서 아침 식후에 먹어야 하는 약을 먹기 시작한다. 시아버지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국과 밥을 드시고, 약봉지를 챙겨주고 거실로 가신다. 어머니와 나만 남아 약 먹기에 나선다. 손짓으로 눈짓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달라고 하고, 나는 약봉지를 뜯어 약을 손에 놓아준다.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신다. 밥 먹기도 힘들었듯이 약 먹기도 쉽지가 않다.
평소 웬만해서는 약을 드시지 않던 분이다. 가족의 성화에 그리고 그 성화에 답할 기력도, 명분도 없을 만큼 노쇠해서 약을 먹으라는 대로 먹는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사래가 들어 눈물과 콧물이 계속해서 나온다. 들리지 않을 한숨이 길게 나온다. ‘이를 어쩌나’하는 말이 되뇌어진다. 이렇게 약도, 밥도 잘 삼키지 못하니 이런 노인을 어쩌면 좋은가 싶다. 집에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의 기력을 잃었지만 이런 노인을 병원으로 모신다면 누가 가족처럼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도 저도 아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지경. 삶은 참 잔인한 것이다.
아픈 시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돌보며 친자식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자기 엄마가 아픈 것에 얼마나 슬플까 생각했다. 얼마나 참담할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돌아보니, 친자식들이 어머니 집에 자주 오지 않는 것은 그런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프고 끔찍한 건 경험하기도, 보기도 싫어서 피하듯이 그리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몇 달 전만 해도 이야기를 나누는 데 문제가 없었다. 노인의 노쇠함은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시어머니는 볼 때마다 어눌해지고, 말라가고 있다. 그것이 멈춰야 어머니는 온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어머니의 끝은 너무 고통스럽다. 고통에 고통을 더하다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 개인으로도, 가족으로도 평안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무리가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끝 간 데 없는 아픔까지 가지는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